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장 논 구조와 유래를 소개하고, 청산도의 수려한 경관까지 재조명
구들장 논을 설명하는 임하규(89세) 옹
[일요신문=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청장 윤병두, 이하 서해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완도 청산도 구들장 논을 소개해 눈길을 끄는 가운데 청산도의 아름다운 경관까지 덤으로 소개해서 청산도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했다.
서해청은 지난 4월 중순경 완도 청산도를 방문 구들장 논과 노란 꽃의 물결을 이룬 배추꽃 등 청산도 경관을 촬영하고, 청산도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쉽게 청산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글들을 보도 자료를 통해 배포했다.
이 글에는 청산도에만 존재하는 구들장 논의 구조와 유래 만드는 과정이 담겼고, 이와 더불어 그동안 방송과 영화를 통해 소개되었던 청산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노란 유채꽃의 비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서해청이 소개한 글을 토대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청산도의 구들장과 경관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 구들장 논이란?
세계에서 유일하게 완도군 청산도에서만 발견되는 구들장 논은 비탈진 산기슭에 논농사를 짓기 위해 만든 다랑이(논)의 구조로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가옥에서 전통 난방을 위해 사용됐던 평평한 얇은 돌인 구들장을 논바닥에 쌓아 돌 아래 바닥은 배수로를 만들고 구들장 위에는 흙을 쌓아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구들장 논의 이점은 기존 다량이 논에 비해 논바닥인 구들장 아래 많은 공간이 생기므로 논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흙의 양을 줄일 수 있어 자재와 노동력을 줄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비탈진 땅에도 논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논바닥 밑에 형성된 배수로를 통해 농업용수의 재활용과 담수 저장이 가능해 홍수 예방이라는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독특한 축조 방식과 조상들의 지혜가 세계적으로 인정돼 지난 2014년 인류 유형문화유산인 유네스코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여기에 논농사가 남방문화라면 우리의 전통 난방방식인 구들장은 북방문화인 점을 고려하면 구들장 논은 남방 민족과 북방 민족의 문화적 결합이란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어 완도 청산도가 서로 다른 두 민족의 문화융합지라는 역사적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 구들장 논은 언제부터 조성됐나?
구들장은 논은 청산도에서도 대봉산 산기슭에서만 나타난다. 구들장 논이란 명칭도 옛날부터 전래한 이름이 아닌 지난 1982년 큰 홍수가 났고, 이로 인해 있던 논의 일부가 크게 훼손되면서 바닥이 드러나 논의 구조가 알려지면서 당시 이를 취재한 언론사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이 고향인 임하규 옹(89)은 지난 1630년대 무렵 나주 임씨인 자신의 선조들이 이곳에 처음 당도해 정착했고, 이후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구들장 논이 만들어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문헌상 우리나라에서 온돌이 처음 사용된 것은 조선시대 초 당시 수도인 한양에 있던 성균관인 것으로 보아 임 옹의 설명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구들장 논은 빠르면 17세기 중엽에 최초에 등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 구들장 논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조선시대 중 쌀은 단순히 먹을 식량을 넘어 부를 가늠하는 가치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섬인 완도 청산도의 경우도 논농사의 중요성은 그만큼 컸다. 완도 같은 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골의 험준한 비탈길 등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에도 다랭이 논이 만들어진 배경도 쌀의 중요성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고급 식재료로 속하는 생선의 경우 지난 1970년대까지는 섬이나 어촌 마을에서는 거저 줄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지 않았다. 거기에 생선은 섬 주민의 주식이 될 수 없었다. 이에 비해 쌀이나 보리, 밀 등 곡물은 중요한 주식이라 이를 경작할 수 있는 논과 밭의 필요성은 그만큼 컸다.
하지만, 섬의 경우 물이 부족한 곳이란 특성상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리시설을 제대로 갖추기 힘들어 논을 만든다는 것은 힘들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다랭이 논과 바로 구들장 논인 것이다.
