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플라스틱’ 가는 과도기…“위장 녹색 기업은 도태될 것”
패션·뷰티 산업은 물론 카페와 백화점 등 기업들이 친환경에 뛰어들면서 한쪽에서는 ‘그린 워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이니스프리의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의 홍보 이미지(왼쪽)와 소비자가 SNS를 통해 공개한 플라스틱 내용기. 사진=이니스프리·페이스북 ‘플라스틱 없어도 잘 산다’ 페이지
최근 아모레퍼시픽 자회사 이니스프리는 ‘종이용기’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해 6월 출시한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이 종이인 척 위장한 플라스틱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제품은 겉 소재가 종이고 전면에는 ‘안녕, 나는 종이병이야(Hello, I am paper bottle)’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내부는 플라스틱이다. 페이스북 ‘플라스틱 없어도 잘 산다’ 페이지를 통해 불거진 이 논란은 환경친화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기업들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다.
업체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다. 해당 용기가 다른 제품에 비해 재활용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무색 폴리에틸렌(PE) 재질의 내용기를 사용해 기존 제품 대비 51.8%의 플라스틱을 저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된 까닭은 소비자를 오인케 한 표현 탓이다. 제품 박스의 분리 배출 설명을 읽지 않으면 종이 용기에 액상 화장품을 담은 혁신적인 제품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니스프리 측은 “제품 네이밍으로 인해 용기 전체가 종이 재질로 인식될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며 사과했다.
2000년대 말부터 세계적으로 소재 화학 분야를 비롯해 자동차, 에너지 기업 등에 대해 그린 워싱 비판이 일었다. 글로벌 친환경컨설팅업체 테라초이스는 △친환경을 강조하면서 비환경성 효과는 감추는 것 △증거 불충분 △애매모호한 주장 △관련성이 없는 주장 △인증마크 도용 등을 대표적인 그린 워싱 형태로 분류했다.
그린 워싱과 관련해 뷰티·생필품·식음료 업계가 가장 자주 논란에 휩싸인다. 최종 단계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실생활과 밀접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산업군의 특성상 제품을 용기에 담거나 포장해야 하기 때문에 분리배출과 환경오염 문제에 늘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분리배출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혼합 소재 사용이 만연하다. 제품 원료만 보면 ‘환경친화적’이라 이름 붙여도 무방한 제품이 많지만, 용기에 담아야 하는 일이 필수기에 ‘친환경’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화장품 용기는 대체로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유리,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등의 원료로 만들어지는데 이마저도 복합 소재로 구성되기 일쑤여서 재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펌프, 작은 크기의 샘플, 라벨이 붙어 있거나 불투명한 페트병 등도 일반쓰레기다. 최근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화장품 공용기를 모아 화장품 회사에 전달하면서 재활용 가능한 용기 제작을 요구하는 ‘화장품 어택’ 캠페인을 벌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아직 기술력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플라스틱 복합 소재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화장품의 안전성 때문”이라며 “단일소재 투명 용기를 사용하면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질 문제 때문에 유통기한이 상당히 짧아진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과대 포장, 플라스틱 복합 용기를 모두 거부하지만 한쪽에서는 화장품에 안전한 소재를 적용하길 바라기도 한다”며 “과학계와 화장품 업계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친환경을 지향점으로 삼아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타벅스가 전국에서 2025년까지 일회용 컵 사용을 ‘제로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즌마다 반복되는 ‘MD 대란’에 대한 조치는 빠져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21SS 시즌 상품이 진열돼 있는 서울의 한 스타벅스 매장. 사진=강은경 기자
프랜차이즈 카페나 마트, 백화점 등도 그린 워싱에서 자유롭지 않다. 2018년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중 처음으로 자연 분해되는 종이빨대를 도입한 스타벅스는 지난 6일 ‘2025년까지 일회용 컵 제로화’를 선언했다. 이 같은 적극적인 친환경 정책 발표에도 일부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 나왔다. 매 시즌 반복되는 특별기획상품(MD) 대란에 대한 조치는 없어서다.
스타벅스는 계절이나 기념일별로 한정판 텀블러·머그잔·식기·가방 등 상품을 선보인다. 이중에는 두꺼운 플라스틱, 고무와 스테인리스, 나무 등이 혼합돼 분리배출이 아예 불가능한 상품이 많다. 매년 한국에 출시되는 스타벅스 굿즈는 400여 종.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매출에서 음료 외 상품의 매출 비중은 약 20%로 경쟁사보다 높다. 스타벅스의 적극적인 친환경 행보에도 ‘텀블러 사용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카페 프랜차이즈 업계 한 관계자는 “굿즈나 다양한 상품은 카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라며 “기본적으로 실용성, 다회성을 염두해 제작하고 있지만 환경친화적인 부분은 점차 보완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위원장은 “스타벅스가 종이빨대를 개발해서 인식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빨대 정책 하나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장기 경영 정책을 삼아 플라스틱 발생량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환경적인 측면은 가리고 친환경만 내세우는 사례도 빈번하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은 최근 뉴질랜드 친환경 세제 브랜드 ‘에코스토어’와 손잡고 세제 리필 스테이션을 열었다. 그러나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 환경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내용물은 수입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플라스틱 절감과 ‘탄소 발자국(상품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맞바꿔 놓고도 친환경성만 강조했다는 것.
전문가들은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감수성은 날로 예민해지는데 기업들이 마케팅에 급급해 그린 워싱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 교수는 “친환경과 관련해 단기 수익성이 중요한 시기는 지났다”며 “잠깐은 친환경인 척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운영하고 어떻게 더 잘 알릴지 고민할 때”라고 짚었다.
현재의 기업 활동을 두고 당장 그린 워싱인지 아닌지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소비자에게 환경부담을 떠넘기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기업들이 먼저 생산과정부터 소재를 단일화하거나 환경오염을 줄이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유미화 상임위원장은 “기업은 한 제품으로 친환경을 달성한 것처럼 홍보하기보다 노력하는 과정임을 보여주고, 소비자도 변화에 동참하며 함께 과도기를 넘겨야 한다”면서도 “기업의 자율성에만 맡기기보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 그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은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