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고지 앞두고 중동서 모래바람
▲ 지난 12월 18일 ‘클럽월드컵 UAE 2010’ 3-4위 결정전을 찾은 제프 블래터 FIFA 회장과 정몽준 FIFA 부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 중동세력 등장
FIFA는 각 대륙 연맹에 모두 8장의 부회장직을 보장하고 있다. 이 중 유럽만 3명이고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미, 북중미에 각 한 명씩 부회장을 둘 수 있다. 이번 총회에서는 부회장직 선거 외에 나란히 임기가 만료된 또 다른 3명의 아시아권 FIFA 집행위원 선거가 함께 열리는데 정 부회장은 부회장직 선거에만 나선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FIFA 부회장은 곧 ‘파워’를 의미한다. 무엇보다 세계 축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FIFA 부회장은 FIFA 집행위원 자격도 갖는다.
4선째인 정 부회장은 4년 임기를 마친 상태로 이번 선거에도 일찌감치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2007년의 상황과는 많이 변했다. 당시에는 경쟁 후보 없이 단일후보로 출마, FIFA 부회장에 당선됐는데 올해는 요르단축구협회장 알리 알 후세인 왕자가 출마를 선언했다.
더욱이 정 부회장은 재선 도전 선언 이후 2022년 월드컵 유치활동에 매진해 왔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도 각별하다. 중동세와의 또 다른 만남이다. 만에 하나 정 부회장이 재선에 실패하면 한국 축구는 당분간 세계 축구계에서 힘을 쓸 수 없다.
모하메드 빈 함맘 AFC(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의 행보에도 시선이 쏠린다. 한국은 2022년 월드컵 개최를 놓고 함맘 회장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탓에 함맘 회장에 큰 기대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양측은 팽팽히 맞서왔다. 작년 함맘 회장이 FIFA 집행위원 재선거를 치르는 동안, 정 부회장은 함맘 회장과 경쟁했던 셰이크 살만 바레인축구협회장을 지원했다. 함맘 회장과 외부적으로는 화해를 했지만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그래서일까. 당시 선거전 이후 함맘 회장은 국내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에도 거의 응하지 않았다. 요르단은 카타르와 가까운 중동의 이웃이다.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가까운 같은 중동국에 함맘 회장의 은밀한(?) 지원이 이뤄질 것이란 일각의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 재선 가능성은
팔이 안으로 굽어서일까. 아니면 이미 준비를 끝냈다는 여유일까. 국내 축구계의 시각은 정 부회장의 재선을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다.
대항마로 나선 요르단의 알리 왕자가 아직 국제 스포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탓이 크다. 물론 걸프와 페르시아를 두루 아우르는 서아시아축구연맹(WAFF)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나 20여 년 세계 축구의 흐름을 훤히 꿰고 있는 정 부회장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정 부회장은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을 함께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공신들을 선거를 앞두고 끌어왔다. 축구협회 사무총장을 맡았던 가삼현 현대중공업 전무와 김동대 울산 현대 단장이 직접 뛰고 있다. 특히 가 전무의 경우,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영입 등 굵직한 사안들을 직접 해결하며 국제 업무에 능통한 든든한 우군이다. 전 세계 곳곳에 축구계 지인들이 퍼져 있어 정 부회장은 간접적인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알리 왕자는 어떠할까. 정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각국을 돌면서 득표 활동에 나선 알리 왕자가 최근 밝힌 출마 배경이 흥미롭다. 알리 왕자는 “아시아 축구를 활성화하겠다는 각오가 선거 출마를 종용했다”면서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때 FIFA 이사회의 투표를 놓고 부정 의혹이 제기됐는데 FIFA 이미지 회복을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사실 알리 왕자는 중동 연대의 고른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단일 후보로 추대받은 것 역시 아니다. 정 부회장이 가까운 이웃 일본 및 중국 축구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처럼 알리 왕자 또한 쿠웨이트 등의 환영은 받지만 바로 이웃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했다.
축구협회는 내부적으로 함맘 회장이 정 부회장을 지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유도 나름 타당하다. 알리 왕자가 FIFA 부회장이 될 경우, 함맘 회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또 한 명의 경쟁자가 탄생하는 것을 달가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협회 고위 인사는 “일단 정 부회장의 재선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함께 선거전에 나선 인물이 등장한 탓에 ‘만에 하나’를 걱정할 수 있지만 보수적인 AFC 회원국들이 아직 세력이 미약하고, 새로운 인물에 표를 던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한국 및 가장 최근 아시아 대륙에 편입된 호주를 포함해 AFC 가맹국은 총 46개국. 이 중 걸프 지역에 14개국이 몰려 있는데, 요르단에 표를 던질 것으로 보이는 지역이 거의 없어 정 부회장이 과반수 이상 득표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 외부의 시선
하지만 내부적인 시선과 별개로 외부의 시선에도 신경이 쓰인다.
일단 AFC 측의 분석을 살필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정 부회장이 아시아 전역의 고른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특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은 오래전부터 한국 축구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AFC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하는 세력이 아시아 전역에 고루 퍼져있다”고 했다.
또 다른 시선도 있다. 정 부회장과 경쟁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여부를 떠나 알리 왕자가 대항마로 나선 것 자체가 단독 출마 때와는 달라진 상황을 의미한다는 것. 아시아 축구는 물론, 아시아 스포츠계에 고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내의 한 저명 축구인은 “AFC에서는 알리 왕자가 FIFA 부회장직에 도전했다는 사실을 대단히 신선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색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단독출마가 정 부회장의 재선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몰라도 이번처럼 2명 이상의 후보들이 투표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아시아 축구계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증표라는 의미였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