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네이버 동맹설에 시들하던 인수전 달아올라…롯데쇼핑-카카오, MBK-SK텔레콤 손잡을 가능성도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은 ‘몸값 5조 원’, 이커머스 업계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시작됐다. 롯데, 신세계, SK그룹 등 대기업 3곳의 계열사와 대형 사모펀드 MBK 등이 달라붙고, 각 회사 대표들이 인수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불이 붙었다. 인수 금액 규모와 인수 이후 달라질 시장 판도를 모두 고려할 때, 인수 후보들이 사활을 걸고 경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특히 5월로 예정됐던 본입찰 일정이 오는 6월 7일로 밀리면서 김이 빠지는 모양새가 됐다.
일정 연기의 표면적 이유는 후보자들의 실사 기간, 정보 부족이었다. 지난 4월 말까지도 이베이코리아 매출과 실적 등에 대한 최근 자료가 제공되지 않아 일부 인수 후보들이 항의성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료 요구에 대한 회사 답변이 늦어지면서 외부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실사 작업도 계속 뒤로 밀렸다는 후문이다.
다만 일정 연기의 핵심 사유는 인수가에 대한 이견이 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인수 후보들이 예상한 이베이코리아의 가치는 3조 원이었지만, 이베이 측에서 원하는 가격대는 시장 예상보다 높은 6조 원대를 제시했다. 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통상 매각자 측이 일단 높은 몸값을 부르고 인수 후보들이 제시한 가격과 절충점을 찾아가는데, 이번 거래에서는 가격 협상 실타래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수 후보들 사이에선 가격을 두고 눈치 싸움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격 조율로 최종 인수가격이 일정 수준 낮춰지더라도, 여전히 후보들이 가볍게 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 가격 제시가 쉽지 않았다. 일부 후보들은 증권가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인수금융 규모와 협조 여부까지 타진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선 이커머스 업체의 기업가치 산정은 다른 업계와 달리 단순 상각전이익이 아닌 미래가능성과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수성, 성장세를 감안한다. 매년 적자를 내는데도 높은 가격에 미국 증시에 상장한 쿠팡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베이코리아는 물류망이나 유형자산도 없고, 인수 후보자들이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쇼핑몰과 겹치는 사업모델이라 시너지를 충분히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베이코리아가 올해 1분기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이미 20여 년간 오픈마켓을 운영해왔고 이 시장이 레드오션이 된지 오래인 만큼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비판도 있었다.
무엇보다 인수 후보들의 이베이코리아에 대한 시선도 다른 인수전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 ‘어떻게든 사야 하는 매물’이라기보다는 ‘경쟁사에 뺏기면 안되는 매물’로 보고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인수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순 있지만 수조 원을 들이면서 절실하게 필요해서 사는 것과 ‘뺏기면 안 될 것 같아서’ 인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실제 일부 인수후보 측에서는 “이베이를 못 사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제시한 것보다 훨씬 비싸게 사는 게 더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인수 후보들이 눈치싸움을 하는 사이 나온 새로운 승부수가 나왔다. 후보들 간 연합전선 구축이다. 무리하게 가격을 써냈다가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우려를 덜고 인수 이후 시너지 효과도 공유할 수 있다는 취지다. 포문을 연 건 신세계그룹과 네이버다. 양측이 이베이코리아를 공동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지난 3월 신세계와 네이버가 지분 교환 계약을 체결하면서 의기투합 흐름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관련기사 카카오 ‘아웃’ 이마트 ‘인’…이베이코리아 인수전 최대 변수는 ‘네이버’)이었지만 ‘동맹 현실화’의 파급력은 거셌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신세계의 최대 약점은 자금이었다. 인수 당사자인 이마트는 사용이 제한된 금융자산을 제외하고, 최근 실탄 마련을 위해 매각한 부동산과 점포 등의 대금을 더해도 1조 9000억 원 수준이다. 신세계의 현금성 자산을 더하면 2조 4000억 원 규모다. 이베이코리아가 제시한 가격은 물론, 인수 후보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가격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 네이버가 힘을 보태기로 하면서 약점이 보완됐다.
네이버와 신세계는 이베이코리아 인수 후 최대주주는 신세계, 2대 주주는 네이버가 맡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가 사업을 주도하고, 네이버는 이베이코리아를 우회적으로 지배하면서 양 사의 강점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강자인 네이버와 유통업계 강자인 신세계가 손을 잡으면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투자은행 업계 다른 관계자는 “실제로 신세계와 네이버가 공동전선을 구축하면 자금과 시장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고, 이베이코리아 쪽에서도 인수전이 흥행하는 만큼 반기게 될 것”이라며 “현재로선 이번 인수전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다른 후보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신세계와 네이버처럼 이들도 ‘단일화’를 거쳐 연합을 결성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고, 이후 지분을 분배하거나 공동 운영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충분한 실탄을 가지고 있고, 인수 의지도 높은 롯데는 단독 참여가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최근 합종연횡 가능성이 나온다. 롯데는 현금성 자산이 4조 2000억 원에 달하지만 차입금 부담이 크다. 총차입금이 작년 말 기준 16조 4000억 원 규모고,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창출 능력은 신세계보다 떨어진다.
이 때문에 보유 현금만으로 투자 여력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롯데의 모든 유통 역량을 집약했다고 자신했던 롯데ON은 맥을 못 추고 있고, 최대 강점인 오프라인 유통도 상황이 좋지 않다. 정상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과정에서 이베이코리아 단일 거래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 올해 초까지 롯데그룹에선 내부적으로 기존 사업 집중과 대규모 인수를 통한 반전 방안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역시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으로 합종연횡을 검토할 수 있고, 다른 인수 후보 또는 예비입찰 전까지 유력 후보로 거론됐으나 결국 참여하지 않은 카카오와 같은 기업과 ‘깜짝 동맹’을 맺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인수 후보인 MBK의 향방도 관심사다. 홈플러스와의 시너지를 목표로 인수전에 참여한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65억 달러(약 8조 원)대의 5호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해 운용하고 있다. 현재는 12억 5000만 달러(약 1조 4000억 원)의 스페셜시추에이션(SS)의 펀드레이징을 진행 중이다. MBK 역시 자금력은 충분하지만 하나의 블라인드펀드에서 투자 가능한 금액이 제한적이다.
당초 MBK는 11번가로 인수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온라인 사업 성공 경험이 있는 SK텔레콤과의 연합전선 구축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11번가와 홈플러스를 통해 온·오프라인 시너지를 내는 것을 목표로 손을 잡을 것이란 해석이다. 사모펀드 입장에선 차익 실현이 우선인 만큼 직접 인수보다는 돈을 덜 들이고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이 더 유리하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구축된 연합전선은 단순히 인수전을 위한 동맹뿐만 아니라 향후 이커머스와 유통업계 판도를 예측해볼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인수전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