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시 ‘행복 호로몬’ 늘고 ‘스트레스 호로몬’ 줄어…반려동물이나 자기 자신 쓰다듬어도 심리적 도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고안된 ‘허그 커튼’을 사이에 두고 부녀가 서로 껴안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까이할 수 없었던 이들 부녀는 허그 커튼 덕에 100여 일 만에 포옹할 수 있었다. 사진=EPA/연합뉴스
지난 1년간 전세계 사람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악수를 하거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리거나, 볼에 키스를 하거나, 따뜻하게 포옹하는 것 모두 금기시 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들을 무릎 위에 앉힐 수 없었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에게 화면 너머로 위로의 말을 건네야 했다. 어린아이들 역시 오랫동안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했으며, 장례식장에서조차도 서로를 맘껏 안아주지 못했다.
이에 대해 ‘포쿠스’는 “지난 1년 동안 서로를 만지고 가까이 하는 것 자체가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됐다”면서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신체적 접촉과 친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해 하이델베르크대학병원의 의료심리학 연구소장인 베아테 디첸은 “사람은 서로를 만지면 안정감을 느낀다. 신체 접촉은 우리 자신이 사회 관계망 일부에 소속돼 있고,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람 간의 접촉이 불가능해진 자리를 다른 방식으로 채우려고 노력한 단체도 있다. 아이슬란드 산림 당국은 거리두기로 인해 신체적 접촉이 줄어들자 그 대안으로 나무를 포옹해보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요컨대 숲으로 가서 나무를 껴안고 위로를 받자는 것이었다. 할롬스템더 숲의 산림 관리인은 “나무를 껴안으면 먼저 발가락에서 나무의 촉감이 느껴지고, 그 다음에는 다리, 가슴,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캠페인은 성공을 거뒀고,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껴안은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만일 코로나 대유행 사태가 영영 종식되지 않거나, 혹은 또 다른 감염병 예방을 위해 평생 거리두기를 한 채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디첸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체적 접촉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상당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의미한다”고 염려했다.
이는 화장품 제조업체인 ‘니베아’의 요청으로 ‘마인드라인’ 연구소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4~8월 9개국의 1만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체적 접촉이 줄어든 생활이 개인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그 결과 응답자의 49%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인생에서 가장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가장 외로움을 많이 느낀 사람들은 노인이나 싱글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실제 또 다른 조사 결과에서는 독일인들 가운데 혼자 사는 사람의 87%가 사람들과의 포옹이 그립다고 답했다.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노인 요양보호소 ‘율리우스슈피탈’의 볼프강 노이 바우어는 “가장 힘들 때야말로 사람 간의 접촉이 가장 필요할 때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그는 “모든 게 좋으면 혼자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프거나 몸이 안 좋으면 누군가 옆에서 손을 꼭 잡아주거나, 팔을 쓰다듬어주거나, 아니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이런 신체 접촉은 종종 많은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이런 ‘접촉의 힘’이 아무런 근거 없이 막연한 건 아니다. 아직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된 바다. ‘포쿠스’의 설명에 따르면, 인체의 피부 접촉으로 인해 발생하는 주요 생화학 반응은 우리의 행복, 건강 및 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 10여 년 전 스웨덴 연구진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촉각과 관련된 신경섬유네트워크를 발견했다. 소위 C-촉각 또는 CT신경이라고 불리는 이 신경섬유네트워크는 미세한 솔로 부드럽게 쓰다듬을 때 반응하며, 다른 신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게 신호를 전송한다. 그리고 이렇게 전송된 신호는 ‘긍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영역에 도달한다.
또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속도와 온도다. 신체적 접촉이 유쾌하게 혹은 불쾌하게 느껴지는가 여부는 속도와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가령 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속도는 초당 1~10cm로 쓰다듬을 때이고 가장 안락한 온도는 우리 피부의 평균 표면 온도(체온과는 다르다)인 32℃다.
