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섶다리 건너면 눈과 별이 쏟아진다
▲ 가마를 탄 관찰사들이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참배키 위해 놓았던 데서 유래한 주천 쌍섶다리. |
바람이 살을 베어낼 것처럼 매섭다. 이럴 때면 두문불출해야 마땅하겠지만, 더욱 생각나는 여행지가 있다. 강원도 영월이다.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드는 쌍섶다리와 날이 찰수록 하늘이 맑게 열림으로써 별이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천문대가 있는 곳. 이곳이야말로 완벽한 겨울여행지가 아닐까.
300년 전 섶다리 그 풍경 그대로
서울을 기준으로 북에서 남으로 달릴 때, 영월로 들어서는 첫 관문은 주천면이다. 중앙고속국도를 타고 내려가다가 신림나들목으로 빠져나가 동쪽으로 20분쯤 달리면 주천면에 이른다. 강마을 영월의 큰 강 중 하나인 주천강이 그 중앙으로 흐른다. 이곳에는 주천리삼층석탑을 비롯해 신일리고려고분 등 문화재가 많지만, 마음을 뺏는 것은 주천면소재지의 쌍섶다리다. 이 다리는 주천교를 건너 제방을 따라 왼쪽으로 가다보면 만난다.
주천 쌍섶다리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청년들이 모여 쌓았던 다리다. 약 1.5m 높이로 나란히 두 개의 다리를 놓았다. Y자 모양의 나무를 뒤집어서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소나무가지 따위를 얼기설기 촘촘히 놓은 후 황토로 굳게 다진 것이 섶다리다. 여름 홍수철이면 떠내려가게 그냥 두거나 철거한 후 가을이 오면 다시 쌓는다. 주천면에는 이곳 외에 판운리에도 섶다리가 하나 있으나 그것은 외다리다.
쌍섶다리는 역사적으로 그 내력이 매우 깊다. 1457년 단종이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하게 되는데, 영월에는 이와 관련된 대표적 유적이 두 군데 있다.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단종의 무덤인 장릉과 단종이 유배됐던 청령포다. 장릉은 그 위치조차 알려지지 않다가 1541년 당시 영월군수였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 정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숙종 때 단종이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9년(숙종 25년)부터는 새로 부임하는 강원관찰사로 하여금 반드시 장릉을 참배케 하였다.
쌍섶다리는 이 때 생겼다. 원주에서 영월로 가는 관찰사들은 주천강을 건너야 했다. 요즘이야 주천교와 주천2교로 훌쩍 건너면 됐지만 당시에 그런 다리가 있을 리 만무. 그래서 쌍섶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왜 외다리가 아니라 쌍다리일까. 그것은 관찰사가 가마를 타고 건넜기 때문이다. 가마꾼들이 네 발을 이고 가야 했던 탓이다.
쌍섶다리 놓기의 전통은 콘크리트다리들이 생기면서 어느 순간 사라진 적이 있었다. 필요성이 없어서였다. 그러다가 2004년 제1회 주천강 쌍섶다리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그 모습을 매년 볼 수 있게 됐다.
한편, 쌍섶다리가 있는 주천면소재지에서는 5일장이 매달 1, 6일에 열린다. 주천의 특산물인 콩, 감자, 더덕, 고추 등을 이고 나와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다. 날짜를 맞춰 가면 좋겠다. 장터 한쪽에는 다하누촌이 있다. 한우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가격거품을 제거해 싸게 공급하는 곳이다. 다하누촌의 한우가격은 시중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다하누촌 정육점에서 구미 당기는 고기를 구입한 후 주변 식당에 들어가서 구워먹는 식으로 운영된다. 등급별로 고깃값이 다르지만 안심, 채끝, 치맛살 등 특상품도 600g 기준 3만 원 안쪽이다. 식당에서는 1인당 자릿세 2500원을 받는다. 육횟거리를 사오면 무쳐주고, 냉면과 공기밥 등은 따로 판매한다.
