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손에 목 졸려…‘베트남 신부’ 비극 재현
▲ 베트남 여성 피살 사건이 벌어진 지 1년도 안돼 중국인 여성이 한국인 남편에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해 또 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
남편 민 씨는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최 씨가 자발적으로 도주한 것처럼 지인들을 속인 후, 은닉할 장소를 찾아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남 여성 피살 사건과 닮은꼴인 이 사건의 전모를 사건 담당 형사, 인근에 살던 최 씨의 친척동생 등의 전언을 통해 재구성해 봤다.
최씨와 민 씨는 소개소를 통해 중국 현지에서 처음 만났다. 최 씨는 민 씨가 본인 명의의 집도 있는 데다 직업이 자영업자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났다. 민 씨는 최 씨에게 금융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며 자신의 명함을 보여줬다.
남편과 사별한 후 열 살배기 딸과 살고 있던 최 씨에게 한국에서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민 씨의 능력이 근사해보였다. 또 한국에서 집을 가지고 있다는 민 씨의 말 역시 결혼을 결심하게 한 동기가 됐다.
민 씨의 말만 믿고 한국에 온 최 씨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보여준 명함은 가짜였고, 최 씨는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집안의 ‘애물단지’였다. 시어머니는 최 씨에게 “아이를 낳아서 민 씨가 정착하게 해야 한다”며 독촉하곤 했다. 한국에 있다는 집 역시 시어머니의 집이었다. 최 씨는 임신을 강요하는 시어머니와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민 씨에게 지쳤다. 또 중국에 남은 딸을 한국에 데려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아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다. 결국 최 씨는 결혼 8개월 만에 이혼신청서를 제출한 후 중국으로 도피했다.
중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민 씨와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민 씨는 최 씨의 중국 현지 휴대폰 번호를 알아낸 후 협박전화를 일삼았다. 협박의 주된 내용은 ‘당장 돌아오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중국인 여성, 친척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민 씨는 최 씨가 친하게 지냈던 중국인 여성의 가게로 찾아가 유리창을 깨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자신의 도피 때문에 지인들이 피해를 입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했던 최 씨에게 어느 날 시어머니가 중국으로 찾아왔다. 시어머니는 잘못을 인정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와 아들과 살아만 달라고 간청했다. 특히 시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만 온다면 최 씨 명의로 집을 하나 구해 주고, 딸을 민 씨의 호적에 올려 친손녀처럼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최 씨는 딸과 함께 안산시 단원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고자 했던 ‘코리안 드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최 씨 이름으로 구해놨다는 집은 26.4㎡(8평)짜리 원룸이었다. 집을 산 것이 아닌 최 씨 명의로 월셋방을 계약한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최 씨의 딸을 호적에 올린 뒤에는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지켜진 약속이라곤 최 씨의 딸이 민 씨의 친딸이 된 채 호적에 오른 것뿐이었다. 때문에 최 씨는 이전처럼 중국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최 씨는 딸 때문에라도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하기로 하고 돈벌이에 나섰다.
그러나 혼자 하는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남편 민 씨는 최 씨의 그늘 밑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생활을 했다. 대출을 받아 고급 승용차를 결제하기도 했다. 이 대출금은 고스란히 최 씨의 부담이 됐다. 민 씨의 낭비로 생활이 빠듯해지자 낮에는 용역회사 경리로, 밤에는 여행사에 나가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밤 10시가 돼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취기가 잔뜩 오른 남편 민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민 씨는 “어디서 바람을 피다가 이제 돌아온 것이냐”며 채근했다. 의처증 증상이 있었던 민 씨는 최 씨의 설명도 믿지 않고 폭행했다. 9월 11일경에는 급기야 스타킹으로 목을 졸랐다. 최 씨는 사망 직전까지 갔다 딸아이가 계속 몸을 흔들어 깨워 겨우 의식을 차렸다. 곧장 단원경찰서로 간 최 씨는 남편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살인미수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인 스타킹은 끝내 찾지 못했다. 남편 민 씨는 경찰 조사에서 목을 조른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결국 민 씨는 상해죄로 벌금형에만 처해진 채 귀가조치됐다.
아내가 살인미수로 자신을 고소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민 씨는 최 씨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서 나를 교도소에 집어넣으려 했다”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결국 10월 22일 민 씨는 또다시 최 씨의 목을 조르고 말았다. 최 씨가 사망하자 사체를 침대 밑에 숨겼다.
사건 당일 최 씨의 딸은 친척동생 조 아무개 씨(32)의 집에서 자고 있었다. 최 씨의 딸은 날이 밝자 집으로 돌아갔지만 밤이 늦도록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않자 조 씨에게 전화를 했다. 조 씨는 민 씨에게 전화를 걸어 최 씨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새벽에 싸우다가 잠깐 술을 사러 밖에 나간 사이 도망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소 민 씨의 폭행을 알고 있던 조 씨는 불안한 마음에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후 민 씨가 집을 비운 사이 원룸을 방문했다. 집 안에는 방향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평소 최 씨가 입던 외투가 그대로 벽에 걸려 있었다. 신발도 그대로였다. 오직 최 씨의 가방만이 없어진 채였다. 평소 최 씨는 가방 안에 적금통장과 보험계약서, 도장 등 중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다녔다.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고 생각한 조 씨는 경찰에 상황을 신고했지만 경찰 측은 민 씨가 성실히 경찰수사에 협조하는 데다 혐의사실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어 자택을 수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조 씨는 원룸으로 몰래 들어가 민 씨의 잠옷 주머니에서 최 씨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한 움큼을 발견해 다시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민 씨의 집에서 수사를 시작한 경찰에 의해 침대 밑에 있던 최 씨의 사체가 드러났다. 실종신고 후 이틀 만의 일이었다.
한편 최 씨가 들어 놓은 적금통장과 보험증은 본인이 아닌 남편 민 씨 앞으로 계약이 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0월 28일 기자와 만난 친척동생 조 씨는 “최 씨는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남들한테 손 벌리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생활비를 아껴 저축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가방은 끝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민 씨는 가방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