‘힘’으로 안될 땐 ‘연장(대선자금)’ 꺼낼 수도
이에 소장파는 나름대로의 검찰 정보망을 총동원해 방어막을 형성하는 한편, 정권 실세 A 씨와 그 측근들의 비리나 의혹을 자체 스크린해 반격할 무기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양측은 치열한 물밑 정보전을 펴며 ‘죽기 살기’식 권력충돌을 재연하고 있다. 여당 주변에서는 “이번 대기업 수사를 통해 친이계 핵심 주류가 오히려 면죄부를 받고 그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소장파는 주류 측의 ‘기획’에 따라 거세게 시달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대기업 수사 뒤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여권의 권력충돌, 그 장막을 들춰봤다.
이번 대기업 수사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반응은 냉소적인 편이다. “여당은 피라미, 야당은 중진 몇 명 잡아넣는 선에서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여기에는 검찰이 아직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작용하고 있다. 또한 너무 오랫동안 ‘겨울잠’에 빠져 있던 검찰이 과도한 의욕에 비해 준비가 부실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결과가 뻔하다’는 예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서부지검은 한화·태광그룹의 비자금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연일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수사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수사 피해가 너무 크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속도조절이나 ‘대충수사’를 요구하며 저항할 경우 모처럼 큰 맘 먹은 검찰로서는 파일만 뒤지다 다시 덮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수사를 대하는 여당의 시각은 더욱 냉소적이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여당 일각에서는 “검찰의 대기업 수사에 권력실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는데 수사는 해서 뭐하느냐”라는 불신 기류가 팽배해 있다. 여권의 핵심 실세 A 씨 측이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들의 라인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과의 교감 아래 이번 수사를 물밑에서 은밀하게 조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장파 등 ‘정적’에 대해서는 대기업 수사를 배경 삼아 이번 기회에 완전히 숨을 죽여 놓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점에서 여권 주류는 대기업 수사를 자신들의 면죄부를 주는 자구책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소장파를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주류의 자구책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여당 주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한 구속설이 흘러나오자 “최고실세를 보호하기 위한 전형적인 도마뱀 꼬리 자르기 수법”이라며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천 회장의 경우는 전형적인 수사 물타기 수법이다. 그보다 윗선인 권력 핵심 실세가 천 회장 사건의 정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여권 실세 수사는 천 회장이 마지노선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결국 지난번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처럼 이번 수사도 실체의 겉만 건드리는 선에서 끝낼 것이다. 이런 수사 관행이 반복되면 결국 국민들은 다음 대선에서 표로 심판할 것이다. 왜 그것을 모르는지 분통이 터진다.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 권력 실세를 자르지 않고 끝까지 가는 이상 권력 재창출은 절대 없다고 단언한다”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벌써부터 천 회장에 대한 수사를 두고 “(천신일 수사는) 권력 핵심 실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검찰의 위장된 쇼”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천 회장에 대한 수사가 대선자금으로 번질 경우 권력 핵심 실세 A 씨 측도 위험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전반의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재 검찰의 수사역량과 정권 실세들의 검찰 컨트롤 능력을 볼 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천 회장 개인의 비자금 또는 뇌물 수수 수사로 몰아갈 경우 야당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 결론은 이미 ‘빙산의 일각을 터는 쪽으로’ 예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천 회장에 대한 ‘기획수사’는 핵심 실세 A씨 측에 면죄부를 주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기획수사’ 기류는 실세 A 씨의 최측근 인사 B 씨에 대한 검찰의 내사 종결에서도 확인된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9월 중순경 S 건설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당시 동부지검은 대검 중수부를 비롯한 복수의 사정기관으로부터 S 건설과 관련된 자료들을 대거 이첩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S 건설은 현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정권 실세 인사 B 씨와의 유착설이 파다했던 중견 건설사다. 당초 S 건설 수사는 참여정부 인사를 겨냥해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2008년 초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 건설이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대형 관급공사를 따내는 과정에서 윗선의 압력이 있었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 그러나 B 씨도 S 건설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이 부분은 민간인 사찰로 물의를 빚었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도 들여다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수부는 S 건설 수사를 동부지검에 배당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과연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동부지검에선 그 실체에 전혀 접근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사관들에 따르면 자료를 받기만 했을 뿐 B 씨와 관련해서는 그 흔한 참고인 조사조차 안 했다고 한다. 