▲ 별마로천문대 앞은 영월 최고의 전망대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영월읍내의 야경이 멋있다. |
한반도 빼닮은 선암마을
주천면에서 영월읍 방면으로 88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길은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이 길에 익히 잘 알려진 선암마을이 있다. 한반도 지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마을이다. 서강의 샛강인 평창강 끝 쪽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산으로 이어져 있다. 더욱 절묘한 것은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성마저도 닮았다는 것이다. 현재의 한반도와 다른 점이라고는 휴전선이 없다는 것뿐이다. 남북이 극한 대치상황으로 치닫는 요즘, 오간재 전망대에서 선암마을을 바라보노라면 현실이 아프고 또한 슬프다.
선암마을을 거쳐 영월읍에 도달하면 청령포와 동강사진박물관이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청령포는 단종유배지다. 서강이 휘돌면서 완벽히 세상과 차단한다. 이곳은 소나무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하다. 단종의 슬픔을 영원히 기억하기로 맹세한 듯 소나무의 푸름은 겨울이 되어서도 변치 않는다.
동강사진박물관은 사진을 통해서 영월의 빼어난 자연경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동강, 서강, 평창강, 주천강, 선돌, 요선암 등 영월의 자연이 이 한 곳에 담겼다. 영월군청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동강사진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공간은 지상 1, 2층이다.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면 사진의 원리와 기원, 발전 등에 대해 정리된 전시공간이 오른쪽에 있고, 왼쪽에 자리한 전시실에서는 기획전이 진행된다. 2층에도 전시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영월 사람들의 작품으로 메워지는 곳이다. 주천면의 메타세쿼이아 길과 섶다리, 서강의 선돌과 한반도를 꼭 닮은 선암마을, 단종의 슬픔이 서린 청령포, 어라연 등 동강의 절경이 단골 배경으로 등장한다. 자신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잡아낸 고향 영월의 사진은 하나하나가 감동 그 자체다.
관심을 끄는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진체험실이다. 모두 3개의 존(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존에는 셔터와 조리개의 원리 등에 대해 실습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제2존은 X선촬영, 천체촬영, 고속촬영, 입체사진 등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을 담은 특수사진까지 영상과 청음장치를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블루스크린이 설치된 제3존은 영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출력할 수 있도록 했다.
▲ 국내 최대 규모의 망원경이 있는 별마로천문대. |
겨울 해는 무척이나 짧다. 몇 군데 둘러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해가 기운다. 하지만 여기서 영월의 여행을 접을 필요는 없다. 별마로천문대를 찾으면 그 시간이 더욱 연장된다.
별마로천문대는 봉래산(799.8m)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별마로는 ‘별’과 정상을 뜻하는 우리말 ‘마루’에 한자 고요할 ‘로’를 합성한 이름이다. 합쳐 새기면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 된다. 민간천문대 중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직경 80㎝ 주망원경과 보조망원경 10대가 있고, 천문전시실을 비롯해 시청각교재실 등 내부교육장이 별자리의 이해를 돕는다.
우주다큐멘터리 시청과 가상 별자리 찾기 훈련을 한 후 별관측이 시작된다. 날씨가 추울수록 하늘은 맑다. 4계절 중 가장 아름답다는 겨울철 별자리들이 저마다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며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별마로천문대에 오르면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지지만, 발밑에서는 불빛이 달려든다. 별마로천문대는 영월 최고의 전망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영월읍내의 야경이 특히 환상적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만종분기점→중앙고속국도 신림IC→88번 국도→주천면 쌍섶다리→선암마을→영월읍 ▲먹거리: 주천면 신일리에 TV 프로그램 <1박2일> 멤버들이 다녀가 더 유명해진 주천묵집(033-372-3800)이 있다. 따뜻한 멸치육수에 메밀 함량이 높아 더욱 고소한 묵을 한가득 넣은 후 밥을 말아먹는 묵밥이 일품이다. 묵뿐 아니라 두부요리도 잘 한다. ▲잠자리: 별마로천문대 가는 길인 영월읍 삼옥1리에 아름풍경펜션(http://www.arumview.co.kr, 033-375-4885)이 있다. 펜션이 깔끔하고, 주변이 숲이라 무척 조용하다. 청령포 앞쪽에는 리벌텔(033-375-8801)이라는 깨끗한 모텔이 있다. 영월읍 문화예술회관 주위에도 나이스모텔(033-373-0709), 퀸모텔(033-373-9191) 등 숙박시설이 많다. ▲문의: 영월군청 문화관광포털(www.ywtour.go.kr) 033-370-2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