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답지 않은 왕관’ 쓰기 불편했나
▲ 지난 5일 열린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컵을 차지한 FC서울이 기뻐하고 있다(왼쪽부터 제파로프, 아디, 박용호, 정종수 사장, 빙가다 감독). 사진제공=FC서울 |
# ‘+1년’의 진실은
작년 12월, 빙가다 감독이 FC서울 지휘봉을 잡았을 때 외부에 알려진 빙가다 감독의 계약조건은 ‘1+1’년이었다. 연봉은 42만 달러였고, 우승시 별도 보너스로 10만 달러를 받기로 합의했다.
재계약 여부는 한 시즌을 보낸 뒤 추후 결정하기로 했고, 설사 결별을 해도 위약금 등 별도 조항은 삽입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빙가다 감독이 잔류해도 연봉 인상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 구단은 빙가다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령탑을 알아볼 수 있고, 빙가다 감독 역시 언제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챔피언결정전 직후, 서울 구단은 우승 보너스 지급을 확정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1’ 조항의 옵션 행사에 대해선 최대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기자회견에서 빙가다 감독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일단 앞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 이제 서울 구단과 선수단, 서포터스는 내 삶의 일부분이 됐다. 한국은 축구 외적으로도 너무 따스하고 매력적인 나라다. 항상 내 마음은 한국에 있을 것이다.”
순간 인터뷰 룸은 뒤숭숭해졌다. ‘앞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부분과 ‘항상 내 마음은 한국에 있을 것’이란 부분은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재계약 여부를 떠나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다. 새로운 행선지가 확정됐으니 떠나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대로 남고 싶다는 의미인지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이어진 선수단 우승 축하연에서도 마찬가지. 빙가다 감독과 정종수 서울 사장, 한웅수 단장 등 어느 사람의 입에서도 재계약 관련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서로 건배를 제의하고 축배만 들었을 뿐이었다.
# 서울 망설였던 까닭
표면적으로는 조용했어도 FC서울 구단과 빙가다 감독은 서로 추구하는 노선이 달랐다. 시즌 내내 “왠지 서울답지 않다”는 평가가 계속됐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했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재미있는 축구’ ‘흥미로운 축구’를 추구해왔다. 하지만 빙가다 감독의 영입으로 그간의 흐름이 모두 깨졌다. 결과만 놓고 볼 때 ‘성적’이란 토끼는 잡았어도 ‘재미’라는 포인트를 잡아내는 데 실패했다.
실제로 빙가다 감독은 항상 수비에 무게를 두고 시즌을 운용해왔다. “수비를 잘해야 공격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코멘트는 빙가다 감독으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안정감 있는 플레이가 뒷받침돼야 공격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전 사령탑이었던 터키 출신의 세뇰 귀네슈 감독 시절만 해도 서울은 강력한 공격 축구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90분 내내 박진감이 넘쳤고, 짜릿한 승부의 연속이었다. 오죽했으면 ‘서울 축구는 대승 아니면 대패’라는 말이 나왔을까.
정규리그 1위로 직행한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서울 고위 관계자는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빙가다 감독의) 재계약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분명히 서로가 추진하는 방향이 다르지 않느냐.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고민이 많다”고 했다.
챔피언 등극 여부를 떠나서 전통이 사라질 것을 우려, 이미 오래 전부터 FC서울 구단이 빙가다 감독의 거취를 놓고 고민이 컸다는 반증이었다. 7월 무렵에는 파리아스 전 포항 감독, 허정무 인천 감독 등이 물망에 올랐다. 파리아스 감독의 경우, 브라질 에이전트가 FC서울에 의향을 타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시선도 있다. FC서울 소식에 정통한 축구인들은 한결같이 “빙가다 감독이 딱히 한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선수들을 총괄하는 정도였다. 세부적인 전술 훈련과 작전 지시 등은 외려 부산 아이파크 지휘봉을 잡은 안익수 수석코치와 최용수 코치의 역할이 훨씬 컸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선수들 대부분이 밝힌 “빙가다 감독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우승도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과 엇갈린다. 선수들은 빙가다 감독을 좋아했다. 심지어 ‘아버지’라고 부르는 선수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복수의 K리그 감독들은 “선수들은 자신들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는 벤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빙가다 감독의 자율주의가 자칫 방임처럼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지적이었다. 안 전 수석코치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는 타입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안 전 수석코치가 악역을 자처했던 셈. 수석코치를 희망했던 최진한 2군 감독이 경남FC로 떠날 때도 서울은 아무런 조건 없이 쉽게 풀어줬다. 빙가다 체제의 종말을 일찌감치 예고했다는 시선도 있다.
이밖에 서울은 빙가다 감독의 지나친 느긋함에도 의문을 드러냈다. “전술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둘째치고, 공식 훈련 10분 전에 간신히 도착한 경우가 허다했다. 오후 3시 훈련이라면 오전 10시쯤 나와 일찌감치 훈련을 준비하고, 제반사항을 꼼꼼히 체크하던 귀네슈 전 감독과는 한참 달랐다”고 서울 관계자들은 말했다. 빙가다 감독은 지난해 검토됐던 후보군 중 네 번째 인물이었다.
# 빙가다 진짜 의중은
여기서 짚어볼 것은 빙가다 감독의 진짜 의중이었다. 정말로 빙가다 감독은 서울을 떠나고 싶었을까. 우승 인터뷰 때 전한 ‘서울은 내 삶의 일부가 됐다’는 빙가다 감독의 말에서 잔류 희망이 읽히긴 해도 앞서 언급했듯이 인터뷰의 다른 부분에서는 이별 의사가 함께 엿보이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빙가다 감독의 측근은 “(감독이) 남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고 했지만 FC서울 측은 인터뷰 내용을 전해들은 뒤 “이미 어느 정도 새로운 행선지를 정해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빙가다 감독의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가 파견한 직원이 입국한 사실에서 빙가다 감독의 미래가 화두가 됐다. 챔피언전이 끝난 지 불과 이틀 만에 흘러나온 중국 슈퍼리그 베이징궈안,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이적설 등이 이를 뒷받침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