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속살은 ‘섹스사냥’이었다
최근 이러한 한국의 그릇된 이중적 성의식을 적나라하게 꼬집은 서적이 출간돼 화제다. 바로 강준막 씨가 집필한 <재미있는 섹스사전>이다.
우리의 의식 속의 성은 부끄럽고 들추기 어려운 음담패설로 자리 잡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사용하는 ‘보지’라는 단어가 그러하다. 한국에서 여성의 성기를 가리켜 흔히들 ‘보지’ 혹은 ‘씹’이라고 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참으로 입에 올리기 어려운 단어다. 하지만 ‘보지’와 ‘씹’은 모두 국어사전에 등재된 우리말이다.
이 오묘한 단어에도 엄연히 역사적 어원이 존재한다. <재미있는 섹스사전>에서 ‘보지’의 개념어를 살펴보면 “걸어다닐 때 감추어진다는 의미의 보장지가 어원으로 최남선은 우리의 고유어로 보았다. ‘씹’ 역시 범어의 습파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구전과 고전, 정사와 야사, 밀담과 논쟁, 세태고발과 성 담론, 황색언론부터 학술문헌까지 ‘섹스’와 관련해서는 빠짐없이 담아냈다. 사전처럼 개념어를 통해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누구도 상상하지도 못한 성담론의 역사적 배경을 재미있게 들춰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마녀사냥’ 편을 보자. 저자는 마녀사냥을 단순한 종교적·정치적 목적을 넘어 ‘섹스사냥’으로 설명한다. 의사조차 여성의 벗은 몸을 볼 수 없었던 시대에 마녀사냥은 거의 유일하게 모든 남성들이 여성들을 벗겨놓고 성적 조롱을 즐길 수 있는 여성학대의 장이었다.
개념어들 상당수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성 관련 용어들과 사건들이 차지한다. 개념어 ‘미시’편을 보자. 저자는 책에서 ‘미시’라는 용어의 탄생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1990년대 한국의 여성은 사회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기 시작한다. 출산율마저 낮아지고 결혼 이후에도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비력을 지니게 되고 결국 어머니로서의 시간과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게 된다. 기존 아줌마들과는 확연히 다른 적극성과 젊음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미시’라는 설명이다.
‘매춘 애국론’ 편에서는 한국의 과거 성 외화벌이의 단면을 설명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외화벌이를 위해 기생관광을 장려하고 주한미군을 위한 기지촌 여성들을 치켜세운다. 당시 수출에 목맸던 시대적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외에도 책에는 ‘전화방’ ‘북창동식 룸살롱’ ‘박카스 아줌마’ ‘섹스팅’ 등 현 세태를 반영하는 개념어들이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
1월 25일 기자와 통화한 저자 강준막 씨는 “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중적 잣대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한국의 성문제는 참 복잡하다. 음지의 성을 놓고 보자. 2006년 성매매 특별법 이후 나타난 건 풍선효과뿐이었다. 반면 공식적 자리에서의 성은 부끄러운 담론이다. 책을 처음 발간한 후 동창회장에 가져가 보니 동창들의 얼굴이 빨개지더라. 한국에서 성은 이렇듯 아이러니하다. 나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다른 성관련 서적과 비교해가며 최대한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