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들 붙여주고 경쟁사는 떼내고…
▲ 김재윤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도공 간부가 행담도 휴게소를 운영하는 중소업체 대표 이 아무개 씨를 협박한 내용을 담은 녹취록.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기업과 퇴직자의 밀착 의혹을 들여다 봤다.
지난 10월 12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는 한국도로공사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이날 국감에서 도공이 자사 퇴직자 모임인 ‘도성회’와 도성회의 대표적 출자회사인 ‘한도산업’(대표이사 최승규)과 각종 계약을 무더기로 체결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다. 한도산업은 휴게소를 비롯한 고속도로 부대시설을 설치·운영하는 업체로 역대 대표이사인 최 아무개 씨, 양 아무개 씨, 이 아무개 씨 등을 비롯해 현재 대표이사인 최승규 대표가 모두 도공 출신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도공과 퇴직자 모임이 체결한 계약 건수와 금액은 어마어마했고, 계약 방법도 ‘편법’인 것이 다수였다.
도공으로부터 제출받은 ‘도로공사와 도성회가 체결한 계약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도공이 퇴직자 모임 및 출자회사인 한도산업과 체결한 계약 건은 2006년부터 2010년 8월 말까지 5년 동안 총 1629건으로, 계약 금액만 6797억 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대표적인 도공 퇴직자 모임인 도성회와의 계약 금액은 2006년 3억 5000여 만 원, 2007년 5억 8000여 만 원, 2008년 6억 2000여 만 원, 2009년에는 8억 1000여만 원으로 금액은 해가 지날수록 불어나고 있었다.
더불어 도공은 편법적인 방법으로 ‘자사 퇴직자 단체’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공은 2009년 12월 17일 하루 동안 도성회와 총 3건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도공과 도성회 사이에 하루 동안 총 세 건이나 되는 계약이 체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은 “도성회에 계약을 몰아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관한 법률’은 국가와의 계약 당사자가 ‘물품 계약’시 1건당 5000만 원 이하로 제한을 두고 있다”며 “12월 17일 이루어진 계약 총액은 5413만 원으로 이 상한선을 초과해 부득이하게 계약을 세 건으로 나누어 계약을 함으로써 ‘몰아주기’ 혐의를 은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도공과 퇴직자 모임은 주로 ‘수의계약’을 통해 계약을 성사시켜 온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도공이 제출한 ‘영업소(톨게이트) 계약 현황’에 따르면 2010년 8월 말 기준으로 전체 영업소 308개 중 도공 퇴직자가 272개소(전체 업소의 88.3%)를 운영하고 있었다. 공개입찰한 36개소 중에서도 20개소는 퇴직자들이 수의계약 형식으로 공개 입찰해 계약한 것이고, 민간업체는 단 6개소에 불과했다.
퇴직자 모임이 출자한 회사인 한도산업에도 막대한 특혜가 주어졌다. 도공과 한도산업은 최근 5년간 무려 474건, 금액으로는 27억 894만 원어치의 계약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도공과 한도산업이 계약한 휴게소 등 계약 내역에 따르면 양측은 2006년 6건(102억여 원), 2007년 10건(4억여 원), 2008년 7건(5억여 원), 2009년 9건(4억여 원), 2010년 10건(2억여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건수는 총 42건이고 액수는 118억 80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수의계약으로 체결한 계약은 38건(26억 4000만 원)에 해당된다. 결론적으로 민간업체들은 이 수의계약 관행 때문에 국가 계약의 다수를 차지하는 도공과의 계약 기회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도공 관계자는 “도공은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일환으로 공기업을 젊은 피로 수혈하기 위해 조기퇴직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명예퇴직금을 미지급하고, 외주 운영기간은 정년 잔여기간 내로 하고 있으며, 계약금의 대부분은 직원 임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퇴직자들이 관련 업무에 더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에게 사업 우선권을 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기현 의원이 법무부에 질의한 결과, 법무부는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적용한 수의계약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퇴직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통행료 수납업무는 전문성이 떨어져 도공 출신이 아닌 민간기업도 할 수 있으며, 2인 이상의 사업자가 존재하면 제한 또는 지명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도공은 ‘휴게소 사업’ 보고서에 한도산업 휴게소 수를 슬쩍 줄이기도 했다. 