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동원F&B “어떤 첨가물도 안 넣었다” 홍보…“카제인나트륨 논란에 믹스커피 시장 축소됐듯 역풍 우려”
하림과 동원F&B가 자사 즉석밥 제품에 대해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는 네거티브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는 자칫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릴 여지가 있다. 지난해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즉석밥들의 진열된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육가공업체 하림은 최근 즉석밥 ‘순밥(순수한 밥)’ 출시와 함께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집에서 밥을 지을 때 어떠한 첨가물(산도조절제, 보존제 등)도 넣지 않듯 하림의 순밥은 오로지 100% 쌀과 물만으로 지은 밥으로 구수한 밥 냄새 외에는 어떠한 잡내도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동원F&B는 수년 전 출시한 자사 즉석밥 제품 ‘쎈쿡’에 대해 지금까지도 “산미료나 쌀미강추출물과 같은 첨가물을 일체 넣지 않고 100% 곡물과 물만으로 밥을 지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 회사는 “물과 쌀만 활용했다는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고 홍보한 것일 뿐”이라며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우리는 넣지 않았다”는 주장은 자칫 소비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치 타사 제품에는 해당 성분이 첨가된 것처럼 혼동할 수 있고, 유해한 성분인 것처럼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CJ제일제당의 ‘햇반’에는 멥쌀 99.9%와 함께 미강추출물이 들어간다. 미강추출물은 쌀겨에서 뽑아낸 천연원료로 밥의 맛과 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오뚜기의 ‘오뚜기밥’에는 쌀과 산도조절제가 들어간다. 이러한 원료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관계자는 “용도에 맞게 정해진 양을 섭취하면 몸에 해롭지 않다”고 밝혔다.
몸에 해롭지 않은 특정 성분을 굳이 ‘넣지 않았다’는 마케팅은 ‘경쟁사 흔들기’로 보일 수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3, 4위 업체나 신규 플레이어들의 네거티브 마케팅 방식”이라며 “허가된 식품첨가물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일부러 논란을 일으켜 소비자들을 오인하게끔 만들어 판을 뒤집어 보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2020년 판매 수량 기준 즉석밥 시장 점유율은 1위 CJ제일제당 62.1%, 2위 오뚜기 36.8%다. 동원F&B는 3위로 알려졌다. 사실상 두 회사의 제품이 시장의 98.9%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3‧4위나 후발주자가 입지를 넓히기 힘든 구조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 같은 ‘제 살 깎아먹기’ 마케팅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의 식품업계 관계자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마케팅 방식으로는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고 업계 전체에 나쁜 영향만 끼칠 것”이라며 “카제인나트륨 사건을 반복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2010년 남양유업의 ‘카제인나트륨’ 마케팅으로 믹스커피 시장 1위 동서식품이 타격을 입었다. 사진=연합뉴스
2010년 12월 남양유업은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하면서 “화학적 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을 뺐다”고 광고했다. 이는 믹스커피 시장의 절대 강자 동서식품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이었다. 동서식품의 커피믹스에 카제인나트륨이 첨가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화제 역할을 하는 카제인나트륨의 기준치 내 섭취는 몸에 해롭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양유업의 이 같은 마케팅 탓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믹스커피는 화학성분이 들어간 가공식품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믹스커피 대신 인스턴트 원두커피 수요가 높아졌다. 2010~2011년 8.2%이던 믹스커피 시장 성장률이 2011~2012년 4.2%로 떨어진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신 남양유업은 한국네슬레를 제치고 커피믹스 시장 2위로 올라섰다.
윤승재 한양사이버대학교 마케팅학과 교수는 “기존 제품에 문제가 없음에도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네거티브 마케팅은 고전적인 마케팅 전략 중 하나지만, 지금처럼 정보 접근성이 좋아 소비자들이 사실을 쉽게 구별해낼 수 있는 시대에서는 그 효과를 내기가 어렵다”며 “카제인나트륨으로 전체 믹스커피 시장이 축소됐듯 즉석밥 시장에 나타난 네거티브 마케팅이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