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PD수첩’
하지만 군부의 강경진압에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 아직 10대인 그의 동생들도 쉴 새 없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연락하지만 인터넷 연결이 좋지 않은 탓에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것조차 쉽지 않다.
대신 그는 이곳 한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샤샤는 매주 일요일마다 거리 시위에 나선다. 샤샤와 함께 시위에 나선 건 미얀마 사람들뿐이 아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함께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1980년 그 때는 우리만 차단돼 있어서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군부가 다 왜곡했다”며 “우리가 동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는 오월어머니회 사람들. 4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지금도 주먹밥을 만들어 시위에 나선 이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학생들의 데모로 시작된 소요는 난동으로 변했다’고 보도됐던 1980년 광주. 2021년 미얀마 역시 뉴스에선 ‘시민들이 폭력, 살인, 강취, 화재를 일으키는 행위를 해왔다’고 보도하고 있다.
쿠데타를 비판하던 미얀마 주요 5개 언론사가 폐쇄됐고 인터넷은 차단되기 시작했다. SNS로 뉴스를 보도하자 곧바로 100여 명의 군인이 사무실에 들이닥친 방송사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신변 위협 속에서도 진실을 알리는 보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은 “평화나 사회 보장에 해로울 수 있는 테러는 용납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모두 ‘테러리스트’가 됐다. 군은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체포된 사람들에게 “우리(군)가 지금 당장 죽일 수도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고문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위자들의 사진이 공개되고 국영방송에서는 “여러분도 총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얀마 바고 지역에서는 지난 4월 초 하루만에 82명 이상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45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SNS 인플루언서 허니 누에이 우(22). 그 역시 수배를 피해 한 달 전부터 도피 중이다. 그래도 쿠데타 직후 석 달 넘게 참여한 시위를 멈출 수 없었다.
“사람들이 죽거나 고문당하는 걸 본 후 우리 자신만 두려워할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며 그는 자신이 체포돼도 찾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당부해두었다.
“저는 언젠가는 잡혀갈 것이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해선 이미 생각을 마쳤기에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얀마의 첫 거리 시위를 주도했던 타이자 산. 지금 그에겐 미얀마 월 평균 임금의 56배가량 되는 현상금이 걸려 있다.
군부 쿠데타 이후 100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시민 780명 이상이 사망하고 4000명 이상이 체포됐다(16일 기준). ‘옳은 일을 하겠다’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 중 앞으로 얼마나 더 사망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미얀마 군부 독재 잠시나마 얻어냈던 민주화의 움직임은 또 한 번 위협받고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