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스타들 오디션의 추억

사기꾼인 줄 알았더니…바, 박찬욱!

▲ 김빈우(왼쪽)와 박찬욱 감독.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역으로 유명한 비비안 리에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사실 그는 오디션을 볼 때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신의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채 매번 “우리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곤 했다는 것.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역시 오디션을 망친 뒤 불합격 통보를 받고 지은 낙담한 표정이 오히려 감독을 매료시켰기 때문이라는 후문. 우리의 스타들 역시 대부분 오디션을 통과해 데뷔했고 비비안 리처럼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다. 스타들의 ‘떡잎 시절’을 살펴본다.

요즘 드라마 <시크릿가든>으로 또 한 번 인기몰이에 나선 배우 현빈. 최근 인터넷에 그의 데뷔 전 오디션 영상이 공개가 돼 화제다. 지난 2004년 개봉한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 공개 오디션에 참여했던 현빈의 모습은 지금과는 다른 풋풋함을 보여주는데 비록 지망생이었지만 연기력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뛰어나다는 평가다. 당시 공개오디션에 참여했던 지금의 톱스타는 또 누가 있을까?

국방홍보원에서 열심히 군복무중인 배우 이준기 역시 <그놈은 멋있었다>의 오디션에 도전했다. 영화 속 캐릭터에 걸맞게 교복을 입고 오디션을 본 그의 얼굴에서 연기 지망생다운 풋풋함이 풍겨져 나온다. 그는 당시 영화사에서 지정해준 연기와 자신의 자유연기를 한 토막씩 선보였다. 많은 작품 활동으로 연기력이 탄탄히 다져진 지금에 비하면 당시의 연기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이준기만의 날선 눈빛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오디션에서 연기와 더불어 자신의 특기로 댄스를 선보였는데, 당시 현장 관계자들이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수준급의 댄스 실력이었다고 한다.

이준기는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아쉽게도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에 출연하지 못했다. 당시 일본 영화 <호텔비너스> 출연을 앞두고 있던 터라 이준기는 어쩔 수 없이 일본 데뷔를 먼저 선택한 것. 이후 <왕의 남자>에서 공길 역을 맛깔스럽게 소화한 이준기를 본 <그놈은 멋있었다>의 이환경 감독은 “(좀 더 붙잡을 걸) 놓쳐서 엄청 후회했다”고 말 한 바 있다.

이준기 외에도 당시 <그놈은 멋있었다> 오디션에는 역시 군복무중인 배우 이기우와 올해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 남우상을 수상한 정우 등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오디션 합격 후 <그놈은 멋있었다>에 나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 허각.

올 한 해 최고의 화제 인물로 꼽히는 <슈퍼스타K 2>의 우승자 허각. 이번 프로그램에서 무려 130만 대 1이라는 사상 초유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그지만, 그가 늘 오디션의 행운아였던 것은 아니다. 내로라하는 기획사의 오디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는 그의 오디션 경험담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을 정도다. 그가 방송에서도 수차례 밝혔듯 그의 오디션 탈락 이유는 대부분 잘생기지 않은 외모다.

그가 유명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노래에는 늘 자신 있던 그였기에 자신의 차례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돼 노래를 부르려 했다. 그런데 오디션 담당자가 충격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됐어요.” 외모만 본 뒤 노래조차 부를 필요가 없다는 말에 허각이 매우 큰 상처를 받은 것은 당연지사. 좌절을 딛고 대국민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한 허각이 앞으로 프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도 특유의 끈기로 승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슈퍼모델 출신으로 연기와 MC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 중인 김빈우는 오디션에서 아찔한 실수담을 갖고 있다. 신인 시절 소속사 사장의 권유로 한 영화 오디션에 참가한 김빈우. 으리으리한 건물에 수십 명의 관계자가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예상과는 달리, 그가 찾아간 곳은 허름한 사무실이었고 장비도 달랑 캠코더 한 대가 전부였다. 내심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감독처럼 보이던 한 남자가 대뜸 “베드신을 찍을 수 있냐?”고 묻자 김빈우는 순간 에로 영화 오디션이거나 오디션을 빌미로 한 사기일 거라고 판단했단다. 결국 그는 주어진 대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디션을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 감독은 김빈우에게 “이렇게 연기 못하는 배우가 있느냐”며 굴욕감까지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굴욕은 그로부터 1년 뒤에 다가왔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극장을 찾은 김빈우. 영화를 보면서 대사들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싶었는데 바로 그 영화가 바로 자신이 1년 전에 오디션을 봤던 바로 그 영화였던 것이다. 그가 그날 극장에서 본 영화는 바로 <올드보이>. 그가 오디션에서 연기한 역할은 영화 속 강혜정이었고 오디션에서 그를 심사한 이는 다름 아닌 박찬욱 감독이었다. 세계적인 거장 앞에서 본 오디션이었고, 만약 합격했다면 세계적인 대작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지만 김빈우는 그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혜정이 오디션을 볼 때 소품이 아닌 실제 회칼을 들고 오는 등의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합격했다는 것.

오디션에는 으레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톱스타들이 오디션을 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오디션 원칙주의가 고수되고 있는 뮤지컬 캐스팅 현장이다. 지난 2005년 뮤지컬 <아이다>의 오디션에는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일반인 지원자들과 함께 낯익은 얼굴도 여럿 눈에 띄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은 바로 그룹 핑클 출신의 가수 옥주현이었다. 지금은 뮤지컬계에서도 톱스타로 당당히 대접받는 옥주현이지만 당시 그는 <아이다>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오디션에 참가했었다.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일반인 지원자와 함께 오디션을 본다는 일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그는 한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털모자와 선글라스 등으로 무장한 뒤 가장 마지막 순서로 오디션에 임했다고 한다. 다행히 특유의 가창력에다 신인의 열정까지 더해져 당당히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될 수 있었다. 그는 이후 뮤지컬 <시카고> 오디션에도 응시해 합격하는 등 뮤지컬 배우로 고속 성장했다. 그리고 올해 연말 5년 만에 뮤지컬 <아이다>에 출연하는데 이번에는 오디션 없이 캐스팅이 확정되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아이다>의 출연진 중 오디션 없이 캐스팅된 배우는 옥주현이 유일하다고 하니 5년 전의 기억은 이제 잊어도 될 것 같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