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오면 ‘초년병’ 통큰 만큼 크게 당한다
구옥희도 10억 ‘벙커샷’
▲ 현주엽 |
현역시절 현주엽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오상진 키즈아트 한국지사장은 “코트에서는 파워풀한 플레이로 유명하지만 주엽이는 마음이 대단히 여리다. 친구들이 ‘귀가 얇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증권 펀드 등 금융 쪽에 거액을 투자한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는데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오 지사장에 따르면 현주엽은 워낙에 대형스타였던 까닭에 현역시절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의 결혼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는 등 집안에 돈을 많이 썼고, 이번에 나온 25억 원 정도면 그동안 농구로 모아온 목돈의 전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이다.
또 다른 현주엽의 지인은 “주엽이가 2009년 4월 부친상을 당한 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부친상 이후 시즌이 끝나자 은퇴를 선언했고, 지인들과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부친상에다 투자 사기 등 악재가 겹치면서 힘든 시기를 겪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인들은 비온 뒤 땅이 굳는다고, 현주엽이 아직 젊고, ‘고려대 농구감독 영순위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차세대 지도자 그룹에 속해 있는 만큼 낙담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군인 경찰 교사 등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만, 운동선수는 젊은 시절 운동만 하느라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스포츠스타의 경우 일반인들이 쉽게 만질 수 없는 거액의 재산을 보유한 경우가 많아 재테크, 사업추진 등 주변에서는 갖은 이유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여왕’ 박세리의 부친 박준철 씨는 초창기 딸과 함께 미국 투어를 다닐 때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미국에서 우승을 하고 잠깐씩 한국에 오면 대전(박세리의 집)에 돈을 꿔달라는 사람들이 줄 서 있곤 했다.”
80년대까지 최고 인기스포츠였던 프로복싱의 경우, 역대 세계챔피언들이 유명우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은퇴 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본인이 돈 관리를 잘못한 면도 있지만 크고 작은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다른 종목에서도 은퇴한 스포츠스타의 사기 피해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1세대 여자골프 한류의 중심에 있는 구옥희는 골프장을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에 솔깃해 10억 원 이상의 거액을 손해 봤다. 구옥희의 경우 언론에 알려진 것 외에도 큰 액수의 사기 피해가 여러 건이 있다는 후문이다. 구옥희는 이 문제와 관련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돈보다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이 더 속상하다. 어쨌든 잊어버리기로 했다. 기술(골프를 뜻함)이 있기 때문에 돈은 또 벌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이천수 |
이밖에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도 큰 액수는 아니지만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바 있고, 박수교 전 전자랜드 감독(프로농구)도 가게를 열었다가 동업자로 인해 피해를 보는 등 작은 피해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전창진 KT 감독(농구)은 “큰 액수는 아니지만 그동안 여기저기 돈 빌려줬다가 못 받은 것을 다 합치면 집 한 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인들에 피해 보는 경우 많아
김유택 오리온스 코치는 “요즘은 그래도 운동선수들도 경제 관념이 많이 좋아져 큰 사고는 많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거액의 사기 피해보다는 동업이나, 크고 작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지인들로부터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은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스타들의 은퇴 후 사기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은퇴했고, 돈은 조금 있는데 그냥 은행에 돈을 묻어둘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프로스포츠 단체나 종목협회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은퇴 후 재테크와 관련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할 필요가 높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말 그대로 ‘땀 흘려’ 번 돈을 순간의 판단 착오로 한꺼번에 날리는 것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