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에도 ‘찡끗’…얼음공주 해빙모드
▲ 최근 스킨십 강화에 나선 박근혜 전 대표. 그는 대중들과 악수를 나눌 때마다 허리를 약간 굽히며 부드러운 미소로 눈을 마주친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과거 박 전 대표의 행적을 돌아보면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 때마다 이른바 ‘스킨십 정치’를 강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박 전 대표의 스킨십 정치는 그때마다 적절한 효과를 발휘하며 박 전 대표에게 적잖은 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과연 대선을 2년여 앞둔 이 시점에서 박 전 대표의 적극적인 ‘스킨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의 ‘스킨십’에 담겨진 대선 전략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박전 대표는 지난 10월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평소 본회의장에서 맨 뒷줄의 자기 자리를 고수하며 자주 움직이지 않던 박 전 대표였다. 하지만 최근 박 전 대표가 친박계는 물론 친이계 의원들에게도 먼저 악수를 청하거나 인사를 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고 있는 것. 이날 의외의 장면은 또 있었다. 대표적 친이 주자인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의견을 나누는 ‘다정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가 정쟁관계에 있던 대표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이날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다가가 감세법안에 대한 자료를 건네며 의견을 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8·21 회동’ 이후 친이계와 화해무드가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분석도 나왔다.
근래 박 전 대표의 ‘달라진 모습’은 정가의 화제다. 지난 9월 무렵부터 박 전 대표는 종종 본회의장에서 계파를 떠나 당내 의원들과의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하더니 최근엔 그간의 ‘신비주의 전략’에서 벗어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친화력을 과시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①박근혜 전 대표가 대표적 친이 주자 정두언 최고위원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②트위터에 직접 올린 셀카 사진. ③한나라당 여성 의원들과의 오찬 모임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박근혜식 유머’도 스킨십 정치의 한 수단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종종 유머를 구사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구사하는 유머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억해 두었다가 적절한 때에 들려주며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식이다. “함께 춤을 추실까요”를 짧게 줄여 말하면 “출껴?”라고 농담을 건네는가 하면, “머리를 감을 때 어디서부터 감느냐. 앞이냐 뒤냐 위냐”고 한 의원이 묻자 “눈부터 감죠”라고 말하는 ‘재치’를 보이기도 했다.
친이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박 전 대표는 유머로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었다. “충청도에서는 ‘개고기를 먹을 줄 아세요’라는 말을 뭐라고 하는 줄 아느냐. ‘개 혀’라고 한다”라면서 “‘개고기를 조금 먹을 수 있다’는 말은 충청도 말로 ‘좀 혀’라고 한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또 친이계 장광근 의원 등과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장 의원이 “옷은 벗고 하시죠”라고 권하자 박 전 대표는 “군 장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인데요”라며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의 유머에 대해 간혹 ‘썰렁 유머’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유머를 시도하며 친근감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친이계 의원은 “먼저 다가오려고 노력하니 친근감이 느껴진다. 박 전 대표에게 느껴졌던 거리감이 상당부분 없어진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평소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틈틈이 수첩에 기록하고 기억해 두었다가 활용한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스킨십 강화에 나선 것에 대해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염두에 둔 전략적 행동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한 정치평론가는 “최근 박 전 대표의 활발해진 스킨십은 장기적인 대선 행보의 일환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내년 초중반부터 적극적인 대선 행보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그 전에 외연을 넓히고 발판을 튼튼히 하려는 전략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문제 이후 한동안 정치 현안과는 거리를 두며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선 행보 때문에 친박계 의원들 중 일부에서는 “박 전 대표가 너무 뒤로 물러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었다. 친이계에서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를 내세워 차기 친이 주자 부상을 도모했을 때도 친박계 내에서는 “이러다간 당 대권주자 자리를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지된 바 있다.
