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량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방증…텍사스 부사장 “매우 인상 깊은 선수, 팀에 도움 될 것”
택시스쿼드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상황에서 도입된 특별한 제도로 선수를 콜업할 때 개별 이동이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원정 기간 운영되는 예비 명단이다. 선수단과 동행하며 훈련도 함께하지만 경기 중에는 더그아웃에 머물 수 없다. 양현종은 당분간 텍사스의 대체 캠프지인 라운드록(트리플A 연고지)에서 훈련하며 언제 있을지 모를 빅리그 콜업에 대비한다.
양현종은 메이저리그 26인 로스터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원정길에 동행하는 택시스쿼드에 포함돼 기대감을 갖게 만들고 있다. 사진=이영미 기자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뒤늦게 미국행을 선택했을 때부터 올 시즌 양현종의 운명이 어느 정도 예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계약을 기다리다 구단들이 움직이지 않자 스플릿 계약을 받아들여야 했고, 초청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캠프에 뒤늦게 합류해 다른 선수들보다 빌드업이 늦게 진행된 부분은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양현종을 바로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지 않고 택시스쿼드에 포함시켰다는 건 텍사스 구단에서도 양현종의 기량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양현종은 아직 팀의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빅리그 26인 로스터에 들어가려면 40인 로스터에 포함돼야 한다. 텍사스 구단이 양현종을 활용하려면 40인 로스터에 오른 선수들 중 한 명을 양도선수지명(DFA)하거나 부상 선수가 나와야 로스터에 자리가 생긴다. 양현종으로선 ‘24시간 대기 상태’로 마이너리그에 머물며 40인 로스터 합류만을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양현종은 계속 ‘메이저리그 도전’을 할 수 있을까. 선택이 아닌 낙점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마이너리그에서 그가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얼마 전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훈련장에서 텍사스 레인저스 홍보팀 존 블레이크 부사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블레이크 부사장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 스포츠 홍보 관련 일로 43년의 커리어를 쌓은 인물이다. 그는 양현종을 가리켜 “매우 인상 깊은 선수”라고 표현했다.
“아직까지 그가 많은 공을 던지진 않았지만 그는 공을 어떻게 던지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제구도 좋고, 구속의 변화를 주는 부분, 보더라인을 공략하는 법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구성이 좋아 보였다. 키(183cm)가 좀 작은 편이지만 좌투수라 팀한테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그가 적응을 잘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구단 내부에서 그의 강점으로 그가 KBO리그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이 다른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있다. 작년에 NPB(일본프로야구)에서 뛴 아리하라와 비슷하다. 한국과 일본은 코로나19로 경기가 단축되지 않아 투수들이 출전할 기회가 더 많았다. 우리 팀에는 이런 선수들이 필요하다. 지난 시즌 텍사스의 어린 투수들은 40이닝만 소화했다. 40이닝을 던졌다가 이듬해 160이닝을 던지는 건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수들이 존재하는 건 팀한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존 블레이크 부사장은 경기 전후로 감독, 선수들 화상 인터뷰를 할 때 진행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는 양현종이 화상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화상 인터뷰가 양현종의 성격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화상 인터뷰를 위해 그와 같은 방에 있으면 그가 얼마나 재미있는 성격이고, 야구를 즐기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야구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까 말한 것처럼 그가 여기 와서 적응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야구는 다르기 때문이다. 공도 다르고 경기 스케줄도 다르다. 그런데 캠프 합류 후 6주 만에 적응하고 개막식까지 준비한다는 게 쉬운 일이겠나.”
블레이크 부사장은 양현종이 설령 개막식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 시즌 중에 콜업 기회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텍사스 마운드 사정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4월 2일(한국시간)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 개막전 선발로 나선 카일 깁슨은 ⅓이닝 4피안타 3볼넷 5실점한 뒤 1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조기 강판 당했다.
KBO리그의 ‘대투수’로 KIA 타이거즈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양현종이 주전도 아닌 택시스쿼드에 포함된 현실이 매우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희망의 끈을 내려놓을 수도 없는 게 그의 현실이다. 만약 양현종이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면 4월 6일부터 알링턴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서 열리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경기 때 류현진을 필드에서 만나는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다.
양현종과 KIA에서 오랜 인연을 맺은 장세홍 트레이닝 코치는 “현종이가 얼마 전 전화해서 자신이 꼭 로스터에 들어갈 테니 텍사스에서 만나 포옹하고 기념사진 찍자고 했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