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때려놓고 심장발작이라고?’
▲ 용달차 뒤편에서 싸우고 있는 주 씨와 김 씨 모습(위)과 당시 회식자리에 함께 있었던 C 시의원이 현장을 떠나는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
사고당일인 10월 11일 저녁 8시 30분. 한창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을 찰나 테이블 한 곳에서 사소한 이유로 다툼이 일어났다. 구민 체육대회에서 기념품 하나 나눠주지 않은 것을 두고 주 씨가 다른 당원 김 아무개 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급기야 격한 주먹다짐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식당 안에서 다투다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고성을 주고받으며 몸싸움을 벌였다. 몇 분 후 싸움을 말리러 나온 B 씨가 김 씨의 손을 이끌어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서야 다툼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주 씨가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김 씨가 다시 식당 밖으로 달려 나와 주저앉아 있던 주 씨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반항하던 주 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진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유가족 측의 주장에 따르면 정황상 폭행치사 혐의가 분명했지만 이러한 사건 전모는 피의자에 의해 왜곡된 채 전달됐다. 피의자 측이 평소 심장질환을 앓던 주 씨가 회식 도중 자리에 앉아 있다 갑작스런 발작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유가족들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자 했지만 경찰 측은 상황을 파악할 만한 CCTV를 현장에서 확보할 수 없었다고 전해 왔다. 회식자리에 있던 다른 당원들도 피의자 김 씨와 동일한 진술을 하는 상황이라 주 씨가 돌연사한 것처럼 사건이 묻힐 뻔했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1월 17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기자와 만난 A 씨는 꿈에 아버지가 계속해서 나타나 현장에 다시 가볼 것을 재촉했다고 말했다. A 씨는 “꿈에서 아버지가 비통한 표정으로 ‘현장에 왜 가보지 않느냐’고 추궁하셨다”며 “사건이 발생한 식당으로 갔을 때 경찰이 발견하지 못한 CCTV 화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화면에는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 모든 과정이 담겨 있었다. 주 씨는 식당입구 도로변에서 김 씨와 다투다 쓰러진 후 10여 분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김 씨와 B 씨가 식당 안으로 들어간 후 다른 당원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들이 다시 밖으로 나와 주 씨의 모습을 살피곤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화면에 비춰졌다. 몇 분 후 서울시의회 민주당 고위간부인 C 의원이 서둘러 자신의 차에 탑승하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C 의원은 배우자로 보이는 여성이 차에 타자 쓰러져 있는 주 씨의 시신을 방치한 채 그냥 지나쳐 갔다.
아들 A 씨는 “목격자, 가해자, 현장에 있던 C 의원까지 아버지의 시신을 차디찬 길바닥에 방치해 놓고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버지가 돌연사한 것인 양 입을 맞춘 셈이다”고 분개했다. 그는 “거기에다 C 의원은 사건 발생 후 계속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선처를 부탁한다. 조용히 해결했으면 좋겠다’며 합의금 문제를 먼저 거론하는 등 이번 사건이 문제시되지 않기를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그 증거로 C 의원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A 씨의 주장에 따르면 합의를 종용하던 C 의원은 유가족 측이 당시 상황이 기록된 CCTV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돌연 연락을 두절했다. A 씨는 “자신이 그 상황을 방관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는 것을 알고 피한 것이다”며 “시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자가 한 사람의 죽음을 이토록 가볍게 여길 순 없다”고 분개했다.
A 씨의 주장에 대해 C 의원과 피의자 김 씨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기자는 1월 20일 C 의원과 김 씨에게 전화를 걸어 A 씨가 제기한 의혹에 대한 입장을 들어볼 수 있었다. C 의원은 “식당 안에만 있었기에 밖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며 “내가 사건 당사자도 아닌데 중간에서 ‘합의하자’ ‘조용히 처리하자’고 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회식 자리를 떠난 후에야 당원 한 명이 사망했다는 사고 소식을 접했다는 것이 C 의원의 주장이다. C 의원은 “평소에 친분이 있던 주 씨였기에 장례식장에 찾아가 아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 것을 제외하고는 유가족들과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피의자 김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왜 기자에게까지 사건 내용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가.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씨는 경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며 청와대에 민원을 접수시킨 상태다. 경찰이 애초 현장에서 쉽게 입수할 수 있었던 CCTV를 확보하지 못한 채 시신 부검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동안 수사를 장기화했다는 것이 A 씨의 주장이다. A 씨는 또 CCTV 입수 전에는 김 씨의 혐의를 폭행치사가 아닌 단순폭행으로 분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CCTV 화면을 확보해 경찰 측에 증거자료로 제출했음에도 구속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후에도 유가족 측과 피의자 김 씨를 대질심문까지 하게 한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이에 경찰과 검찰 측은 A 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월 19일 기자와 통화한 담당 검사는 “구체적인 피의사실 및 사건 내용을 알려줄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A 씨가 주장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사건담당 형사 역시 A 씨와는 다른 주장을 했다. 그는 “당시 사망 신고를 받고 병원으로 출동해 현장에 있던 목격자 및 피의자까지 즉각 체포했다”며 “피의자 역시 자신이 폭행한 사실을 조사과정에서 바로 인정해 폭행치사 혐의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고 말했다. 구속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피의자 김 씨가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 데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재판부가 결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1월 25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아들 A 씨는 “지금이라도 당시 상황을 목격한 당원들과 C 의원이 진짜 사건 전모가 무엇인지 증언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원의 죽음을 둘러싼 유가족과 수사기관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