▲ 구들장 논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구들장 논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비탈진 경사면에 돌로 축대를 쌓고, 이 공간을 채우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최소한의 재료 사용과 노동력 투입을 위해 시도된 공법이 바로 구들장 논의 등장이다.
실제 구들장 논은 공간을 비게 한 만큼 논농사를 짓기 어려운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랭이 논에 비해 재료와 노동력의 소모를 줄였다. 여기에 남아 있는 빈 공간에는 마치 수로처럼 설계되어 이 수로를 통해 경작에서 쓰고 남은 물은 아래의 논으로 흘러들게 함으로써 농업용수의 재활용이란 지혜와 다른 사람과 물을 나눌 수 있는 배려의 철학이 담겼다.
일반인들이 유채꽃으로 아는 4월에 핀 월동요 배추꽃
▲노란 유채꽃의 비밀?
완도 청산도 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유채꽃이 들판을 가득 메워 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유채꽃이 피는 시기는 3~4월로 청산도의 유채꽃은 이때 싹이 자라는 청보리와 함께 청산도의 마스코트다.
특히 청산항에서 섬 안쪽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의 당리 언덕은 3~4월이면 노란색의 유채꽃이 장관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유채꽃으로 알고 있는 노란 꽃의 정체가 실제 상당수가 월동용 배추들이 피워낸 배추꽃이라는 사실을 외지인들은 잘 모른다.
이곳 도락리(당리)에서 10대째 거주하고 있다는 유복남씨(75·행복해 한옥민박)는 “청산도의 유채꽃은 주로 3월 말께 피고, 배추꽃은 4월 중순께 만개한다며 따라서 지금 노란색은 배추꽃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80년대까지 당리 일대의 논과 밭에는 유채꽃이 아닌 보리와 밀, 벼, 콩, 감자(고구마) 등이 재배됐고, 이들 작물은 청산도민의 주된 식량이었다. 따라서 당시 청산도의 봄인 3~4월의 풍경은 푸른 청보리의 물결이, 그리고 5~6월에는 익어가는 보리와 밀이었고, 유채꽃은 지난 2000년 이후 청산도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몰리자 경관 조성 차원에서 심어졌다.
▲ 밀수꾼 소굴로 알려진 범 바위 이야기
청산도에는 밀수꾼들이 기승을 부렸다는 범 바위가 있다. 범 바위는 청산항에서 당리 ‘서편제’ 촬영장을 지나 동남쪽으로 가면 권덕리에 위치하고, 바위의 형상이 흡사 호랑이 얼굴을 닮아 범 바위로 불린다.
그런데 범 바위 근처에는 강한 자기장이 형성되어 최첨단의 해상 감시 장비가 개발되지 않을 시에는 범 바위 근처 해상은 군·경의 레이더 장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 한때 밀수꾼들이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해양경찰의 완벽한 감시망 안에 들어와 있다. 해경은 이 일대를 지나는 선박의 작은 움직임도 완벽하게 포착할 수 있다. 또한, 해경의 500톤급 경비함이 청산도 방문객의 안전과 세계농업유산 보호 및 해양치안 확보를 위해 거의 상시로 청산도 인근 해상에서 체류하다시피 해상경비에 임하고 있다.
▲ 청산도 왜 대중 영상문화의 요람이 되었나?
청산도는 자연경관이 수려한 것 이외에도 우리의 전통 논밭과 돌담 등 옛 마을 풍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촬영됐으며 지난 1990년대 초 처음으로 영화 ‘서편제’의 촬영은 청산도를 영화인들이 좋아하는 장소로 인식되게 했다.
실제로 ‘서편제’에 이어 지난 2000년대 들어 미니시리즈 ‘봄의 왈츠’가 촬영됐고, 현재까지도 당리 언덕에는 세트장이 보존되어 청산도 관광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강효근 호남본부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