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과 ‘브로맨스’ 찐친 이정은과 ‘로맨스’ 두 토끼 잡아…조우진·김의성·정진영 역대급 우정출연 눈길
영화 ‘자산어보’로 데뷔 이래 첫 사극, 첫 흑백영화에 도전한 배우 설경구(53).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를 본 후에는 명암이 굉장히 선명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흑백이란 게 참 세련될 수 있구나, 하면서요. 그런 흑백에 묻어있는 진짜 색이 보인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고, 그 시대의 색이 바로 이 흑백의 색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고. 각자 다양하게 색을 보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요?”
‘자산어보’ 속 설경구는 책 ‘자산어보’의 작가이자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을 맡았다. 1801년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규모로 박해한 사건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하는 ‘자산어보’는 약전이 세상의 끝으로 불리는 흑산도에 유배된 것을 시작으로 그곳의 민초들과 함께 하는 삶을 흑과 백으로 나눠 그린다. 약전은 이곳에서 조선의 근간이라는 성리학을 신봉하며 그를 ‘사학죄인’이라고 덮어 놓고 싫어했던 젊은 어부 창대(변요한 분)를 만나 스승과 제자로, 또 서로의 벗으로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글을 읽어 출세하고 싶은 창대와 흑산도의 해산물을 연구해 책을 쓰고 싶었던 약전이 서로의 지식을 등가 교환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자산어보인 셈이다.
“정약전이란 인물은 동생인 약용에 비해서 책을 그리 많이 남기지 않았어요. 정약용이 목민심서 등 어마어마한 책을 남긴 것과 달리 자산어보, 표해시말(흑산도에서 홍어를 매매하던 문순득이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와 필리핀 등을 표류한 경험을 쓴 책) 등이죠. 유배기간 동안 남긴 책이라고 본다면 초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약전이 책을 쓸 수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가진 사상으론 나는 고사하고 내 동생들, 주변인들, 식솔들이며 다 능지처참될 게 뻔할 테니까요. 그래서 자산어보란 책을 남겼던 것 같아요. 너무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 사상이 너무나도 위험했기 때문에, 그런 (자산어보와 같은) 글을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또 자산어보는 정약전, 창대 그리고 흑산도 주민이 공동저자라고 생각하고 만든 책이잖아요. 그만큼 약전은 깨어있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산어보’에서 설경구는 창대 역의 변요한과는 브로맨스를, 가거댁 역의 이정은과는 로맨스를 선보인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변요한 씨가 ‘자산어보’라는 작품 자체를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본인 촬영이 끝나도 숙소로 안 가고 현장에 계속 있어요. 또 창대의 그 누더기 옷을 너무 너무 사랑하고, 분장한 창대의 모습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연기한 캐릭터와 ‘자산어보’란 작품과 그 현장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산어보’가 이제까지 배우 변요한의 필모그래피 중 대표작이 될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또 앞으로 더 좋은 필모그래피도 쌓아갈 거라고도. 시사회 때 제 옆에서 요한 씨가 영화를 보는데 아주 많이 울더라고요. 맘이 또 여려서(웃음). 말은 못 걸어봤어요. 울고 있는 사람한테 말 걸면 쑥스러워할까봐(웃음).”
극 중 변요한의 창대와는 ‘브로맨스’였다면, 이정은의 가거댁과는 ‘로맨스’를 보여주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도 했다. 유배 생활을 돌봐주던 가거댁과의 연정이 무르익으며 나온 ‘툇마루 위 어깨 멜로 신’은 변요한‧민도희 커플이 보여준 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워낙 오래된 친구 사이였기에 생각보다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능청스럽게 찍을 수 있었다는 게 설경구가 말한 후일담이었다.
“저도 이정은 씨를 속속들이 잘 알고, 정은 씨도 저를 사적인 부분까지 다 알거든요.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고, 대학 졸업하고도 연극 ‘지하철 1호선’도 꽤 오래 했어요. 영화에서만 처음 만난 거죠. 너무 편하고 든든했고 또 감사했어요. 그 ‘어깨 멜로 신’(웃음). 그 장면도 가거댁이 이정은 씨가 아니었다면 낯간지럽고 창피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정은 배우여서 서로 장난치며 아주 편하게 찍었던 것 같아요.”
‘자산어보’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특별출연, 우정출연으로 개봉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사진=‘자산어보’ 스틸컷
‘자산어보’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특별출연과 우정출연으로도 개봉 전부터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 바 있다. 흑산도 관아의 장을 맡은 조우진부터 정약용 역의 류승룡, 김의성, 정진영 등 얼마 되지 않은 장면을 위해 흑산도까지 달려온 이 배우들을 어떻게 한 자리에 모두 모을 수 있었을까.
“처음엔 저, 변요한 씨, 이정은 씨 외엔 감독님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로 결정을 하셨더라고요. 그게 더 리얼하다고요. 저한테 의견을 물어보시기에 저는 생각이 좀 다르다고 했어요. 정약전도 사실 교과서에 한두 줄 설명된 인물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거기에 큰 사건도 없는 밋밋한 즐거움으론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도 누가 여기(흑산도)까지 오겠냐며 안 된다고 하시길래 딱 한 번만 연락해 보라고 했는데, 진짜 하겠다고 답이 온 거예요. 그래서 저도 욕심나서 ‘다른 사람한테 또 보내 봐요’ 하니까 또 하겠대요(웃음). 그러다가 마지막에 정약용 역이 굉장히 중요해서 난항이 있었는데 제가 감독님한테 그랬죠. ‘지금 대한민국 배우 중에 누가 제일 기분 좋겠어요. 극한직업이 대박 났으니까 승룡이 줘 봐요. 무조건 한다니까!’ 그래서 연락했더니 승룡이도 바로 답이 와요. ‘뭔데요, 할 게요’ 하면서. 대본도 안 봐놓고(웃음). 그래서 마지막 캐스팅이 류승룡 씨가 됐죠.”
이준익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배우들을 만사 제쳐놓고 모이게 한 단 하나의 이유였지만, 관객들에게 ‘자산어보’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초토화됐던 국내 영화계는 여전히 코로나19 시대 이전의 반만큼도 회복될 낌새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대중들 사이에서 크게 유명하지 않은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사극, 그것도 흑백영화를 선보인다는 것은 모험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경구는 주연으로서의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 코엑스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오후 5시 넘어서 갔는데 너무 사람이 없는 거예요. 충격이었죠. 영화가 끝나고 8시쯤 집에 갈 때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너무 무서웠습니다. 코엑스는 원래 영화 관객들이 엄청 많은 극장이거든요. 다른 영화관에선 잘 안 되는 영화라도 코엑스 관은 꽉 찼었어요. 그래서 걱정이 참 많이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저희 영화가 접근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정말 쉽게 들어오시고, 가볍게 관람하시고 즐겁게 나가시면 되는 영화입니다. 요즘 전 세계가 다 답답한 것처럼 ‘자산어보’에도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한 민초들 이야기가 나와요. 그 민초들이 그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있고, 정이 있고, 따뜻함이 있다는 걸 보고 그 기운을 받으면서 가볍게 힐링 하시다 가시면 좋겠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