도공은 초기 보고서에 한도산업 휴게소를 9개로 표기했다가 후에 문제가 되자 11개로 정정했다. 또 국감 당시 김 의원이 질책하자 다시 이를 ‘한도산업은 현재 총 14개의 휴게소와 9개의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도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동해와 속초 휴게소 등은 임시매점으로 휴게소로 분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드러난 도공과 퇴직자 모임의 유착 실태는 이뿐만 아니다. 도공이 직접 ‘퇴직자 모임 챙기기’에 나서기도 했다. 한도산업 경쟁업체를 협박해 사업권 포기를 종용하고, 이를 한도산업에 넘겨주려 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10월 12일 열린 국감에서 도공 간부가 행담도휴게소를 운영하는 중소업체 대표 이 아무개 씨를 협박하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공개했다. 기자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협박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도공 김 아무개 팀장은 지난 9월 13일 행담도휴게소를 찾아 민간기업 행담오션파크(오션파크) 대표인 이 씨에게 “행담도휴게소의 운영권을 넘기라”고 협박했다. 그는 이 대표에게 운영기간이 8년이나 남은 휴게소의 운영권을 한도산업에 넘기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김 팀장이 방문하기 전인 9월 10일 씨티은행으로부터 한 통의 팩스를 받았다. 팩스에는 ‘오션파크의 대출금을 일주일 내로 갚으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이 씨는 “통상적으로 금액이 얼마든지 간에 기간을 한 달이나 삼 주 정도는 주지 않느냐”며 “이자를 밀린 적도 없고 정말 꼬박꼬박 회사 차원에서 갚았다”고 토로했다. 갑자기 대출금 회수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김 팀장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제가 봤을 때 협상을 하고 난 뒤에 (행담도휴게소 사업을) 털고 나가는 것도 방법 아닌가”라며 회유를 시작했다. 김 팀장은 또 “오션파크는 조그마한 기업 아니냐. 우리 퇴직자 모임 자회사인 한도산업의 캐시 능력은 600억 원이 넘는다”며 “우리가 ○○기업도 날렸는데 오션파크 하나 못 날리겠냐”며 이 씨를 압박했다.
행담도휴게소는 지난해 매출이 263억 원으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가운데 매출액이 가장 큰 휴게소로 도공이 지분을 투자한 행담도개발(주)로부터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 결국 행담도휴게소의 매출이 급상승하며 이윤을 내자 도공이 중간에 운영권을 빼앗고, 이것을 다시 퇴직자 회사인 한도산업에 넘기려 한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자금’이라는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 은행권이 개입됐다는 사실은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인 이범래 한나라당 의원이 이번 국감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실제로 씨티은행은 지난 2008년 60억 원을 대출받은 오션파크측에 올해 9월 10일 단 일주일의 기한을 주며 대출금을 갚으라는 여신상환통지서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오션파크는 올해 9월까지 원금 12억 원과 이자를 한 번도 연체한 적이 없어 지난 3월에는 우수 대출기업으로까지 선정돼 표창을 받았었다. 때문에 대출상환 기간이 남은 오션파크에 씨티은행이 급하게 상환을 요구한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더군다나 씨티은행이 대출금 상환을 요구한 시점이 김 팀장이 이 씨를 찾아와 협박한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 기자와 통화한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씨티은행과 도공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씨티은행의 계열사인 씨티증권은 행담도개발이 소유한 담보주식을 910억 원에 매각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행담도개발이 추진하고 있는 행담도 해상휴양지 개발이 난관에 부딪히자 현재 씨티증권 주식 매각 작업도 덩달아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씨티은행이 도공과 손을 잡고 행담도휴게소 사업권이 한도산업에 넘어갈 수 있도록 힘을 쓴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사업 주체가 바뀌면 지지부진한 해상휴양지 개발사업도 정상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류철호 도로공사 사장은 도공 국감장에 “내용을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도공 직원과 오션파크 대표와의 대화 중 일부 잘못된 대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김재윤 의원은 도공 국감에서 “사실 여부를 명명백백하게 조사하고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계자를 엄중히 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