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쇄신 기대감 속 중진들의 반격 예고…‘0선 대표’ 당 장악 및 대선관리 한계론도
국민의힘은 6월 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제1차 전당대회를 열고 당대표 경선에서 이준석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선거는 6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진행된 일반·책임당원·대의원 등 당원 선거인단 대상 모바일·ARS투표 70%와 일반국민 여론조사 3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준석 대표는 당원 선거인단 37.41%, 일반 여론조사 58.76%로 총 43.82%를 득표했다. 2위 나경원 후보와의 6.68%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30대 정치인이 당대표에 오른 것은 대한민국 주요 정당 역사상 처음이다. 기존 최연소 기록은 지난 1974년 47세의 나이로 신민당 총재로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이를 10년 이상 앞당긴 셈이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대표와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에 이어 국민의힘 이준석 초대 대표까지 3번 연속으로 원외 인사가 당권을 잡게 됐다.
이준석 대표는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청년 벤처기업인으로 활동하다 2011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되며 이른바 ‘박근혜 키즈’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준석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을 탈당, 바른정당 바른미래당을 거쳐 다시 미래통합당으로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바른미래당과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10년의 정치활동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3번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준석 대표 당선은 한국 정치의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 이러한 기대감이 반영됐는지,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유례없는 흥행을 기록했다. 국민의힘 선관위에 따르면 당원 선거인단 대상 모바일·ARS투표율은 45.36%로 집계됐다. 현재와 같은 선거인단 체제로 전당대회를 치른 2011년 이후 역대 최고 투표율이다.
이준석 대표는 앞으로 2년 동안 당을 이끌며 내년 3월 대선을 지휘해 정권교체를 달성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이 대표는 당선 수락연설에서 “다양한 대선주자 및 그 지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당을 만들겠다”며 “우리의 지상과제는 대선에 승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당대표 체제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의 시선도 공존한다. 이준석 대표 앞에 놓인 과제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 선출은 국민의힘의 개혁과 자강론을 바라는 요구의 표출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준석 대표가 나경원 주호영 후보 등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함께한 중진들을 꺾고 당선됐다. 박근혜 정부 탄생 및 탄핵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2선 후퇴를 보수 지지층에서 원한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준석 대표는 계파정치·기득권정치 청산, 다선 중진들의 2선 후퇴, 젊은 정치 신인들의 등장 등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내홍과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당내 혁신과 관련해서는 이준석 대표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진들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치인들이다. 가만히 2선으로 물러나겠느냐”며 “갈등과 반발이 거셀 수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 역시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준석 대표가 여러 비전을 제시하고 공약을 내걸었다”며 “하지만 당대표로서 100명이 넘는 의원을 이끌고 여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수많은 시험대에 오를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중진들을 중심으로 이준석 대표에 대한 비토 분위기가 역력하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민심과 당심은 확실히 다르다. 당 밖에선 이준석에게 환호하는 분위기가 높지만 내부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면서 “내년 대선 승리라는 지상과제 때문에 결국 당심이 민심을 따라간 측면이 있지만, 원외 당 대표로서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원들의 협조가 절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국민의힘이 6월 11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의뢰한 현역 의원 102명 전원에 대한 부동산 투기의혹 전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어떻게 징계하거나 처리할지도 관심이 집중된다. 국민의힘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이준석 대표가 의원 경험은 없지만, 정치권에 발을 담근 것이 10년이 됐다”며 “큰 갈등 없이 조율을 잘해내리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준석 대표 리더십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당 외부 대선주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현재 보수 야권 유력 주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이다.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 아니다. 과연 이준석 대표가 ‘반문재인 연대’를 기치로 하는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준석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국민의힘으로 들어오는 문을 활짝 열어주되 특정 주자를 위해 기다려줄 수는 없다”며 ‘특혜는 없다’고 밝혀왔다. 정해진 시간에 버스를 출발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이를 놓고 경쟁 후보들은 야권 통합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면서 반발했다. 당내 지지 기반이 전무한 윤 전 총장이 당으로 들어오려 하겠느냐는 물음도 나왔다.
안철수 대표와는 바른미래당 시절부터 이어진 악연으로 ‘야권 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동안 이 대표는 안 대표와 각을 세워왔다.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과 합당과 관련해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정권교체를 위한 합당의 진정성, 합리적 원칙을 가지고 임한다면 합당은 아무런 문제없이 순조롭게 추진될 것”이라고 우려에 반박했지만, 둘의 앙금이 합당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이준석 대표는 첫 기자회견부터 야권 통합을 위한 방안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당과 합당에 대해서는, 원내대표 역임 당시 합당을 협상해왔던 주호영 후보에게 역할을 맡아달라고 공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당 밖의 대권 주자들이 자신의 개성과 철학을 유지한 채 합류하는 길을 열어드리고자 한다”며 “윤석열 전 총장과 안철수 대표, 최재형 감사원장 등이 정치참여 의사가 있다면 당대표로서 안내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당내 후보군과 대선후보 경선 규칙의 원칙을 강조하며, 원외 후보군을 견제했다. 이 대표는 “당 밖의 주자들이 입당하거나 합당하기 전까지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당원과 당내 인사들의 의견이 주가 될 것”이라며 “원희룡 제주지사나 유승민 전 대표 외에 하태경 의원도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더 많은 우리 당 대선주자들이 있을 텐데, 이 분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첫 번째 과제다”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서도 “대선 과정에서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이라며 “대선후보가 정해지면 상의해서 모실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의 시점을 대선후보 선출 이후로 언급한 것을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이 현재 유력 대선주자들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당 안팎에서는 ‘페미니즘 논쟁’ 등 전당대회 전후로 불거진 이 대표의 직설적인 화법을 이준석 체제의 위험요소로 꼽기도 한다. 이 대표는 돌직구 언행으로 전당대회 토론회에서 나경원 주호영 후보 등과 네거티브 논쟁을 벌이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과거 이 대표는 최고위원이나 원외 인사로 SNS나 방송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왔다. 이를 두고 논쟁도 많이 벌어졌다. 그런데 당대표로서 이런 행보를 이어간다면 바로 국민의힘 당론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주의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준석 당대표 체제가 내년 3월 대선 전후까지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비관적 시선이 존재한다. 이준석 당대표의 개혁노선에 당내 분열과 갈등이 극심화되면서, 대선 전 조기퇴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대선 패배 시에도 대표직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준석 체제의 실패가 정권탈환의 실패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정치인 이준석과 '이준석 현상'은 구분해야 한다. 이준석 대표 선출은 기성정치에 대한 반감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이 투영돼 정치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다. 이준석 본인의 정치적 역량 부족으로 대선까지 주도하지 못하더라도, 이번 전당대회 결과가 보수진영에는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당대표 선거와 함께 치러진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조수진 배현진 김재원 정미경 후보가 당선됐다. 청년최고위원에는 김용태 후보가 선출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