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 리필숍, 주 1회 비건… “환경위기 우리 문제”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품만 선별해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숍이 주목받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숍 ‘덕분애’에 진열돼 있는 샴푸 벌크통. 사진=강은경 기자
20대 후반 직장인 박 아무개 씨는 최근 샴푸와 바디워시를 샴푸바와 비누로 대체했다. 또 큰 상자와 테이프가 버려지는 택배 주문 대신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다. 이전엔 두꺼운 플라스틱으로 된 샴푸 통을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쓰레기가 줄자 마음의 짐도 줄었다. 박 씨는 “무엇보다 재활용 쓰레기가 안 나오는 게 제일 좋다”며 “요새는 화장품 겉 포장지 정도는 자연 분해되게 나온 것들이 많은데 그런 상품들은 일단 호감이 간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의 소비는 기성세대의 그것과 결이 다르다. 자신의 소비가 사회와 환경에 미칠 영향을 민감하게 따진다. 청소년기부터 디지털을 접한 밀레니얼 세대와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Z세대는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가치소비를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MZ세대의 가치 소비에선 ‘자기 효능감’이 중요한 기제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소비로 사회와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최지혜 연구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MZ세대의 가치소비 확산의 중요한 기점으로 본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인간의 생태계 파괴 같은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이제 진짜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이들은 소비에서도 나와 동물, 사회가 함께 잘 살기 위한 고민을 하고 실천을 한다”고 짚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한국의 MZ세대 소비자는 아시아에서 가치소비에 가장 적극적인 집단이자 디지털 행동가이며 유통업계 큰손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2030세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치소비의 경험을 공유하며 유통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들의 소비성향은 실제로 공급 쪽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제로웨이스트(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운동) 맞춤형 매장 등이 속속 문을 열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2016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제로웨이스트숍 ‘더 피커’와 제로웨이스트 거점으로 자리잡은 ‘알맹상점’ 등 리필 스테이션 매장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주 고객층은 20~30대 여성이다.
대기업도 가세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리필 스테이션을 오픈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뷰티, 패션 등 소비재 업체들에는 사회와 환경을 고려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가 굉장히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이라며 “리필 스테이션은 당장 수익보다 향후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소비 스타일이 대중화되는 시기가 올 것을 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일에는 푸른 채소를’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은 비건식단부터 레시피, 비건 맛집 등을 공유한다. 사진은 참가자들이 단톡방에 공유한 비건식. 사진=참가자 제공
#간헐적 비건 “1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0명의 느슨한 비건이 낫다”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간헐적 비건’도 같은 맥락이다. 간헐적 비건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뜻한다. 모든 동물성 식재료를 거부하는 비건보다 실천하기 쉽다.
사회초년생 박 아무개 씨는 일주일에 하루 대체육이나 콩고기, 비건라면 등을 구입해 비건식을 차린다. 박 씨는 “고기를 먹는 행위 뒤에는 희생당하는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이 쉽게 간과된다”며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내 행위가 어떤 의미와 영향력이 있는지 인지하면서 살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일하는 양소희 씨(25)는 수요일마다 비건 도시락을 싼다. 간헐적 비건 프로젝트 ‘수요일에는 푸른 채소를’의 네 번째 시즌에 참여하고 있어서다. 양 씨는 육식 소비에 따른 환경 문제와 동물 착취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간헐적 비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5명의 참가자는 수요일마다 비건식을 하고 이를 단톡방에 공유한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육식을 했다면 벌금 개념으로 온라인 기부 플랫폼 해피빈에 기부한다. 얼마 전부터는 20~50대 직장 동료들과도 비슷한 모임을 열고 있다. 양 씨는 “우리 세대는 윗세대보다 환경 위기를 더 피부로 느끼는 터라 위기감을 내 위치에서라도 극복해 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성세대가 ‘어떻게 잘 먹고 잘 살 것인가’를 추구했다면 MZ세대는 ‘어떻게 최선의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말한다. 환경 위기나 생태계 붕괴 같은 과제를 안고 수십 년을 살아야 하는 청년들이 직접 나서서 소비 문화와 생활 양식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최지혜 연구위원은 MZ세대들의 가치소비의 배경 중 하나로 성장 신화의 붕괴를 꼽는다. MZ세대들이 부모세대가 겪은 두 차례의 금융 위기를 지켜보면서 경제 성장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전보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더 천착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할 말은 하는 MZ세대의 특성상 이들의 가치소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 교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관을 직접 실천한다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며 “가치소비에 동참하지 않는 타인에게 모욕을 주거나 간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면 더 많은 행동주의 소비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봤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 교수는 “기성세대들은 시민, 노동자 같은 큰 틀의 정체성을 따르지만 최근 젊은 층들은 비건, 친환경 등을 정체성으로 삼기도 한다“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지속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은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