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엔 ‘생채기’ MB엔 ‘눈도장’
그런데 이 장관의 ‘백팔십도 달라진 행보’에 대해 한나라당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의 ‘배타적인’ 본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또한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날치기가 이재오 장관이 총괄기획하고 현장에서 직접 진두지휘까지 했던 ‘이재오 작품’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라인이 외부 관계자들의 조언과 간섭에 너무 취약하다는 말들이 있다. 유약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 날치기에 대해서도 무리하지 말자는 의견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외부에서 강경대응을 주장하자 최대한 협의하자는 의견이 뒤로 밀렸다. 이 과정에서 이 장관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사태로 예산안 정국을 잘 챙길 겨를이 없었다. 이때 국회 정무와 예산안 정국 등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는 이 장관 자신이 직접 총대를 메고 이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안다. 특히 이 장관이 현장 최전선에서 맨몸으로 저지선을 뚫자 당 의원들이 ‘청와대의 뜻’이라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장관은 날치기 직후 자신이 총책임자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이유야 어떠하든 피해갈 생각은 없다. 당이 총체적으로 결정해서 한 일은 내가 뒤집어쓰고 욕을 먹는다고 해서 변명할 일도 아니다. 욕먹을 일이라면 나 혼자 감당하는 게 옳다”라며 정면으로 맞섰다. 날치기는 여당 지도부가 결정해서 한 것일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해명이지만, 굳이 책임론을 거부하지도 않겠다는 다소 애매한 반응이었다. 이를 두고 여당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차마 전적으로 책임론을 인정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이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거리를 해결해줬다는 공을 그 스스로 걷어차기도 싫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장관은 3선 때까지 야당의 대표적인 저격수로 대여 투쟁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대권주자로 올라서면서 화합형 지도자로 변신하려던 상징이 90도 인사였다. 그런데 이번 날치기의 총괄 기획자로 의심받으면서 다시 ‘현장 반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본인의 대권 행보에는 상처가 날 수도 있겠지만 ‘주군’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이재오 없으면 안 된다’는 신임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2인자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 대통령을 제치고 ‘정치 대통령’으로 올라섰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날치기 직후 청와대도 꺼리는 개헌을 또 다시 들고 나온 ‘배짱’만 봐도, 정치에 관한 한 거칠 게 없는 이재오 특임장관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