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애견은 ‘나의 힘’ 가족처럼 대해 줘~”
▲ KIA가 가끔씩 더그아웃에서 난동을 부리는 로페즈와의 재계약을 두고 장고를 거듭했다고 한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지난해 한국시리즈 챔피언 KIA의 조범현 감독은 시즌 전 로페즈를 에이스로 꼽았다. 그러나 로페즈는 올 시즌 4승10패 평균자책 4.66으로 부진했다. 지난해 잦은 등판으로 어깨가 좋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정작 KIA가 곤혹스러웠던 건 성적이 아니었다. 로페즈의 돌출행동이었다. 로페즈는 마운드에 섰을 때 동료 야수가 실책을 범하거나, 자신이 강판당하고서 불펜투수가 동점을 허용하면 더그아웃에서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거칠게 욕을 하는 등 돌출 행동을 보였다.
로페즈의 돌출 행동은 결국, 견고했던 KIA의 팀워크를 깨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 선수는 “로페즈가 마운드에 있으면 괜히 긴장돼 더 실책을 범하게 된다”며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상전”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올 시즌이 끝나고 KIA는 로페즈와의 재계약을 두고 장고를 거듭했다. 돌출 행동이 흠이지만, 경기당 평균 6⅓이닝을 소화하는 선발투수도 흔치 않다는 게 KIA의 고민이었다. KIA는 결국 로페즈와의 재계약을 결정했다. 이때 로페즈에게 내건 단서가 ‘난동 금지’로 알려졌다.
그러나 KIA 관계자는 “우리가 재계약 조건으로 ‘난동 금지’를 요구했다고 알려진 건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돌출 행동을 벌일 시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이미 계약서상에 명기돼 있다”며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 외국인 선수 계약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으로, 그간 흐지부지했던 계약조항을 앞으론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구단의 뜻이 언론을 통해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8개 구단 프로야구팀의 운영팀장과 스카우트들은 “내국인과 외국인 선수의 계약조항은 판이하다”며 “(외국인 선수 계약서를) 자세히 들춰보면 별의별 조항이 다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내 의료보험료 구단이 책임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규약 ‘외국인 선수 고용규정’ 제8조 ‘참가활동보수’엔 ‘외국인 선수의 연간 참가활동보수는 미화 30만 달러(약 3억 4000만 원, 옵션 포함)을 초과할 수 없다. 단, 참가활동보수가 30만 달러를 초과해 인상할 때 인상률은 25% 이내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구단은 많지 않다. 프로 스카우트들은 “두산, 한화, 넥센 정도가 지킬 뿐 나머지 구단은 5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한다”고 털어놓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KBO에 외국인 선수 계약서를 제출하지만, 구단과 선수 사이에 이면 계약서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방 모 구단의 스카우트는 “모든 비정상적인 계약 백태는 이면 계약서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며 자신이 직접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몇 년 전 어느 외국인 선수와 계약을 눈앞에 뒀다.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선수였지만, 몸값이 의외로 싸 계약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이게 웬걸! 미국에 남아있는 자기 와이프의 의료보험료를 구단에서 해결해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전례가 없다’고 하자 ‘총 8만 달러에 달하는 의료보험료 가운데 자기가 반을 낼 테니 구단이 반을 지원하면 어떻겠느냐’고 수정 제안을 했다. 워낙 기대가 컸던 선수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계약서상에 특약조건으로 집어넣었다.”
다른 스카우트는 “그 정도는 양반”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SK에서 뛰던 케니 레이번이 타이완에서 뛰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레이번에 영입의사를 타진했더니 ‘다시 한국에서 뛰고 싶다’는 반응이 왔다. 단, 조건으로 ‘나는 와이프가 없으면 야구가 안 된다’면서 미국에 있는 아내를 데려오고 싶다고 했다. 구단에서 한국 체류를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현재 아내의 미국 직장 연봉이 몇 만 달러니 그 돈을 구단에서 보전해 달라’고 했다. 속으로 ‘뭐 이런 게 다 있나’싶어 거절한 바 있다.”
BBC방송 나오는 안테나 요구
한화와 삼성에서 뛰었던 제이콥 크루즈는 황당한 요구로 구단관계자들을 아연실색케했다. “구단이 개를 가족처럼 대해달라”는 요구였다. 요구인즉슨, 지금 기르는 개는 가족과 같으므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 개 항공권을 구단에서 부담하고, 동물병원 진료비도 구단에서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야구규약에 명기된 외국인 선수 계약서엔 ‘선수 가족의 의료비는 선수 자신이 부담한다’고 명시돼 있다. 구단이 야구규약을 들이밀어도 크루즈는 본체만체했다고.
외국인 선수 가운덴 매우 현실적인 요구를 하는 이들이 더 많다. 한화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브래드 토마스는 계약서에다 특약으로 ‘BBC방송이 나오는 위성안테나를 달아줄 것’을 요구했다. “아기가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한화 활약 ‘최장수 용병’ 제이 데이비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2003년을 제외한 7년간 한화에서 활약한 ‘최장수 외국인 선수’ 제이 데이비스는 선수단 미팅 미참가와 스프링캠프 늑장합류를 계약조건으로 제시했다. 선수단 미팅을 “끔찍한 순간”이라고 표현할 만큼 극도로 싫어했던 데이비스의 요구를 한화는 처음엔 수용했다. 그러다 구단 통역을 통해 설득하고서 동료와 팀 미팅을 함께 듣도록 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합류는 데이비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2월 중순에 합류하도록 배려했다. 데이비스는 한화에서 퇴단한 뒤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다가 지금은 미국 한 리틀야구팀에서 시급 25달러의 야구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계속된 결혼 실패와 사생활 관리 소홀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지만 고3인 아들이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이 유력한 농구 유망주라, 꿈을 잃지 않다고 한다. 참고로 아들의 에이전트는 데이비스의 한국행을 도왔던 에이전트가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