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바둑 ‘다빈치코드’를 풀어라
발표자는 모두 8명. 한국 3, 미국 2, 일본 독일 불가리아가 각 한 사람. 한국 쪽에서는 얼마 전에 바둑을 두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던 서울의대 권준수 박사가 그 논문을 재연해 보였고, 명지대 바둑학과에서 석사를 밟고 경희대에서 아동학으로 박사가 된 김바로미 교수(31)가 ‘바둑 교육프로그램이 아동의 지능, 과제집중 지속능력, 문제해결력 및 만족 지연능력에 미치는 효과’를, 일본에서 석사를 취득한 이수정 교수(29)가 ‘바둑이 노인의 심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미 국의 토마스 울프와 일본의 나카무라 데이고는 확률 통계 전산 등에 사용되는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컴퓨터 바둑프로그램에 적용하는 방법을 예시했다. 몬테카를로는 도박으로 유명한 모나코의 도시 이름.
잠시 쉬는 시간에 토론자로 참석한 이승우 선생이 나에게 손짓을 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청주의 재야 바둑사학자, 그 분이다. 80 고령에도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며 바둑학술대회 같은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다. 2003년 제3회가 멀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 바둑 콩그레스 때 같이 열렸는데, 그때 한 번 빠졌다.
이 선생은 복사한 것 몇 장을 보여 주었다. 중앙 일간지의 실린, ‘국보순례’라는 작은 지면의 칼럼과 이 선생 자신의 육필 편지였다. 칼럼의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나 문화사, 미술사 등에서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고 문화재청장까지 지낸 인사였다. 칼럼의 제목은 ‘백제의 상아 바둑알’이었다. 이 선생이 칼럼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백제의 의자왕이 보내 준 상아 바둑알과 자단목 바둑판, 그리고 은판을 무늬로 오려 붙인 바둑알 통이 공개되어…” 운운한 대목이었다.
▲ 바둑알 통 은평탈합자(위)와 상아 바둑알 홍아와 감아. |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에 있지 않고 일본 나라 현 나라 시, 도다이지(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다. 도다이지는 일본 화엄종의 본산.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 세계에서 가장 큰 비로자나불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절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쇼소인은 도다이지 안에 있는 유물 보관창고 겸 전시박물관. 이승우 선생의 얘기는 “흔히들 목화자단기국은 백제 의자왕이 상아 바둑알과 함께, 말하자면 세트로 일본에 보낸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게 사실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쇼소인의 보물 목록을 보면 의자왕이 일본의 대신 후지와하 가마타리(藤原鎌足)에게 보낸 선물은 붉은 옻칠을 한 느티나무 함에 들어 있었고, 코뿔소 뿔 4개, 백석진자(白石鎭子) 16개, 채색 상아 바둑알 1조, 흑백 바둑알 1조라고 나와 있어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17행 목화자단기국 1구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출처나 기증자나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어요. 이게 오해의 시발점이에요. 바둑알만 보냈겠느냐, 바둑판도 같이 보냈겠지, 그렇게 짐작하기 쉬운 거지요. 그러나 당시 일본으로서 백제는 문화선진국이고 은혜를 받는 나라였는데, 그런 나라의 왕이 보낸 선물을 일본 관리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따로 기록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품목을 분류하다가 설령 따로 기록했다 하더라도 출처를 밝혔겠지요. 출처 기록이 없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나 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이나 그런 것들과는 별개 문제입니다. 역사는 사실이어야 해요. 유력 일간지에 실린 칼럼의 내용이라면 훗날 그대로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목화자단기국에 화점이 17개 찍혀 있다는 것도 크게 주목해야 할 사안입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바둑이라는 순장바둑이, 바둑판에 돌 17개를 정해진 자리에 놓고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바둑사를 다시 써야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순장바둑은 조선시대 때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고, 그 역사가 200~300년인데, 목화자단기국이 백제에서 만든 것이라면, 그때 이미 순장바둑을 두었다는 얘기니까요. 백제 후기와 조선 후기는 무려 1200~1300년의 시차인데, 이건 바둑사나 문화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내가 신문의 필자 교수 분에게 혹시 의자왕이 목화자단기국을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면 하교를 부탁한다고 정중하게 편지를 썼어요. 그런데 한 달이 넘도록 아직 답이 없네요.”
이승우 선생은 일단 질문의 자격이 있다. 그 자신이 이미 현장 답사를 거쳐 목화자단기국에 대해 가능한 모든 가설을 점검하는 논문을 여러 번 발표했고, 지금도 그 정체를 추적하고 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목화자단기국에 대해서는 의외로 이견이 많다. 쇼소인의 직원도 확답을 못하고 있다. 문양의 양식으로 보아 백제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인도나 인도 부근 서남아시아의 것이 흘러들어온 것이거나 그쪽과 문물교류를 하던 당나라에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는 학설도 있다.
한편 ‘바둑판 세트’라는 것을 전제로, 실험을 해 본 예도 있는데, 실제로 상아바둑알을 바둑판에 놓아보니 줄의 간격과 알의 크기가 잘 맞지 않아 돌들 상리에 여유가 없고 빡빡하게 붙게 되고, 바둑판의 맨 가장자리에는 돌을 놓을 수 없더라는 것, 또 바둑알의 숫자도 바둑 한 판을 두기에는 턱없이 부족한데,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대신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이처럼 짝이 맞지 않는 세트를 보냈겠느냐는 것이다. 한 술 더 떠 목화자단기국은 바둑판이 아니고, 상아바둑알도 바둑알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저 뛰어난 장인이 왕실이나 귀족을 위해 바둑판과 바둑알을 본떠 만든 훌륭한 공예품, 값진 노리개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목화자단기국 |
칼럼의 필자는 편지를 받고 좀 당혹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둑을 좋아하는 마음에 시정의 통설을 무심코 옮겼을 뿐일 테니까 말이다. 목화자단기국. 아득한 옛날에 만들어졌던 아름다운 바둑판, 아니 공예품 하나가 1400년을 살아남아 오늘 다시 수수께끼를 던져준다. 바둑은 처음에 무엇이었을까. 왜 백제의 왕은 바둑판과 바둑알을, 아니 바둑판과 바둑알 비슷한 것을 일본의 대신에게 선물했을까. 백제와 신라와 당나라와 일본, 그리고 서역의 나라들. 그들은 과연 얼마나 자주, 얼마나 크게 교류했던 것일까. 목화자단기국은 바둑사의 다빈치 코드일지 모른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