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구속수사 반대? 노무현 때도 불구속 의견…법대 교수 원했지만 실무 경험 쌓으려 사시 도전”
천준 작가가 윤석열이란 인물에 관심을 가진 건 2020년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부정 입학 의혹을 둘러싸고 불거진 이른바 ‘조국 사태’가 한국 사회를 휩쓸고 간 뒤였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180석을 얻었다. 윤 전 총장은 총선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를 강행하며 문재인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었다.
천 작가는 “야당이 무너진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사실상 홀로 야당 역할을 하는 독특한 상황이었다”며 “그것이 윤석열 개인의 단순히 정치적 욕망에 의한 것인지, 민주주의의 도구로서의 검찰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궁금해서 취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천 작가는 “윤석열이라는 인물과 접촉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책 집필 사실을 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며 “글 쓰면서 가장 의식했던 건 ‘보이는 대로 쓰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천 작가는 윤 전 총장을 ‘중세 사회를 사는 근대인’이라고 평가했다. 천 작가는 “중세 사회는 내용이 형식을 지배했다. 예를 들어 왕이나 교황이 잘못을 저지르면 내용에 의해서 형식이 상당히 바뀐다. 봉건적 도덕관을 견지한 한국 사회는 중세 시대라고 할 수 있다”며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형식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면 처벌하는 것이 근대 사회다. 윤석열은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고, 형식적 합리성에 굉장히 충실한 근대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과 제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윤 전 총장 성향도 그를 근대인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천 작가는 “윤 전 총장은 원칙, 그러니까 룰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한 예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총장 직무를 정지했을 때 윤 전 총장은 철저히 법과 제도로 문제를 돌파했다”며 “역대 검찰총장들이 정무적으로 눈치껏 직무를 수행했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굉장히 특이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천 작가는 “윤 전 총장은 사람을 타깃으로 정하고 싸움을 거는 스타일은 아니다”며 “한 시민단체가 조국 전 장관이 윤 전 총장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발했을 때 윤 전 총장이 처벌불허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존 정치인에게서 보기 힘든 윤 전 총장의 근대성”이라고 강조했다. 조 전 장관은 2021년 2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수사·기소 분리방안에 찬성했었다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명예훼손으로 한 시민단체에게 고발당했다. 윤 전 총장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며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윤석열 사단’ 존재가 가장 궁금했던 천 작가는 취재 과정에서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윤 전 총장 주변 인물을 만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인구학적 동질성으로 엮인 윤석열 사단 존재 여부였다”며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윤 전 총장이지만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엮여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임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사람을 만나서 지식을 습득하는 걸 좋아해서 효과적인 방식으로 방대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책에선 윤 전 총장이 ‘국정 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수사를 반대했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성향을 두고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천 작가는 이를 두고 윤 전 총장의 원칙주의자 면모가 드러난 지점이라고 봤다. 천 작가는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에도 불구속 수사 의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와 같은 잣대를 들이댄 것”이라며 “대통령이 구속되면 사회에 너무 큰 충격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공정’이 한국 사회 화두로 떠오르면서 원칙을 강조하는 윤 총장이 대선후보로 떠오를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천 작가는 “요즘 MZ세대는 의문을 제기했을 때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성의 있는 답변을 원한다. 아무런 답을 하지 않으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며 “윤 전 총장은 확고한 철학과 원칙으로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전달하고 답을 준다는 측면에서 국민의 요구와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원인으로 민주주의의 실패를 꼽았다. 천 작가는 “윤 전 총장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라며 “국회가 70년 동안 우리 사회 중재 조정 기구로서 역할을 해왔지만 국민은 국회가 수행하고 있는 정치 기능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외에 있는 윤석열이라는 사람에게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천 작가는 “우리 사회가 올바르게 가고 있다면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주목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윤석열이란 사람이 갖고 있는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적 가치 때문에 이 사람이 주목받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윤 전 총장 본인도 그걸 아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책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완벽한 보수주의자라고 한다. 천 작가는 책에서 윤 전 총장을 두고 공화민주주의자, 헌법주의자이면서 자유주의자, 일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알맞은 대답을 내놓으려는 실용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인 동시에 한미동맹에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자 시장경제론자라고 평가했다. 천 작가는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이 여태까지 했던 말과 행동을 토대로 주변 인물에게 정밀한 교차 검증을 한 부분”이라며 “윤 전 총장은 완벽한 보수주의자다. 윤 전 총장이 자신에 관한 평가에 대부분 동의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책에선 윤 전 총장이 평소 “나는 보수주의자다”라고 주변에 밝혔다는 내용이 나온다.
천 작가는 책에서 윤 전 총장과 관련한 개인적인 에피소드나 비사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다만 인터뷰 도중 자신이 취재 과정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천 작가는 “원래는 법대 교수를 하고 싶어 했는데,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사법시험을 봤다고 한다”며 “윤 전 총장은 탐구심이 강했던 것 같다. 사시를 9수 만에 합격했는데, 이때 노자, 한비자, 칸트 같은 인문학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부친이 도서관에서 윤 전 총장이 인문학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할 거면 다른 진로를 모색하라고 따끔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후 공부에 집중해서 고시에 합격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치인으로서 윤 전 총장의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천 작가는 평가했다. 천 작가는 “윤 전 총장의 강점은 강한 논리와 사실 추구다. 약점도 같다고 본다”며 “검찰에 몸담았던 윤 전 총장이 정치권으로 들어간다는 건 사실의 싸움에서 프레임의 싸움으로 들어가는 거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반기문 총장이 프레임 싸움을 하지 못해 실패한 대표적인 예다. 윤 전 총장이 프레임을 장악하고 ‘멱살을 잡고 끌고 갈’ 수 있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천 작가는 이 책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용비어천가로 평가받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라고 묻는 말에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며 “궁금했던 인물을 탐구했고 나름의 결론을 도출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