이런 접촉으로 인한 자극이 뇌에 전달되면 신경전달 물질들이 다량으로 분비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접촉을 하면 ‘포옹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디첸은 “몇몇 부부들을 관찰한 결과, 손을 잡거나 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부부들의 스트레스 정도는 신체적 접촉이 거의 없는 부부보다 낮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런 부부들의 체내에서는 코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은 적게 분비됐고, 심장 박동수도 더 안정적이었다.
다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라이프치히대학의 심리촉각학 연구 책임자인 마틴 그룬발트는 “모든 성인이 신체적 친밀감에 대해 똑같은 충동을 느끼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기 전부터 먼저 신체적 친밀감을 필요로 하는 ‘포옹 유형’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을 더 선호하는 ‘투덜이 유형’도 있다.
반면 유아와 어린이에게는 무조건 촉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룬발트는 “우리는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로 태어날 수는 있어도 촉각 없이는 태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엄마 뱃속에서부터 이미 태아는 촉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엄마나 아빠 또는 다른 사람이 쓰다듬는지도 분간할 수 있다.
지난해 3월 미국 워싱턴 주 커클랜드의 요양원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노인(가운데)이 창문을 통해 딸과 사위를 향해 키스를 날리고 있다. 최근 미국 당국은 백신접종을 마친 요양원 거주자들은 다시 가족의 포옹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AP/연합뉴스
1950년대 미국 심리학자인 해리 할로우가 히말라야 원숭이를 대상으로 했던 유명한 실험에서도 이런 접촉의 중요성은 잘 드러났다. 최소한의 스킨십조차 없이 고립된 채 자란 새끼 원숭이들은 훗날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겪었다. 가령 어딘가 불안하고, 공격적이었으며, 강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원숭이 대부분은 짝짓기를 할 수 없었으며, 어떤 암컷은 출산을 한 후 새끼를 방치하거나 학대하기도 했다.
그룬발트는 “사회적 존재로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 신체적 소통을 제한하는 건 우리 인간의 본질에 위배되는 행동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룬발트는 청소년들이나 젊은층이 사회적 거리두기나 집합금지 명령을 어기고 일탈 행동을 보이는 게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한창 스킨십이 중요한 나이에 이런 자연스런 욕구가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룬발트는 “그들은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고, 연인을 찾고,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는 나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런 접촉의 부재를 메우기 위한 대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배우 겸 마사지사이자 트레이너인 안젤리네 아넷 하일포르트는 베를린에 ‘스킨십 공간’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은 ‘스킨십 친구’를 만들어 서로 약속을 잡거나, 포옹 파티에 참가하거나, 혹은 유료로 운영되는 전문적인 포옹 치료를 예약할 수 있다. 회원들 가운데는 접촉의 갈증을 느끼는 미혼자들뿐만 아니라 배우자로부터 원하는 위로를 얻지 못하는 기혼자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누군가 손을 잡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를 원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포옹 치료사’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오랫동안 웅크린 아기 자세로 누워 있다 가기도 한다.
이 밖에 반려동물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룬발트는 “우리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 함께 있을 때 종종 편안함을 느낀다. 소를 쓰다듬는 게 나무를 껴안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면역학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더 건강하다.
반려동물이 싫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디첸은 누군가와 인사를 할 때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포옹을 할 때와 똑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자기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 것도 도움이 된다.
비즈니스 경제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알로샤 드라이죄르너와 동료들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일정 시간 동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도록 요청했다. 이때 피실험자의 3분의 1은 중간에 낯선 사람과 20초 동안 포옹을, 3분의 1은 20초 동안 자기 자신을 껴안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종이비행기를 접도록 했다. 그 결과 포옹을 한 두 그룹 모두 종이비행기를 접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 반응이 낮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 가운데 자기 자신을 포옹한 사람이 낯선 사람을 포옹한 사람들보다 훨씬 스트레스 반응이 낮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또 다른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영영 악수를 금지해야 하는 걸까. 독일의 미래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팔꿈치 인사와 같은 대체 인사법은 일시적이며,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면 점차 전통적인 인사법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일포르트는 심지어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성대한 포옹 파티가 열릴지도 모른다고 예측하면서 “나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안아주고, 한동안 서로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확신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