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울산시 자주점유 인정”, 하나은행 손 들어준 원심 파기환송…하나은행 “대법 판단 존중”
울산광역시청 전경.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4일 울산시가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상고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원심을 깨고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원고가 내세운 예비적 청구에 대한 원심의 판결을 수긍할 수 없으니 다시 판결하라는 취지다. 다만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의 땅은 울산고속도로 앞 진입도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울산시 관할 지역의 민자도로로 현재 유지‧수선 등 기타 관리 업무는 울산시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토지의 소유권은 1997년부터 하나은행 측이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소유주는 하나은행이지만 관리는 시에서 해온 것이다.
이에 원고(울산시)는 2018년 주위적으로 피고(하나은행) 측으로부터 이 사건의 각 토지를 기부채납 받았다는 이유로, 예비적으로는 원고의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주위적 청구는 원고가 소를 제기하는 제1원인이다. 예비적 청구는 주위적 청구가 기각당할 것을 대비하여 주장하는 다른 원인이다. 법원에서 주위적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예비적 청구에 대해서는 심리하지 않지만, 주위적 청구가 기각당하면 예비적 청구에 대해서도 심리하도록 돼 있다.
앞선 판결에서 법원은 하나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고등법원 재판부는 “울산시가 각 토지를 한신부동산으로부터 기부채납 받았다는 근거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고 토지에 대한 점유는 타주점유에 해당한다”며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 모두 기각했다. 사실상 하나은행의 승리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이 원심의 일부 판결에 대해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하나은행은 또 다시 방어전에 나서게 됐다.
하나은행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울산시와 하나은행 간 토지 분쟁은 50년 전 한 회사의 파산에서 시작된다. 원래 이 토지의 주인은 1969년 한국신탁은행이 18억 원을 출자하여 설립한 한신부동산주식회사였다. 같은 해 한신부동산은 울산고속도로 신설 공사를 맡았는데 이때 고속도로 앞 진입도로에 편입된 토지를 매수했다. 한신부동산은 남산 제1호 터널, 북악터널 건설 등의 택지조성사업도 맡아 진행했으나 이 과정에서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된다. 적자를 거듭하던 회사는 결국 1975년 울산시에 울산고속도로 관리 권한을 인수인계하고 파산한다. 이후 잔여자산과 부채는 한국신탁은행에게 넘어갔다.
한편 한국신탁은행은 1976년 서울은행, 2002년 하나은행, 2015년 외환은행과 합병하여 현재의 하나은행이 되었는데, 한신부동산 파산 당시 맺은 승계계약으로 1997년 해당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받으면서 울산시와 분쟁하게 된 것이다.
울산시는 이 토지를 한신부동산에게 기부채납 받았고 설사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1975년부터 자주점유 해왔다는 입장이다. 2심 재판부는 두 가지 주장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예비적 청구에 대한 원심의 결정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이를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원 소유주인) 한신부동산 주식회사가 원고에게 각 토지의 소유권을 양도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가 이 사건 각 토지를 기부채납 받았다는 근거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원고가 각 토지를 점유할 당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소 불분명하지만 한신부동산주식회사가 원고에게 토지의 소유권을 양도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의 자주점유 추정이 번복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울산시가 기부채납 근거를 제출하지 못했지만 해당 토지를 자주점유 해온 것은 사실로 보인다는 얘기다.
이런 판단이 내려진 데에는 1974년 10월 한신부동산과 한국도로공사가 맺은 양도양수 계약이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1974년 양도양수 계약 당시 한국도로공사는 “이 사건의 토지는 울산시의 시내도로이므로 인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한국도로공사도 울산시와의 갈등을 어느 정도 예상한 셈이다. 이어 해당 토지를 울산시에 기부채납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모기업인 한국신탁은행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나온다. 대신 한국도로공사 측에 “원고(울산시)와의 관계 등은 자신의 책임 하에 해결하겠으니 이 사건의 진입도로 건설비용의 절반을 부담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부 금액을 지불한다면 이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책임지겠다는 말이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고 건설비용의 절반에 해당하는 7680만 원을 포함해 약 28억 5570만 원을 주고 한신부동산과 양도양수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한국신탁은행은 한신부동산의 양도양수계약에 관한 채무를 보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한국도로공사로부터 받은 돈은 이 사건 토지를 원고에게 양도하는 것에 대한 대가”라며 “도로의 관리 업무를 원고에게 이관한 것은 토지의 소유권을 양도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74년 회의 보고서에도 ‘민자도로 중 이 사건 진입도로는 한신부동산이 기부채납 형식으로 울산시에게 이관토록 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하나은행에서도 50년 전 양도양수 계약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러 건의 회사 합병이 있었고 계약 이후 시간도 많이 지난 까닭이다. 하나은행 측 관계자는 이번 파기환송 결정에 대해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대법원의 판결취지를 존중하고 파기환송심의 결과에 따라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