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홍신 등 초대형 프로젝트 잇따라 무산…보조금만 노리는 ‘좀비 공장’ 속출
2021년 3월 10일 양회 폐막식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사진=연합뉴스
팡정증권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필요한 산업이다. 중국의 휴대폰, 컴퓨터, 가전 등의 생산 능력은 전세계 선두권이다. 그런데 유독 여기에 쓰이는 반도체 기술은 세계 선진 수준과 큰 격차가 있다. 시계로 따지면 ‘아침 9시’로, 사실상 ‘0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다.
세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반도체를 수입하는 데 3500억 달러(397조 원가량)가 들어갔다. 이는 전년 대비 14.6% 늘어난 액수다. 그만큼 해외 공급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중국 업체들은 반도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회에서 발표한 최신 5개년 계획에서 반도체 ‘자급자족’ 실현을 부르짖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반도체 굴기(반도체로 우뚝 일어선다)’다. 현재 10%대인 반도체 자급수준을 2025년까지 70%대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성숙 단계로 접어든 반도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술 난도가 높고, 투자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투자금을 회수하는 시간도 다른 산업에 비해 오래 걸린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고급 기술을 갖춘 업체는 몇 되지 않는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반도체) 칩을 만드는 것은 진흙을 빚는 것처럼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몇 년간 중앙과 지방 정부는 막대한 돈을 반도체에 쏟아부었다. 돈이 몰리다 보니 부작용도 속출했다. 한 투자자는 “사업가들과 만나면 반도체 이야기만 한다. 시장의 50%가량이 반도체 산업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과학기술 관련 업계 관계자는 “한 투자자가 (반도체) 창업주 얼굴도 알지 못한 채 4억 위안(700억 원가량)을 보낸 사례도 있다. 투자자들은 반도체 분야에서 좋은 종목을 선점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내륙도시 우한의 반도체 업체 우한홍신 파산은 당국의 반도체 굴기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2017년 11월 설립된 반도체 회사 우한홍신은 중국에서 가장 요란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정작, 우한홍신이라는 기업의 실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번에 파산하면서 처음 이름을 들었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설립 후 4년간 지방정부가 우한홍신에 투자한 돈은 총 1820억 위안(31조 8000억 원가량)에 달한다. 금액만 놓고 보면 중국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이 때문에 우한의 후베이성과 우한 고위 관료들은 우한홍신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2년 연속 ‘후베이성 중대 프로젝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국자들은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경우 직간접 일자리 5만 개 창출, 연간 생산액 600억 위안(10조 5000억 원가량)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의 한 반도체 회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우한홍신은 2019년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중 한 곳인 대만 TSMC의 주역 장상이 전 최고운영책임자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우한홍신 측은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반도체 기업이 되겠다”면서 “(투자해준) 조국에 반도체로 보답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투자금은 어디에 쓰였는지 모를 정도로 사업의 실체를 찾기 어려웠다. 장상이는 2020년 사직서를 내면서 “(우한홍신에서의 경력은) 악몽이었다”라고 했다.
지난 2월 28일 주요 언론들은 우한홍신 직원들이 퇴사 통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한 직원은 “어떠한 보상, 퇴사요구에 대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면서 “3월 5일까지 퇴사 수속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에 통지를 받은 직원은 240명으로, 퇴사 후 아무런 보상은 없다고 한다. 한 언론은 “그 기세등등했던 프로젝트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썼다.
불길한 징조는 있었다. 우한홍신은 2020년 초 공사대금과 임금체불 사실이 폭로된 바 있다. 이로 인해 토지 대부분이 현지 법원에 의해 압류됐다. 2020년 7월 회사 측은 자금 부족으로 사업 중단의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그 직후 장상이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회사 고위층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우한홍신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소문은 이미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이는 현실이 됐다.
유감스럽게도 우한홍신이 첫 실패작이 아니다. 지난 2년간 정부가 투자한 반도체 사업 중 10여 개가 파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만 투자규모 100억 위안(1조 700억 원가량) 이상 반도체 프로젝트 6개가 무산됐다. 그중 한 곳이 청두의 반도체 업체 ‘거신’이다. 거신은 미국 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과 청두시 정부가 합작해 설립했다. 투자금만 100억 달러(11조 3000억 원가량)가 넘는다. 하지만 본격적인 가동도 하기 전에 중단됐다.
최근 몇 년간 당국의 지원 아래 반도체 관련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2020년에 설립된 신규 기업만 2만 2800개로 집계됐다. 전년에 비해 195% 늘었다. 기획이 엉망인데도 보조금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보조금 및 융자의 횡령 사건도 비일비재했다. 이는 결국 자금 부족에 따른 회사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 우한홍신 역시 사업 초반부터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창업자인 리쉐옌과 차오샨은 반도체 업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우한홍신과 같은) 막장 스토리는 더 이상 새로운 게 아니다. 기술적인 미숙은 공장의 붕괴를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반도체 투자 붐으로 좀비 공장이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당국도 뒤늦게 맹목적인 투자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했다. 지난해 10월 국가발전과개혁위원회는 반도체 사업에 새로 진입하는 기업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