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 끝내주지?’상류층 막장 레이스
스피드에 중독된 사람들의 일관된 전언이다.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당해도, 찰나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뻔해도 이들은 밤거리를 헤매며 여지없이 스피드를 즐긴다.
지난 1월 24일 경찰 사상 최대의 폭주족 소탕 작전이 있었다. 이번에 검거된 폭주족은 여타 폭주족과는 달리 ‘밤거리 레이싱’을 즐기는 ‘조직화’ 된 폭주족들이었다. 대부분 상류층으로만 구성된 100여 명의 조직원들이 ‘상상 초월’의 엽기적 레이싱을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유명인들이 대거 포함된 ‘죽음의 레이스’ 사건의 전말을 집중 취재했다.
▲ MBC 뉴스 캡처 |
그렇다면 폭주족을 ‘조직’으로 거듭나게 한 주역은 누구일까. 그 주인공은 바로 A 주식회사 대표인 피의자 방 아무개 씨(28)였다. 방 씨는 2008월 1월경 새로운 사업 모색에 한창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자동차 운전학원이었다. 그는 회사 소속 레이서들을 회유해 1인당 1회에 20만 원을 받는 ‘레이싱 전문’ 자동차 운전학원을 만들었다. 물론 무등록 업체였다. 하지만 폭주족 사이에서 ‘대부’ 소리를 듣는 방 씨의 유명세 때문일까. 학원은 항상 문전성시였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 프로골퍼, 가수, 현역장교(대위), 의사, 대학교 강사 등이 방 씨의 문하생으로 들어왔다. 운전학원 강사인 김 아무개 씨(32)는 2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학원에서 아무나 다 받아주지 않는다”며 “차가 벤츠C63AMG, 페라리360 등 고가의 외제차이거나 국산차의 경우 일정한 상한선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차를 소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원 등록 조건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그는 더불어 “성별과 나이, 사회적 지위 등의 기준으로도 가입이 엄격하게 걸러졌다”고 덧붙였다.
학원에 등록이 됐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학원 내에서도 ‘레이싱 교육 기간’과 ‘실력’에 따라 문하생들의 등급이 다시 나눠졌고, 등급이 높은 수강생들만 방 씨와 함께 ‘레이싱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방 씨는 학원에서 양성된 상위 등급의 수강생들과 실전 연습 코스를 밟았다. 연습 장소는 도심 북악스카이웨이, 남산 소월길, 인천 북항, 오이도, 충남 천안, 강원도 대기산 등 전국적으로 다양했다. 심지어 이들은 약속 장소를 잡기 전 방 씨가 개설한 사이트에 암호를 남기는 수법으로 흔적을 지우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 MBC 뉴스 캡처 |
의사협회 직원인 박 아무개 씨(26)는 지난 2010년 8월 27일 인천 북항에서 면허 없이 차량 제어 장치(TCS)를 제거한 후 DR을 즐겼다. 이 과정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동승한 여자친구 조 아무개 양(18)에게 전치 12주가량의 중상해를 입혔다. 이 사고로 조 양은 흉추골절을 입어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또 유명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이 아무개 씨(28)도 서울 시민들의 공원 산책로인 남산 소월길에서 폭주 레이싱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32주의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 씨는 사고 이후에도 같은 장소에서 모임을 또다시 개최해 와인딩 레이스(Winding Race: 고갯길에서의 고속 주행 등 과격한 운전으로 스릴을 느끼는 방법)를 2010년 7월까지 약 1년 동안 즐기기도 했다.
레이싱 중독자는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신 아무개 씨(27) 등 20대 부부 두 커플은 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그들은 2010년 9월 27일 영화 <분노의 질주>를 모방해 보기로 결의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레이싱에 10대인 딸(12)을 동승시켜 함께 레이싱을 즐기기도 했다.
이밖에 박 아무개 씨(38)는 올림픽 대로 등지에서 불특정 운전자 후미에 자신의 차를 바짝 붙이거나 상향 라이트를 비춰 상대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는 등의 행위를 일삼기도 했다. 일명 공도배틀 레이스라 불리는 이 방법은 상대 운전자를 약올려 차량 간 싸움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큰 피해를 낼 가능성이 높다. 경찰 조사결과 박 씨는 이런 ‘묻지마식 레이싱’을 일주일에 수차례나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이런 폭주 레이싱에 대해 기존에는 통고 처분(4만 원) 정도에 그쳤지만 적발된 김 씨 등은 위험성이 중하다고 판단해 형사 입건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경찰은 형사입건 되지 않은 나머지 60여 명을 포함해 추가 단서가 확보된 인터넷 카페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