동부지검이 중수부 청와대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들에는 그동안 시중에 알 만한 사람들이 아는 것 그 이상의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최근 모든 시선이 태광 한화 C& 천신일 등으로 쏠려 있을 때 조용히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 안팎에선 중수부보다 수사력이 떨어지는 동부지검에 사건을 내려 보낸 것을 놓고 수사 의지가 약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결국 B 씨는 ‘면죄부’를 받은 셈이다. 권력실세들이 대기업 비자금에 대한 ‘본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류’ 사건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는 ‘세탁과정’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권 권력 실세가 대기업 수사를 그들의 면죄부 받기용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그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소장파의 예봉을 꺾는 수단으로도 이용하고 있다는 정황도 있다. 최근 청와대 민정팀은 소장파 C 의원에 대해 강도 높은 내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C 의원이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지역 공천 희망자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첩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한 C 의원 친인척이 운영하는 한 화랑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서도 일부 ‘팩트’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C 의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한 사업가가 이 화랑이 판매하는 그림들을 대거 사줬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권력실세를 끊임없이 공격해 온 C 의원을 겨냥한 ‘표적 사정’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여권 주류의 전 방위적인 소장파 공격 움직임에 대해 소장파는 일단 관망하는 분위기다.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몇 년 동안 소장파 핵심 의원과 그 주변 관계자들의 계좌가 사정기관 등을 통해 최소한 2~3번씩 ‘털린’ 것으로 안다. 우리를 잘 아는 인사를 통해 전화도청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류 측에서 제기한 의혹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구체적 혐의가 포착된 것이 없다. 우리는 이번 대기업 수사에서도 가장 홀가분한 마음이다. 그동안 다 까이고 당했는데 무엇이 더 나올 게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권력실세 쪽에선 내용도 없는 혐의들을 끊임없이 흘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올 루머나 흑색선전도 면밀히 스크린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지만 그 도를 넘는다고 판단하면 언젠가는 민간인 사찰 의혹을 비롯해 대반격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권력실세 A 씨가 원희룡 사무총장을 임명한 것도 ‘소장파를 깨라’는 특명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주류 측의 소장파 공격은 전 방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주류-소장파 간의 권력충돌 그 정점은 대선자금이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양측 모두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지금까지 ‘금도’를 지켜왔다. 특히 소장파도 “그것만은 건드려선 안 된다”며 여전히 선을 긋고 있다. 권력 핵심 실세에 대한 가장 확실한 타격 방법이지만 ‘좋은 시절에 같이했던 것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에 따라 여전히 입을 닫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미 천신일 회장 등의 수사를 통해 여권의 대선자금 내역 상당부분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위상 재확립과 다음 정권에 대한 빅딜 형식으로 그것이 흘러나올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주류-소장파 모두 생존을 위해 판도라 상자의 일부를 흘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신한금융지주 사태가 복잡하게 얽혀가면서 라응찬 회장의 가·차명 계좌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소장파에서는 라 회장의 비자금 일부가 현 정권 핵심 실세인 A 씨에게 흘러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은밀하게 확인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수십억 원의 구체적인 액수를 확인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소장파가 이 사건의 의혹을 직접 제기하지는 않겠지만 향후 대기업 수사가 그들을 정면으로 옥죌 경우 그 대응책의 일환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소장파에서는 친이계 D 의원 등의 이름이 태광그룹 사건에서 불거지고 몇몇 핵심 의원들의 이니셜도 자주 거명되면서 자체적으로 검찰 주변에 대한 정보수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검찰 라인 등을 총동원해 주류 실세들의 의혹을 적극 확인하고 그것을 언론과 공유하는 등의 방법으로 방어전선을 구축하는 구체적 계획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부터 계속된 주류와 소장파 간의 권력충돌은 집권 후반기를 넘어서면서 검찰의 대기업 수사의 전장에서 다시 한 번 그 불꽃을 튀기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