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참모들 ‘매의 발톱’ 꺼낸다
▲ 2008년 5월 당시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이 미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배웅 나온 이방호 한나라당 전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 전 대표의 최대 정적 친이계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일각에서는 친이계가 대세론에 굴복해 월박파 관망파 사수파 등으로 분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친이계의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박 전 대표가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탈색’이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월박한 친이계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야권 연대 등을 통한 외연 확대가 오히려 대세론의 노곤함을 극복하는 전략일 수도 있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제3 세력 창출 시도는 친이계에 대한 고사작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서바이벌 게임으로 몰리고 있는 친이계가 과연 어떤 반격카드를 꺼내들지 따라가 봤다.
박근혜 대세론을 바라보는 친이계의 표정은 씁쓸하다. 아직 2년이나 남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차치하더라도, 국가적으로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의 안보위기 상황에서 당내 유력 대권주자가 작심하고 세몰이를 하자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권병에 걸렸다”라는 다분히 감정 섞인 표현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주류가 너무 일찍 박근혜 전 대표에게 레드 카펫을 깔아줬다. 친이계는 대항마가 없다는 이유로 대세론을 사실상 수수방관해왔다. 본선보다 어려울 수도 있는 예선을 그냥 내주는 격 아니겠는가. 반면 주류는 그 대가로 얻은 게 뭔가. 세종시 수정안은 좌절됐고, 연말 예산안 처리도 여당 속성상 친박이 주류를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박 전 대표의 위상만 지존으로 높아졌을 뿐 이명박 대통령은 오히려 그 그늘에 가려 레임덕으로 가는 분위기다. 이제부터라도 친이계는 장기적인 대선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그 첫 번째 걸음은 박근혜 대세론을 깨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에 안주하는 이상 한나라당은 대선 필패의 구도로 간다”라고 말했다.
한편 친이계 강경파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백기투항의 책임을 현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정무수석인 임태희-정진석 참모 체제로 돌리는 목소리도 있다. 주류 중에서도 대표적인 ‘친박’계로 분류되는 두 사람이 청와대로 들어오면서 계파 갈등은 수그러들었지만 그에 따른 박근혜 대세론은 전례 없이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예상보다 빨리 공개적으로 대대적인 대권 행보에 나선 것은 지난 8월 이후 조성된 대세론에 탄력 받은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친이계 인사들과도 두루 만나면서 친이계와 중립파의 적대감을 많이 줄여 놓은 뒤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간 것이다. 현 청와대 정무팀은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묻고 싶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박 전 대표의 대선 ‘출정식’을 보고 불만을 나타내는 행정관들도 많다고 들었다. 박 전 대표의 급격한 부상이 이 대통령의 필연적인 추락을 부르는 제로섬 게임이 여권의 권력관계 아니겠느냐. 그동안 박 전 대표를 너무 견제하지 않았다.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정무라인은 교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친이계 일각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인사권한 집중 등의 이유로 흔들기를 시도하는 배경에는 박근혜 대세론을 묵인한 것에 대한 책임 추궁 의도가 숨어 있다. 여당 주변에서는 “차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임태희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뒤부터 학맥 지연 등을 총동원해 광범위하게 임태희 라인을 심어놓았다는 얘기가 많다. 그런지 몰라도 임 실장이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는 쪽으로 일종의 타협을 하고 있다”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에 맞서는 친이계의 반격은 청와대의 온건 관리파들을 ‘정리’하는 동시에 자파 세력의 재결집으로 나타나고 있다. 18대 총선 때 친박 공천 학살의 장본인 이방호 전 사무총장이 최근 대통령 직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장(장관급)으로 복귀한 것이 친이계 반격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그의 기용에 대해서는 지난해 경남도지사 공천 탈락에 대한 이 대통령의 마지막 배려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향후 단순히 중앙정부의 기능을 지방에 이전시키는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정계 복귀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그가 참모들에게 내렸던 주요 지시사항 중 하나는 중요 정무 이슈에 대한 분석과 개발이었다. 말이 국민의 권익보호였지, 실제로는 정계복귀 전의 적응훈련이었던 셈이다. 이방호 위원장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하며 독대도 할 능력이 있는 이 위원장이 청와대로부터 ‘특임’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18대 총선 공천을 하면서 누구보다 친박계의 분위기를 잘 알고 그들을 다루는 노하우도 많다. 앞으로 친이계가 친박과의 갈등을 일으킬 때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오 특임장관과 ‘죽이 잘 맞는’ 이 위원장이 분권형 개헌에 대한 물밑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복귀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위원장이 복귀한 자리가 ‘지방 분권 촉진’을 담당하는 만큼, 그가 이명박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투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이계에서는 이동관-박형준 두 특보의 컴백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실질적인 여권 2인자로 통하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에 대한 견제 역할에다 신·구 참모들 간의 경쟁 체제를 유도하려는 이 대통령 특유의 인사원칙이 반영됐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두 사람이 특별미션을 부여받았다는 데 방점이 더 찍힌다.
청와대 주변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박형준 사회특보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 전 대표와 네거티브 경쟁을 벌였던 소장파 인사들과 친분이 깊다. 또한 박 전 대표가 대선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는 이론적 틀을 계속 생산해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동관 언론특보에 대한 역할을 눈여겨보라는 의원들의 지적도 많다. 그는 평소 박근혜 전 대표라는 미래권력에 대해 공격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언론계 관계 등 다양한 채널로부터 얻은 심도 깊은 ‘반 박근혜’ 정보를 여론주도층과 공유하는 동시에 그의 대권 행보를 견제하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이재오 특임장관이 박 전 대표의 공식 대권 행보 직후부터 친이계에게 ‘나를 중심으로 뭉쳐라’고 외치는 것도 향후 일어날 대회전의 각오를 다지는 동시에 친박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친이계의 ‘대회전’ 전략은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두 방향으로도 진행될 것이다. 포지티브로는 일단 개헌론을 들 수 있다. 이번 달 말에 친이계는 ‘개헌 의원총회’ 개최를 공언하고 있다. 사실상 소멸한 개헌론을 꺼내 박 전 대표를 간접 공격하는 배경에는 “계속 친이계가 이슈 파이팅을 통해 국정 주도권을 장악해 나가고 자파를 결집시키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중립파 한 초선 의원). 동시에 20여 년 이상 개정하지 못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권력체제에 대한 개헌을 박 전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오로지 대권에 대한 집착’이라는 식으로 미래권력을 공격해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 있다.
이와 동시에 네거티브 전략도 친이계의 비수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친이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와 근령·지만 씨와의 갈등에 주목하고 있다. 정책 등과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집안문제 같은 소프트웨어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의외의 일격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현상>을 집필한 진보 및 중립성향 전략전문가들은 “2012년 대선은 ‘주자 여러 명 중에서 누가 제일 잘 났느냐’는 우열 구도가 아니라 ‘박근혜냐 아니냐’의 찬반 구도가 돼 버렸다”라고 주장한다. 이번 대선이 절대강자인 박 전 대표가 과연 대통령감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 전 대표가 지도자로서 과연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정밀 검증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에서 맹활약했던 여권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박정희라는 신화와 한 몸이다. 이는 그가 지도자 개인으로서는 평가받은 적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난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패한 것은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에 그가 나간다면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검증이 제기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자기관리에 거품이 많다는 지적은 예의주시해볼 만하다. 특히 박 전 대표와 근령·지만 씨와의 갈등을 보면 굉장히 비상식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이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친이계나 야당이 절대강자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비책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