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후보, ‘작은집’ 안철수보다 ‘큰집’ 유리함 내세워 긴 호흡 승부…‘상처 없는 단일화’ 위해 담판 가능성도
3월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부산시장 후보 경선 결과 발표회에서 후보 수락 인사를 하고 있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사진=박은숙 기자
#오세훈 등장의 의미
오세훈 전 시장이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41.64%를 득표, 36.31%를 얻은 나경원 전 의원을 제치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 것은 대이변이었다. 당 안팎의 예측을 뒤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세훈 후보는 역전을 이뤄낸 것은 물론, 사실상 압승을 만들어냈다. 나경원 후보는 막판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여성가산점(득표수의 10%)에도 불구하고 오 후보와의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여성가산점을 빼면 실제 득표율 차이는 9%포인트(p) 가까이 벌어진다는 것이 당 안팎 분석이다.
오 후보는 2월 5일 예비경선에서 나 후보에게 밀려 2위로 통과했다. 때문에 나경원 대세론이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오 후보는 차근차근 격차를 줄여가더니 2월 말 백중세를 만들어냈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에 따르면 2월 하순 무렵부터 나경원 대세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경원 후보는 적극적 재정 지출 등 보수 색깔을 빼면서 진보 쪽으로 몇 발자국 다가서는 ‘하이브리드’ 전략(관련기사 안철수 ‘우회전’ 나경원 ‘좌회전’…보수 후보들 ‘하이브리드화’의 비밀) 등을 썼지만 오 후보 벽을 넘지 못했다. 과거 원내대표 시절 대여 투쟁 과정에서 스스로 대중들에 각인시킨 ‘전투적 보수 투사’ 이미지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오 후보는 중도 이미지를 확실히 심으면서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로서 선택된 것으로 풀이된다. 경선 과정에서 오 후보는 개혁·온건파로서 정치 행보를 부각하며 표의 확장 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아스팔트 투쟁 같은 극단적 보수가 아닌 합리적이고 따뜻한 보수를 원하고 있다는 표심이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보수가 변한다면 충분히 표를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본다면 오 후보는 이미지가 상당 부분 겹치는 안철수 대표도 누르고 보수 야권 단일 후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초선 의원 분석을 들어보자.
“중도 색깔이 짙은 오 후보가 등판함으로써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해온 당의 색깔 변화가 유권자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신호가 나왔다. 내친김에 오 후보가 안 후보를 누르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된다면 김 위원장 입김은 더욱 세지고, 설사 본선에서 오 후보가 지더라도 김 위원장은 대안 부재론을 타고 대선 관리까지 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오세훈의 등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던지고 있기에 주목해야 한다.”
#단일화 불발 가능성 소멸
오세훈 후보 승리로 야권 단일화가 불발될 수 있다는 우려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오 후보는 단일화 효과를 피부로 직접 체감한 국민의힘 구성원이다. 그는 2010년 서울시장 재선 당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당시 민주당은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다. 민주당 후보였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진보신당 고 노회찬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시도했다. 특히 당시 지방선거는 이명박(MB)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으면서, 야당이었던 민주당에게 절대 유리한 판세였다.
그러나 한 후보와 노 후보간 후보 단일화는 결국 실패한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고, 오 후보는 한 후보에게 불과 0.6%p의 근소한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그 선거에서 노 후보 득표율은 3.3%로, 야권 후보 두 사람이 단일화를 했다면 오 후보는 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서울시장뿐만 아니라 경기지사 선거에서도 단일화 성사 여부가 승패를 갈랐다. 유시민 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가 단일화 논의를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다, 선거일 임박해 심 후보가 사퇴하는 방식으로 단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단일화 이전에 이뤄진 부재자 투표에서 심상정 후보에게 돌아간 표는 모두 사표가 됐다. 결과적으로 52.2%를 받은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가 47.8%의 유시민 후보를 누르고 경기도지사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듬해 오세훈 후보가 학교 전면 무상급식 문제로 시장직을 전격 사퇴하며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고 박원순-박영선 후보 간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당시 야권 지지가 결집, 박원순 후보가 승리했다.
