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내친 ‘복지’로 첫 단추 꿴다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정치권에선 ‘차기 영순위’로 꼽히는 박 전 대표의 이러한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부는 향후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자체 분석을 내리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박 전 대표와 한 장뿐인 청와대행 티켓을 놓고 겨룰 여야 ‘잠룡들’의 발걸음도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박 전 대표가 대선 레이스의 고삐를 죄기 시작한 내막을 따라가 봤다.
지난 12월 15일 박근혜 전 대표가 배포한 보도자료가 언론은 물론 정치권 인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 전 대표가 12월 20일 ‘사회보장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박 전 대표가 자신이 발의한 법안의 공청회를 여는 것은 처음인지라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것이다. 더군다나 세종시 수정안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박 전 대표가 “현직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정책이나 주요 현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 왔기 때문에 정가에서는 이번 공청회를 남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 정호성 보좌관은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공청회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박 전 대표가 ‘복지’를 내세워 대권을 향한 조기 행보를 시작했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는 상태다.
이번 공청회 개최를 놓고 친박과 친이는 확연하게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친박 인사들은 ‘주군’인 박 전 대표의 활동 개시에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우리에게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한나라당의 최대 주주 중 한 명인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반면, 친이계는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산안 단독 처리로 인해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대권 행보를 준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친이계 의원은 “지금 한나라당이 서민형 복지 예산을 줄였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데 당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박 전 대표가 복지 관련 공청회를 주최하는 것이 그리 썩 달갑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박 전 대표 측근들 사이에선 이번 공청회를 ‘몸풀기’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들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공청회 그 이후의 박 전 대표 행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권 출범 후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박 전 대표가 어떤 식으로든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요신문>이 박 전 대표 측근들과 자문그룹에 속한 인사들을 접촉해본 결과 이미 10월경부터 이를 위한 작업에 착수한 정황들이 속속 포착됐다. 한 자문단 인사는 “그동안 ‘내공 쌓기’에 주력했던 박 전 대표가 2011년 1월부터는 정치권 현안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내부적으로 강하게 제기됐다”면서 “우선 박 전 대표가 생각한 정책들을 최대한 쉽게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주력하는 한편, 민심을 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도록 ‘스킨십 정치’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고 털어놨다. 박 전 대표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몇몇 인사들은 얼마 전까지 서울 시내 모처에서 합숙까지 하면서 구체적인 전략 수립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 자리엔 박 전 대표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격려를 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박 전 대표는 대학 및 세미나 등을 통한 강연 준비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측근들과 함께 강연 주제, 대상, 장소 등 세심한 부분까지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강연 정치’로 본격 대권행보의 물꼬를 트는 셈이다. 윤호석정치연구소의 윤호석 소장은 “정치인들에게 가장 부담이 덜 가면서 파급력을 높일 수 있는 정치 활동 중 하나가 강연이다. 박 전 대표처럼 특별한 주목을 받는 정치인일수록 효과는 더욱 크다. 어딜 가든 언론이 따라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연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책을 대중들에게 알릴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이르면 1월부터 본격적인 ‘강연 정치’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지방’과 ‘대학’이 그 장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밖에 박 전 대표는 자신이 구상하는 대형국책사업, 지방개발사업 등 이른바 ‘박근혜표 프로젝트’의 공개 여부도 검토 중이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표가 강연에 어떠한 내용을 포함시킬 것인지를 놓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와 측근들 역시 이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자문단의 한 인사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논란을 일으킬 만한 것은 없지 않겠느냐”면서도 “다만 청중들이나 기자들이 묻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박 전 대표가 정치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펼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윤호석 소장 역시 “박 전 대표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괴력이 있는지는 이미 입증이 된 바 있다. 야권은 물론 여권 친이계까지 박 전 대표 강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 내부에서도 내년 1월로 예정된 한미 FTA 비준 동의안, 4대강 사업 등 첨예한 정치 사안들에 대해 그동안의 스탠스와는 달리 박 전 대표가 의견을 밝힐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박 전 대표의 태도 변화에 대해 정치권에선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표 측근들 역시 “단편적인 것보다는 수많은 동기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수도권 친박 의원은 “최근 친박 내에서 ‘3년차 불가론’이란 말이 돌았다. 대통령 임기 3년째에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차기 주자가 당선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인데 이는 현실에 안주했기 때문”이라면서 “대세론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박 전 대표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가 진보 담론인 ‘복지’를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이나 강연을 통한 젊은 층과의 소통을 준비하는 것도 비교적 로열티가 강한 ‘집토끼’보다는 외연확대에 필요한 ‘산토끼’를 끌어들이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얼마 전 불거진 박 전 대표에 대한 불법 사찰 의혹도 조기 대권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는 전언이다. 당시 박 전 대표는 굉장히 불쾌해하며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것이 박 전 대표로 하여금 ‘결심’을 내리게 한 배경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여권 핵심부에서도 박 전 대표가 20일 공청회를 ‘신호탄’으로 현 정권과의 ‘거리두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을 내놓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차기 주자로서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정무라인 한 관계자는 “예산안 처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박 전 대표도 이를 의식한다면 더 이상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지난 8월 회동 이후 조성됐던 화해 모드에 변화가 생길 조짐을 이미 캐치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청와대는 박 전 대표가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언급을 하는 것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 전 대표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힐 경우 세종시 수정안과 마찬가지로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친박과 의사소통이 원활한 정진석 정무수석이 박 전 대표의 향후 일정 등을 체크하기 위해 친박 의원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