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열고 배터리 소송 관련 논의, 회사의 미흡한 사법 대응 질책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지난 10일 오후 감사위원회를 열고 배터리 분쟁 소송 경과를 논의했다.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전경. 사진=일요신문DB
SK이노는 11일, 전날 오후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한 감사위원회를 열고 LG엔솔과의 미국 ITC 소송 경과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SK이노 감사위는 회계 감사와 내부 통제 시스템 구축과 운영 등 독립된 활동을 수행하는 이사회 내 감사 기구다. 이사회 의장인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대표감사위원인 최우석 고려대 교수, 사외이사 김준 경방 회장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ITC는 지난 2월 10일 SK이노가 LG엔솔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최종 판결하며 SK이노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다만 미국 고객사들의 피해를 고려해 포드와 폭스바겐 일부 차종엔 각각 4년,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감사위원회는 최근 SK이노가 새로 제시한 협상 조건과 이에 대한 LG엔솔의 반응, 지금까지의 협상 경과에 대해서 보고 받았다. 재계에 따르면 양측 고위 임원들이 지난 3월 초 만나 협상을 벌였다. 양측 실무진이 지난해 4분기 한 차례 회동한 이후 처음이다.
LG엔솔은 약 3조 원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지만, SK이노 입장은 1조 원 이상 어렵다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에 대해 감사위원회는 “경쟁사의 요구 조건을 이사회 차원에서 향후 면밀히 검토하겠지만,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요구 조건은 수용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감사위원회는 ITC 소송에서 SK이노가 문서를 삭제한 탓에 영업 비밀 침해 여부를 제대로 다퉈보지도 못하고 수입 금지 조치를 받은 점을 강하게 질책했다. 그동안 회사 측이 밝혀온 패소 이유(절차상 문제)에 대해 이사회도 같은 판단을 한 것이다. 감사위원회는 “미국 사법 절차에 대한 미흡한 대처를 반면교사로 삼아 내부적으로 글로벌 소송 대응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며 “동시에 외부 글로벌 전문가를 선임해 2중, 3중의 완벽한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SK이노는 이에 따라 빠른 시일 안에 컴플라이언스 모니터링 체계를 고도화 하기 위해 미국에서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분야의 외부 전문가를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최우석 이사회 대표 감사위원은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미국 사법 절차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사업을 더욱 확대해 가야 하는 시점에서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글로벌 기준 이상으로 강화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SK이노 이사회는 ITC 소송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하고 근본적인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서는 주요 사안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 빠른 시일 내 대덕 배터리 연구원 등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ITC 결정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검토를 거쳐 승인하면 최종 확정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4월 11일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