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15일 방송되는 MBC 'PD수첩' 1292회는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으로 꾸며진다.
"저희는 바다를 지켰고 국가를 지킨 군인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어 나왔습니다."
천안함을 지휘한 최원일 함장이 11년 만에 입을 열었다. 그간 현역 군인이었기에 공개적인 발언이 어렵기도 했지만 46명의 부하를 잃은 함장이라는 죄책감에 그날을 설명하는 게 변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생존 장병들에게는 '패잔병'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 역시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는 "아직도 의혹 제기와 음모론이 나온다. 가만히 있으면 전사한 전우들의 가족이 패잔병의 가족이 된다. 죽은 사람의, 그리고 산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들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임무를 수행 중이던 천안함은 갑자기 큰 충격으로 두 동강이 났고 배의 꼬리 부분인 함미는 바다로 가라앉았다.
최원일 함장과 생존 장병들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했다. 천안함이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대응 작전을 펼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천안함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지휘부는 즉각 대응하지 않았다.
'어뢰 공격'이라는 보고는 해군 제2함대사령부까지 전달됐으나 이후 합동참모본부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윗선으로의 보고 과정에서 '어뢰 공격'은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결국 청와대는 어뢰 공격 내용이 빠진 채 천안함이 '파공(선체에 구멍이 생김)에 의해 침몰'되었다고 보고받게 된다. 천안함 침몰 직후 청와대는 "북한 연계 여부가 확실치 않다"고 발표했고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에겐 국회에서 어뢰 관련 발언을 지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신중하던 청와대는 6.2지방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결론내고 대북 교역을 전면 중단하는 5.24조치를 서둘러 발표했다.
최 함장은 천안함이 이용당한 것이라 말한다. "천안함 가지고 정쟁의 대상으로 이용했죠. 6월 2일 지방선거가 있는데 선거 끝나고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아쉬움이 있어요."
당시 군 지휘부는 천안함 사건을 "현장의 경계 실패"로 규정했다. 천안함 사건 직후 임명된 한민구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경계 실패는 확실하다. 하지만 전체 작전을 담당하는 합참의 작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어뢰 피격에서 살아남은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패잔병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순간이었다.
2009년 11월 서해에서 벌어졌던 대청해전 이후 당시 서해는 군사적 긴장감이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우리 군의 사전 정보가 제대로 전파되었다면 천안함이 무력하게 공격당하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담긴 문서를 입수했다. 당시 해군 수뇌부가 곧바로 파기 지시를 내려 그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였다. 그 내용을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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