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병레이저’ 오작동 이유가 바로…?
▲ 지난 11월 23일 연평도의 해병대 자주포 진지가 북한이 발사한 포탄에 의해 불이 붙은 가운데 병사들이 대응 포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부 |
“전쟁이 났다. 도시 곳곳에 포탄이 떨어졌다. 비상속보를 듣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지만 어찌된 일인지 작동하지 않는다. 라디오 역시 마찬가지다. 피난길에 먹을 식량을 챙기려고 냉장고를 열었지만 냉기는 멈춰있고, 음식은 상해있다. 학교에 간 아이의 휴대전화는 계속 먹통이다. 아이가 있는 학교로 가기 위해 다급히 차에 몸을 실었지만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하다 못해 손전등도 켜지지 않는다. 도시는 온통 깜깜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정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SF소설에만 등장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자기파를 이용한 EMP탄 한 방이면 이 모든 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도발 당시 우리 군의 대응공격은 상당수가 불발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의 EMP 무기 사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요신문>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 당시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는 첨단무기 EMP의 실상에 대해 자세히 파헤쳐 봤다.
지난 12월 3일 <동아일보>는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우리 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원인은 북한의 EMP 발생장치에 있다. 우리가 북한에 전자전에서 진 것이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냈다. 북한 포격 당시 우리 군의 대포병 레이더가 EMP 공격에 의해 오작동을 일으켜 포격점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군은 지난 12월 7일 <국방일보>를 통해 “우리 군이 북한군의 EMP 공격에 당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레이더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고 항변했다.
군 전문가들은 연평도 도발 당시 북한의 EMP 공격 가능성에 대해 일부 언론의 주장보다는 군 쪽의 입장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12월 8일 기자와 만난 군사전문가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이번에 북한군이 EMP 공격에 나섰다는 것은 약간 소설 같은 얘기다. 아직 북한의 EMP 공격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검증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양 위원은 “북한이 향후 EMP 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EMP 기술에 대해 분명 준비는 하고 있을 것이다”는 의견을 밝혔다.
EMP는 영어 ‘Electro Magnetic Pulse’의 준말로 전자기펄스를 뜻한다. 즉 순간적으로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군무기는 물론 일반 전자기기의 트랜지스터나 기판을 파괴시키는 공격을 뜻한다. 이는 비핵EMP와 핵EMP로 나뉜다. 비핵EMP는 별도의 장비를 이용해 공격을 가하는 형태이고, 핵EMP는 핵폭발 시 방출되는 대규모 전자기파를 이용한 형태를 말한다. 이번에 북한군의 사용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장비는 비핵EMP의 한 종류다. 양 위원은 “정작 무서운 것은 비핵EMP가 아니라 앞으로 나올 수 있는 핵EMP다. 비핵EMP보다 100만 배 이상의 강도와 범위를 자랑한다. 북한은 핵기술이 있기 때문에 핵을 이용한 EMP탄 개발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EMP탄은 핵폭탄을 이용한 변종 핵무기로 상공에서 폭파되면서 방사선과 함께 강력한 전자파를 내뿜는다. 양 위원에 따르면 핵심은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 EMP탄이 터질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한다. 양 위원은 “EMP탄은 어느 정도 고도에서 터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높은 고도일수록 파장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약 북한의 EMP탄 공격을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담함 그 자체다. 직접적인 살상은 없지만 군장비와 전자기기 작동이 멈추고 도시 전체가 멈춰버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피해로 통신장비 파괴를 꼽는다. EMP탄이 떨어지면 휴대전화를 포함한 통신 장비들은 강한 전자파로 인해 작동 불능이 될 것이라고 한다. PC를 이용한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유사시 속보를 들을 수 있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역시 이용할 수 없게 된다. 피난길에 오르면서 속보를 전혀 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교통수단 역시 전혀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기차나 전철은 여러 기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것이 전자식이다. 운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하다 못해 가정에서 운행하는 승용차도 전자식이기 때문에 시동조차 걸리지 않을 수 있다. 유사시 이동수단의 파괴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만에 하나의 일이지만 시속 300㎞로 달리는 KTX가 EMP탄 공격을 당했다면 자동 브레이킹을 할 수 없어 직접적인 살상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산업시설과 발전시설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컴퓨터 시스템화되어 있는 국내 산업시설은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화력과 원자력 등 발전시설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해 제어불능 상태가 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난 2008년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 산하 EMP 소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EMP 무기를 이용할 수 있는 잠재국가로 꼽은 바 있다. 또한 로스코 바틀렛 하원의원은 보고서 발표 당시 북한이 EMP 무기를 개발·운영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다고 증언한 바도 있다.
양욱 위원은 북한의 EMP 무기 개발 가능성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했다. 그는 “EMP 개발기술은 핵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확실히 핵실험을 해본 국가들이 제어 기술만 있다면 개발하기 수월하다. 북한이 남한보다 앞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방어능력은 거의 없다. EMP 공격은 산업화가 진행된 우리에게 더 치명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잠수함 포공격 특작부대 등을 통해 계속 당해만 왔다. 우리가 당한 것은 모두 보이지 않은 부분을 준비하지 않아서다. EMP 공격 역시 보이지 않은 부분이라고 허술하게 생각하면 또 당할 수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납을 이용한 방어시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대비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MP탄 개발경쟁
핵 강국만 기술 보유
인류가 EMP 효과를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1962년 미국은 태평양 하와이 존스턴섬에서 핵실험을 수행하다 하와이 지역의 트랜지스터 장비가 고장난 것을 보고 EMP 효과를 처음 발견했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군사 대국들은 그 효과를 극대화한 EMP탄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현재 EMP탄 제조기술을 보유한 국가로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꼽힌다. 하나같이 핵실험 전력이 있는 군사대국들이다. EMP탄은 높은 고도에 띄워야 파급력이 높아지는데 그 기술이 가장 앞선 나라가 미국이다. 파급력이 수천 ㎢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까지 EMP탄이 실질적으로 이용된 사례는 없다. 물론 레이더 교란이나 통신장비 방해 등 소규모 EMP 공격은 존재했지만 대규모 공격은 아직 없었다. 다만 지난 1999년 러시아가 유고슬라비아 분쟁 당시 미국을 마비시키기 위해 EMP탄 공격을 거론한 보고서가 공개된 바 있다.
핵 강국만 기술 보유
인류가 EMP 효과를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1962년 미국은 태평양 하와이 존스턴섬에서 핵실험을 수행하다 하와이 지역의 트랜지스터 장비가 고장난 것을 보고 EMP 효과를 처음 발견했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군사 대국들은 그 효과를 극대화한 EMP탄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현재 EMP탄 제조기술을 보유한 국가로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꼽힌다. 하나같이 핵실험 전력이 있는 군사대국들이다. EMP탄은 높은 고도에 띄워야 파급력이 높아지는데 그 기술이 가장 앞선 나라가 미국이다. 파급력이 수천 ㎢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까지 EMP탄이 실질적으로 이용된 사례는 없다. 물론 레이더 교란이나 통신장비 방해 등 소규모 EMP 공격은 존재했지만 대규모 공격은 아직 없었다. 다만 지난 1999년 러시아가 유고슬라비아 분쟁 당시 미국을 마비시키기 위해 EMP탄 공격을 거론한 보고서가 공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