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련 ‘경제적 부담’ 우려…이사‧주거비용 지원 구체적 논의 안돼
공공기관 이전 발표에 따른 노동자 퇴직 고려 응답 (제공=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맹)
[일요신문] 경기도 이전 대상 공공기관 노동자들 상당수가 기관 이전 시 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류는 20~30대 청년노동자와 여성, 무기계약직에서 특히 심했다. 경기도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그럴듯한 취지만 내세우고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희생은 모른 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맹(의장 김종우)이 지난 3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경기도 이전 대상 공공기관 및 이미 이전한 공공기관 9개사의 노동자 703명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2.5%가 이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수의 노동자가 이전 발표가 공정하거나 민주적이지 않았고 이전 발표로 불안감과 좌절감을 느꼈다는 응답을 했다.
기관 이전 시 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은 69.9%에 달했다.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응답 18.9%에 비하면 압도적 수치다. 연령별로는 20대(85.5%)와 30대(82.9%)의 퇴직 고려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경공노총은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를 받는 무기계약직(76.4%)이 정규직에 비해 퇴직을 고려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전했다.
게다가 응답자의 75.6% 이상이 기관이 이전하더라도 주거지를 이전하지 않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직원들도 함께 이주해 새로운 곳에서 터전을 잡기 바란다”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바람과 상반된 결과다. 경공노총은 조사를 인용해 응답자의 63.6%가 부동산 대출을 안고 있는 상태며 이전 발표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는 응답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노동자 개인이 오롯이 감수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인 셈이다.
청년층과 어린 자녀가 있는 직원들 그리고 정규직에 비해 낮은 처우를 받는 무기계약직은 당장 주거가 걱정이다. 이재명 지사 말을 따르려면 이전지에 새로 주택을 구해야 하는데 대출을 받아 겨우 집을 마련한 가장이나 전세난에 고생하며 구한 전셋집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자녀가 있는 노동자는 보육, 교육에도 영향을 받는다. “온 가족이 진행 상황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노동자들 다수는 이전 발표가 지역 균형 발전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행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재명 표 장사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 ‘산하기관 직원을 도민이 아닌, 아랫사람으로만 보는 리더의 관점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개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공노총은 “노동자를 을이 아닌 도민이자 도정 파트너로 여기고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2월 17일 3차 이전 공공기관을 발표하며 “해당 기관 직원들은 매우 불편하고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지역에서 삶의 토대를 구축해 왔는데 북부나 동부로 이전하게 되면 불편함이 클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기본적으로 공적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사기업과는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서 불편하더라도 해당 지역으로 이전해서 그곳에서 삶의 토대를 다시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공공기관은 공적 목적이 우선이니 노동자들이 불편함을 감수해 달라는 얘기다. 노동자들은 “대안이 없다. 이주하지 않는다면 그만두라는 뜻 아닌가”고 해석했다.
경기 북동부가 그동안 수도권정비계획법, 군사 안보, 수자원 관리 등의 규제로 제한을 받아 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 공정의 가치에 부합한다”는 이 지사의 소신에 응원을 보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다만 공동체를 위한 결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소수의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만큼은 현재까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노동 존중을 도정 최우선 가치 중 하나로 내세우던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이 지사는 지난 2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직원들의 출퇴근 등 불이익이 예상된다는 질문에 “직원들 이주가 기본적인 목적이다. 기관장을 제외하면 관사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사하면 이사비용이나 주거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이사나 주거비용에 대한 지원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는 상태다. 4월 7일 경기도 공공기관지원팀장은 “도가 아닌 개별 공공기관에서 이사, 주거비용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 기관들과 모여 직원 복리 및 이전 지원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정할 생각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 못했다. 3차 이전 시군이 정해지면 구체적 지원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구체적 주거 지원 방식에 대해서는 “공공기관마다, 이전 지역에 따라 지원 방법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일정 기간 정착지원금을 월별로 지급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