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지 같은 직원만 4쌍, 부부 2쌍이 같은 필지 나란히 사기도…땅 쪼개기, 나무심기, 전형적 투기 수법
3기 신도시 위치. 사진=3기 신도시 홈페이지
일요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공개한 ‘LH 임직원들의 토지 매입 내역’에 등장하는 15명의 소유주 가운데 같은 집에 사는 이가 4쌍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참여연대와 민변은 3월 2일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과 무지내동 필지 10곳에 대해 LH 임직원들의 사전 투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의혹이 제기된 필지 10곳을 구매한 사람은 총 15명이다. 이 가운데 13명은 LH 직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땅 매입이 전형적인 투기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적게는 2명에서 7명까지 팀을 이뤄 토지를 매입하는 이른바 ‘지분 쪼개기’로 땅을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사전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 가운데 다수가 가족관계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일요신문이 등기부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15명 가운데 부부로 추정되는 이들만 4쌍이었다. 두 사람이 모두 LH 직원인 사내 부부의 경우가 2쌍 확인됐다. 이들이 실제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인지는 알 수 없으나 등기부상 한 집에 사는 ‘관계’임에는 분명했다. 만일 이러한 정황들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LH 사내 부부가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전 투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과림동의 한 농지(3996㎡, 약 1208평)는 2019년 6월 3일 LH 직원 4명에게 15억 1000만 원에 팔렸다. 그런데 공동 소유주 정 아무개 씨와 박 아무개 씨의 등기부상 주소가 같았다. 두 사람이 같은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4명 가운데 3명은 경기지역본부 소속 직원으로 같은 본부에 다니고 있었다.
아예 부부끼리 모여 땅을 산 정황도 포착됐다. 경기지역본부에서 과천주암지구 토지 보상 업무를 담당했던 강 아무개 씨는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2018년 4월 19일 무지내동의 한 필지(5905㎡, 약 1786평)를 4인 공동 명의로 19억 4000만원에 사들였다. 나머지 소유주 2명은 LH 직원인 박 아무개 씨와 안 아무개 씨였다. 박 씨와 안 씨 역시 등기부상 주소가 같아 사내 부부로 추정되고 있다.
강 씨는 2020년 2월 27일 과림동 필지(5025㎡, 약 1520평) 한 곳을 추가 매입한다. 이번엔 7인 공동명의였다. 매입에는 22억 5000만 원이 들어갔다. 7명의 공동 소유자 가운데 LH 직원은 총 5명이었으며 나머지 2명은 강 씨의 배우자와 또 다른 직원의 배우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땅은 매입 직후 1167㎡(약 353평), 1407㎡(약 425평), 1288㎡(약 389평), 1163㎡(약 351평) 4개로 나뉘었는데 이를 두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땅 쪼개기’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개발이 이뤄져 아파트 특별공급을 받을 수 있는 토지 크기가 1000㎡(약 303평) 이상인 까닭이다.
혼자서 필지 두 개를 매입하고 등기부상 주소까지 옮긴 간 큰 직원도 있었다. 인천지역본부에서 근무하는 장 아무개 씨는 2019년 9월 4일 과림동의 필지(330㎡, 약 100평)를 구매하고 이듬해 2020년 2월 27일 7명이 모여 산 과림동 필지(5025㎡, 약 1520평)도 함께 구매한다. 장 씨는 원래 강남구에서 거주 중이었으나 2019년 첫 토지 매입 이후 등기부상 주소를 시흥시로 바꾼다. 두 번째 토지 매입에서 장 씨의 주소지는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이었다. 그러나 실제 시흥시에 거주하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지내동과 과림동 농지에는 앙상한 묘목수 천 그루가 잔뜩 심어져 있었다. 주민들 증언에 따르면 LH 직원들이 과림동 농지를 매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무를 실은 트럭과 인부가 등장했다. 이들이 황량했던 농지에 흙을 채우고 검은 비닐을 덮어 수천 개의 묘목을 심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개발 예정 토지에 나무가 심어져 있으면 보상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신도시 개발로 이뤄지는 보상 정도를 잘 알고 있는 LH 직원들이 일부러 묘목을 심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직원들이 매입한 토지 다수는 맹지거나 농지로서의 가치도 높지 않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는 섣불리 매입하기 힘들다는 것이 인근 주민들의 생각이다. 과림동의 일부 주민들은 신도시 개발에 대해 ‘강제수용’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 거주자는 개발을 반대하고 토지를 산 외부인만 개발을 반기고 있는 셈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529호에서 열린 제384회 국회(임시회) 국토교통부 제5차 전체회의에 출석,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실제로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 13명 가운데 6명이 LH 경기지역본부의 사업관리처 소속인 사실도 취재결과 확인됐다. 나머지 직원들도 서울과 광주 전남, 인천 지역본부의 사업관리처 소속이었다. 신규 택지개발 등 사업 검토 부서 직원이 내부의 개발 정보를 이용해 특혜를 취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지적한 10개 필지 외에 국토교통부 자체 조사 결과 LH 직원이 매입한 토지가 4건 더 드러나기도 했다. 추가로 드러난 투기 의혹 지역은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과 옥길동이다. 국토부는 “LH 직원 13명이 신도시 조성 지역 내 12개 필지를 취득했다. 해당 직원들을 직위해제 조치했다”고 밝혔다. 현재 LH 홈페이지에는 이들의 내선번호와 담당 업무 내용이 삭제되어 있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전수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3기 신도시 지정과 관련한 투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이번 조사 대상은 국토부와 LH, 경기도개발공사 그리고 3기 신도시가 있는 지자체 관련 부서 직원이다. 이들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조사 범위는 남양주 왕숙(1134만㎡), 하남 교산(649만㎡), 인천 계양(335만㎡), 고양 창릉(813만㎡), 부천 대장(343만㎡), 광명·시흥(1271만㎡)까지 3기 신도시 6곳에 100만㎡ 이상의 대규모 택지인 과천 과천(168만㎡)과 안산 장상(221만㎡)을 포함해 총 8개 지역이다.
정부는 이번 조사 대상자들에게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를 받아 토지 소유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다만 퇴직자의 경우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사전 동의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투기의혹을 받는 LH 직원 및 가족들은 40~50대로 이들 중에는 퇴직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직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 행위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이뤄지는 전수조사인데, 그 범위가 좁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다양한 정보의 최상단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국회와 청와대가 이번 조사 대상에서 빠진 까닭이다. 조사 감독을 지자체나 국무총리실이 아닌 감사원 등의 외부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와 민변은 정부 조사와 별개로 단체에서도 관련 의혹을 계속해서 파헤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어느 곳이든 외부기관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도 보도 이후 관련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 현재 제보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고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