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할아버지 1억 주사 맞게 해드리고파”…‘미스터트롯’ 녹화 중 비보, 슬픔 딛고 완주 톱7 결실
정동원 군 할아버지 고 정윤재 씨가 생전 ‘인간극장’에 출연했을 당시 모습. 사진=KBS ‘인간극장’ 방송 화면 캡처
요즘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중시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바로 ‘스토리’다. 물론 빼어난 가창력과 표현력 등 가수로서의 실력과 자질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실력과 자질을 갖춘 참가자는 너무나 많다. 여기에 수려한 퍼포먼스를 더한 출연자들이 화제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결국 결승전에 진출하고 우승권에 다가가려면 확실한 스토리가 필요하다. 특히 트롯의 정서와 잘 이어지는 ‘효’가 중요한데 ‘미스터트롯’ 진 임영웅, ‘미스트롯2’ 진 양지은 등이 대표적인 ‘효’ 스토리의 주역들이다.
그리고 정동원 군이 있다. 정 군은 KBS ‘인간극장’과 SBS ‘영재발굴단’을 통해 ‘미스터트롯’ 출연 이전 모습도 시청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정동원 군은 ‘인간극장’에서 가수로 성공하고 싶은 이유를 “미국에 가면 주사 한 번에 1억짜리(가 있대요), 그거 맞으면 무슨 암이든 다 낫는대요. 미국 가서 그 주사 맞게 해주려고…”라고 말했다. 폐암 진단을 받은 할아버지를 위해 노래 부른다는 정동원 군의 진심은 손자를 향한 고 정윤재 씨의 사랑과 맞닿아 아름다운 이중주를 만들어 냈다.
정동원 군이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하고 아버지 정용주 씨가 부산에서 사업을 했던 까닭에 하동에서 조부모 보살핌 속에 자랐다. 하동 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텔 건물을 개조해 식당으로 운영하던 곳이다. 어려서부터 정동원 군은 할아버지와 낚시를 하고 농사도 배우는 등 다양한 추억을 쌓으며 지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듣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나이지만 트롯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할아버지 고 정윤재 씨는 손자 동원 군을 위해 연습실을 만들어 주고 드럼과 색소폰을 사줬다. 색소폰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데리고 다녔고 정동원 군이 여러 행사를 돌아다니며 무대에 서기 시작한 뒤에는 매니저가 돼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대에서 부를 노래의 선곡을 도와주기도 했다.
정동원 군이 TV조선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할아버지다. 정동원 군은 ‘미스터트롯’ 첫 방송인 1월 2일 방송에서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면서 “TV에 나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 출연했다”고 말했다. 사진=TV조선 ‘아내의 맛’ 방송 화면 캡처
그렇게 정동원 군이 트롯 가수로 대중을 만날 수 있는 모든 준비와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고 정윤재 씨는 정동원 군과 함께 장거리 행사를 다녀오다 몸에 마비가 왔고 병원에서 암이 척추까지 진행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트롯 가수로 활동하는 것도 기뻤지만 그보다는 낯선 사람을 싫어해 마음을 닫고 살던 정동원 군이 무대에 서며 성격이 변한 것이 더 기쁘다고 말했다.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도 손자가 자기 탓이라고 여겨 다시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을 더 걱정했다.
반면 정동원 군은 가수로 성공해 큰돈을 벌어 할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주겠다며 더 노력했다. ‘인간극장’ 마지막 장면은 정동원 군이 한 행사 무대에 서 있고 오랜만에 손자의 무대를 찾아 객석에 앉아 있는 고 정윤재 씨의 모습이었다. 정동원 군은 “어렸을 때부터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고 말했다. 할아버지 고 정윤재 씨는 눈물을 보였고 시청자들도 함께 울었다.
‘인간극장’ 마지막 장면은 정동원 군이 한 행사 무대에 서 있고 오랜만에 손자의 무대를 찾아 객석에 앉아 있는 고 정윤재 씨의 모습이었다. 사진=KBS ‘인간극장’ 방송 화면 캡처
정동원 군이 TV조선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할아버지다. 정동원 군은 1월 2일 ‘미스터트롯’ 첫 방송에서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면서 “TV에 나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 출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16일 고 정윤재 씨가 별세했다. 당시 정동원 군의 아버지 정용주 씨는 동아닷컴 인터뷰에서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동원이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으니 상을 치르고 나서도 끝까지 열심히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고 출연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정동원 군은 톱7이 돼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정동원 군을 울지 않았다. “슬픈데 참고 있는 거다”라며 “울면 할아버지가 더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 정윤재 씨는 정동원이라는 걸출한 트롯 스타를 대중에게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 정동원 군에게 모든 사랑을 퍼부어주던 할아버지는 없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를 대신해 큰 사랑을 주고 있는 팬들이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하동 집 역시 이제는 팬들의 사랑이 가득한, 팬카페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카페 ‘우주총동원’이 됐다. 그리고 정동원 군은 할아버지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자신의 노래를 이제 모든 팬들에게 진심을 다해 들려주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