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남’ 자막 두고 남성들 “한남이라고 교묘하게 조롱했다” vs 여성들 “Stranger 읽을 줄 모르나”
‘든든한 남’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한국 남성을 비하했다는 비난을 받은 SBS 유튜브 채널 애니멀봐. 사진=SBS ‘애니멀봐’ 채널 캡처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서 문제가 된 ‘애니멀봐’의 영상은 지난 3월 27일 올라온 ‘떠돌이 개한테 1년째 프로포즈 중인데 받아주질 않아서 동물농장팀 불렀는데 망했네요’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해당 영상에는 남녀 출연진이 떠돌이 유기견 복실이에게 애정을 주며 키우는 훈훈한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복실이의 진짜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점을 구분하기 위해 영상에서는 ‘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복실이도 이들에게 애정 표현을 하고 잘 따르지만,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 등 곁을 내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에 아직 가족이 아니라 남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영상 내에서 여성 출연진에 대한 자막 설명은 ‘엄마인줄 알았던 남’으로, 남성 출연진에 대한 자막은 ‘든든한 남’으로 표기됐다. 특히 남성 출연진의 경우는 복실이가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든든하게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자막 설명에 표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자막을 두고 든든한 남의 ‘남’이 남자의 남(男)을 뜻하는 것이라며 남초 커뮤니티 내에서 큰 이슈가 됐다. 남성을 비하하는 ‘한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 교묘하게 말을 비틀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남성 시청자들은 해당 영상에 몰려가 “애니멀봐 유튜브는 남성을 비하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채널입니다” “여기가 한녀들이 일하는 채널이 맞냐” 라는 비난 댓글을 달았다. 채널의 공식 사과가 없다면 계속해서 신고와 댓글 테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남성 시청자들이 이 같은 집단 행동을 한 데에는 이 직전에 발생한 코미디언 박나래의 성희롱 논란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3월 24일 박나래는 유튜브 채널 ‘헤이나래’ 방송에서 남자 인형을 이용해 신체 부위를 성적 희화화했다는 논란이 불거져 방송에서 하차 후 채널 역시 폐지된 바 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남성 시청자들이 “우리도 여성 시청자들처럼 똑같이 남성의 성을 희화화하거나 비하하는 것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애니멀봐의 영상을 이슈화시킨 것. 실제로 남성 시청자들은 애니멀봐의 영상에 “너희들(제작진)도 ‘박나래’ 당하고 싶냐”며 박나래의 논란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3월 18일 애니멀봐는 ‘허버허버’라는 인터넷 유행어를 사용했다가 남성 비하 용어라는 지적을 받고 수정했다. 사진=애니멀봐 영상 캡처
이와 더불어 지난 3월 18일에는 애니멀봐 영상에 사용된 ‘허버허버’라는 자막이 남성 비하 용어라는 이유로 논란이 인 바 있다. 남자친구가 급하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허버허버 먹는다’고 묘사한 여초 커뮤니티의 글이 시초로 파악된 이 용어는 주로 여초 커뮤니티 내에서 사용돼 왔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 자신이 음식을 빨리 허겁지겁 먹거나 서두르는 모습을 가리킬 때 쓰이는 인터넷상 유행어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는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사용돼 왔으나 최근 ‘페미니스트들이 사용하는 남성 비하 용어’로 정의돼 비난이 잇따르면서 애니멀봐는 영상 자막을 수정했다. 이처럼 전적이 있는 애니멀봐가 이번에도 남성 비하 용어를 사용해 남성들을 조롱했다는 것이 비난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애니멀봐의 경우는 앞서 여성 비하 용어로 지적된 ‘아몰랑’을 영상 자막으로 사용하고, 페미니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희화화시켰다는 이유로 이미 여성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당시에는 이를 지적한 네티즌들의 댓글을 삭제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을 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남성 시청자들이 지적하는대로 남성 비하 용어를 사용하는 페미니스트들만의 채널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행보를 보여왔던 셈이다.
이런 가운데 애니멀봐의 해당 영상 댓글란은 남성 시청자와 여성 시청자들의 설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28일까지는 남성 시청자들의 댓글이 대다수였으나 이튿날인 29일부터는 여성 시청자들이 몰려가 ‘좋아요’를 회복한 뒤 이전과는 반대로 채널 옹호 댓글을 달고 있다. 주로 “영어 자막으로도 ‘Stranger felt reassured’(안심을 느끼는 타인)라고 분명하게 남자의 남이 아니라 우리의 반대말인 남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걸 한남으로 해석하냐” “평소에 한남동은 어떻게 지나다니냐”며 남성의 조롱 댓글에 맞조롱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결국 또 다시 남녀 갈등으로 비화된 이번 이슈를 두고 방송가에서는 “사회적 비판과 집단적 복수심이 혼재되면서 성별 간 갈등이 이전보다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방송가 관계자는 “여성 시청자들이 방송에서 여성들의 과도한 성적 대상화나 성차별 언행 등을 문제 삼고, 방송가는 이 비판을 계속 수용해 오는 모습을 보이자 남성 시청자들 측에서도 ‘우리도 불편하다’며 똑같이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사회적 분위기가 남성의 성을 좀 더 가볍게 취급하기 때문에 남성 시청자들의 입장과 그 비판의 정당성도 일부 이해가 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러나 최근 나오는 이슈들은 건전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기에 앞서 ‘반대편이 불편하다고 하면 다 해줬으니 우리도 해달라고 할 거야’라는 복수심이 작용하는 것으로도 보인다”라며 “이른바 미러링(거울처럼 상대의 행동을 따라하며 역지사지를 느끼게 하는 행위)의 미러링인 셈인데, 성별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이상은 당분간 이런 크고 작은 이슈들이 방송가에서 계속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