박 전 대표가 계속해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유지해 왔지만, 당내 대선 주자 경쟁이 본격화되면 지지율 추이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이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해왔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20~25% 정도의 고정 지지층은 박근혜 전 대표의 견고한 지지율을 형성하는 기둥 같은 역할을 하지만 나머지 10~15%가량의 지지층은 다른 한나라당 주자에게 옮겨갈 수도 있는 지지층이다. 또 이중 일부는 민주당 주자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해온 중도표심이기 때문에 향후 지지율 변화는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김문수 경기지사의 지지율이 한동안 상승세를 타고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 대표가 야권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른 점도 박 전 대표가 스킨십 강화에 나선 한 요인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손학규 대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과 함께 대선주자 지지율 2~3위권에 올라서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엔 곧바로 2위권에 급부상하며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친이 대권주자 자리를 노리고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 역시 최근 주춤하긴 하지만 8%~1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주변 요인이 지지율 정체 현상을 보이던 박 전 대표가 스킨십 강화에 나서는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아직 ‘여유로운’ 미소로 다른 차기 주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다. 눈에 띄는 점은 호남 지역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적지 않다는 대목이다. 지난 10월 18일~22일 실시된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호남 지역 지지는 광주·전남 10.3%, 전북 18.4%로 손학규 대표(각각 27.6%, 20.3%)와 유시민 전 장관(14.5%, 8.1%)과 비교해 ‘경쟁력 있는’ 수치를 보여주었다. 특히 전북 지역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에 비해 10%p 이상 높았고 손학규 대표와도 엇비슷한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향후 손학규 대표의 활약에 따라 호남권 지지세가 옮겨갈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호남에서 의미 있는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전통 텃밭’인 영남권에서는 같은 조사에서 부산·울산·경남 37.4%, 대구·경북 47.3%을 기록하며 2위인 유시민 전 장관(각각 14.5%, 8.1%)을 압도하는 수치를 보였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친화력 강화 행보에 대해 주변 일각에서는 부정적 견해를 내놓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박 전 대표가 지금보다 더 몸을 낮추고 먼저 다가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에선 박 전 대표가 아직도 ‘공주 대접’을 받는 것에 익숙하다고 혹평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스타일이다. 어떤 때에 보면 통 속을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무표정이 딱딱해 보일 때도 있다. 이 때문에 측근들도 박 전 대표를 어려워하고 조그만 체구의 여성임에도 그에게서 상당한 카리스마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번은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민간 조직의 한 인사가 박 전 대표가 눈에 띄자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가면서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는 것. 나중에 이 인사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 심리학 전문의는 ‘강하고 딱딱하게’ 보이는 박 전 대표의 일면에 대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극으로 잃는 등 어릴 적부터 청와대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자란 성장과정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상당히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이런 힘든 과정을 겪어왔으면서도 큰 흔들림 없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때 ‘얼음공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신비감과 거리감을 동시에 주었던 박 전 대표. 하지만 돌아보면 박 전 대표의 특유의 ‘스킨십 정치’는 고비 때마다 큰 힘을 발휘해왔다. 어쩌면 박 전 대표가 대중들로부터 그만큼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의 스킨십 정치가 더 큰 화제를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보통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차기 정치 리더는 국민과 물리적 거리보다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스킨십 정치가 동료 의원들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지 궁금해진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 손학규 대표는 왼팔로 상대방을 감싸고 오른손으로 악수하며 친근감을 주고 있다. |
김문수 ‘파워악수’ 손학규 ‘양팔악수’
정치인들에게 ‘스킨십’은 중요한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되곤 한다.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 중요하겠지만, ‘형식’만으로도 눈길을 끌 만한 스킨십을 적절하게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이러한 스킨십은 주로 선거 때 눈길을 끈다.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악수와 인사다.
정치인들에게 ‘스킨십’은 중요한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되곤 한다.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 중요하겠지만, ‘형식’만으로도 눈길을 끌 만한 스킨십을 적절하게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이러한 스킨십은 주로 선거 때 눈길을 끈다.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악수와 인사다.김문수 지사의 경우 직접 명함을 들고 다니며 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지사로서 경기지역 곳곳을 돌며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김 지사는 나이를 불문하고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인식시키고 있다. 김 지사는 악수를 할 때도 손에 힘을 꽉 주면서 인상적으로 남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역시 인사와 악수를 중요한 스킨십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 대표 선출 이후 민생 현장을 돌며 서민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손 대표는 하루에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 이상의 국민들과 직접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고 있다. 그는 오른팔로 악수를 하며 왼팔로는 상대방의 팔이나 어깨를 살짝 감싸며 친근감을 주고 있다. 현장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큰 호응을 보냈다. 기자도 손 대표와 몇 차례 인터뷰를 나누었었는데 그 때마다 양팔을 다 써서 악수했던 기억이 난다.
유시민 전 장관도 대중들과의 스킨십을 통해 상당한 이미지 ‘회복’을 하고 있는 주자다. 매스컴을 통해서만 유 전 장관을 접한 대다수 대중들은 실제로 유 전 장관을 만나본 뒤 “날카로운 인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소탈하고 수줍어 보이기도 한다”고 평한다고 한다. 논리적이고 직설적인 화술로 유명한 탓에 방송이나 사진 속에서는 다소 날카롭고 강해 보이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는 분석 때문에 유 전 장관 역시 선거 때마다 ‘현장’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유세장 일정을 최대한 늘려 소화하곤 한다.
이재오 특임장관의 경우 ‘90도 인사’가 그의 닉네임이 되었을 만큼 차기 대선주자로서 적극적인 스킨십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의 90도 인사에 대해선 긍정·부정 평가가 엇갈린다. 한 이미지 컨설턴트는 “다소 쇼맨십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부정적으로 평하기도 했다. 얼마 전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도 이재오 장관에게 “요즘도 90도로 굽혀 인사를 하느냐. 그러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허리 디스크 걸릴 위험이 있고, 또 인사할 때 상대방이 얼굴을 봐야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90도 말고 45도만 하라”는 ‘따끔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때로 정치인의 ‘의도된’ 스킨십은 친밀감을 주는 대신 오히려 반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