오세훈 후보는 지난 3월 4일 국민의힘 후보직 수락 연설에서도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반드시 이뤄내겠다. 분열된 상태에서의 선거는 패배를 자초하는 길”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야권 단일화가 단일화 효과를 가장 잘 아는 후보에게 맡겨진 셈이다.
#시간은 오세훈의 편?
오세훈 후보는 시간만 벌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나경원 후보에게도 밀리는 상태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뒤집은 경험을 만들었기 때문. 따라서 단일화 시간표는 호흡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후보 단일화 시점을 최대한 늦춰 ‘작은집’ 안철수 후보가 아닌 ‘큰집’ 오세훈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키려 할 것으로 점쳐진다.
1차 마감시한은 중앙선관위 후보등록일(3월 18~19일)이 될 것으로 보이고, 이때까지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투표용지 인쇄일(3월 29∼31일)까지 갈 것으로 전망된다. 사전투표일(4월 2~3일)까지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합리성이 강점인 오 후보의 성격상 그렇게까지 벼랑 끝 전술을 펼 가능성은 낮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힘 지연 전략에 맞서고 있다. 안 후보는 3월 3일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야권은 여권에 비해 (선거운동에 동원할) 수단과 시간이 부족하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단일화에) 합의해서 지지자분들이 지치거나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날 국민의힘 경선 결과를 듣고서도 “(오 후보와) 가급적 빨리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양 후보 간 경선 규칙을 정하는 속도에 따라 단일화가 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우선 여론조사 문항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두 당은 이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국민의힘은 ‘야권 단일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붙었을 때 누가 가장 경쟁력 있는지’를 조사 문항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당은 비슷한 문항으로 여론조사를 돌렸을 때 자당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기에 이 문항을 서로 고집하고 있다.
여론조사 대상에 있어서 국민의힘은 시민 중 자발적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이른바 ‘오픈 프라이머리’를 해보자는 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시간이 촉박하고 공정성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 100% 일반시민 여론조사를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2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KNK디지털타워에서 열린 금태섭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 2차토론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정치적 담판 나올 수도
오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 담판’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실제 오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토론에서 ‘정치적 결단에 의한 단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만으로는 지지층을 하나로 모으기 힘들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서는 ‘상처 없는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후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진흙탕에서 뒹구는 수준의 싸움 끝에 겨우 이뤄낸 단일화는 효과가 없다는 예측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상대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 없는 단일화는 성사 가능성이 낮고 승리로 귀결되기 어렵다는 경험치도 오 후보는 갖고 있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은 역대 선거에서 가장 확실한 단일화 모델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양측은 총리·내각제 개헌 보장 등의 보상을 약속하고 김대중 후보로의 단일화, 이른바 DJP 연대를 일궈냈다. 보상책이 확실했기에 완전히 정치 성향이 다른 두 세력의 합심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반면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민주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보상책 협상에 실패, 여권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정 후보는 야당 소속 이명박 후보에게 사상 최대 표차로 패배했다.
당시 정동영 후보는 문 후보에게 △공동정부를 같이하되 문 후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책임(직책)을 맡도록 모든 조치 △문 후보 측 정치세력이 차기 총선에 원내에 진출하도록 조치 △시민사회 원로들이 이 사항을 보증 등의 보상을 제안했지만, 문 후보의 승낙 사인에 이르지 못했다. 이 보상은 대통령이 가진 권한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연장선에서 오 후보는 안 후보와의 ‘서울시 연립 정부’ 구상을 밝히기도 해,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이전에 서울시 공동 운영에 관한 양자 간 합의가 도출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오랫동안 오 후보를 알고 지내왔는데 합리성이 있고, 정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에만 기대지 않을 수도 있다. 협상과 대타협을 통해 판을 주도해 나가려 할 것이기에 의외로 단일화가 쉽게 풀릴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오 후보가 체급을 키우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