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서바이벌 관전 후 베팅?
이러한 우려가 잇따르자,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일단 화해 제스처를 취하며 봉합하려 애쓰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미 골이 깊어진 두 인사 사이의 거리감은 쉽게 좁혀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여기에 대선이 다가옴에 따라 박 원내대표의 선택이 민주당의 대권주자 3인방인 손학규 대표, 정세균 최고위원, 정동영 최고위원 간의 역학관계를 좌우할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의 행보에 따라서 현재의 ‘삼족정립’ 구도가 일거에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과연 박 원내대표는 빅3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손학규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분위기는 최근 우려 쪽으로 한참 기울어진 모습이다.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박지원 원내대표와의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는 마찰 때문.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해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 대표를 막후에서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손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었으나 이후 손 대표와 종종 다른 목소리를 내며 긴장관계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의원총회에서 벌어진 ‘원외는 나가달라’ 사건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박지원 원내대표가 회의에 참석한 손 대표의 측근인 차영 대변인을 향해 “현역 의원이 아닌 사람은 다 나가달라”고 요구하면서 공식석상에서 손 대표를 ‘무시’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불화를 산 바 있다.
이후 당내에서는 손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불편한 사이에 대한 우려를 내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실제적인 주도권은 손 대표가 아닌 박 원내대표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 대표가 간혹 안쓰러워 보일 때마저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최근 영수회담 개최 여부를 두고 두 인사가 또 한 번 의견충돌을 빚자 당내 일각에서는 ‘둘 중 한 사람이 지도부를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분위기까지 조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잘못을 지적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앞서의 민주당 인사는 “영수회담에 나가는 당사자가 민주당 대표인데 박지원 원내대표가 손 대표와 충분한 의견 조율 없이 합의 의사를 밝힌 것은 오버한 감이 짙다. 손 대표로선 기분이 상했을 만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손 대표가 박지원 원내대표와의 주도권 다툼에서 입지가 공고하지 못했던 터였기에 이번 사건이 긴장 국면에 불을 지른 꼴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예산안 날치기에 대한 사과가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손 대표는 결국 이번 영수회담을 둘러싼 박지원 원내대표와의 갈등에서도 밀렸다는 평가다. 박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의 영수회담 개최합의 직후 이를 정면 반박했던 손 대표는 ‘조건 없는’ 영수회담 개최 합의 쪽으로 한발짝 물러서며 결과적으로 박 원내대표의 의견을 따라갔다. 민주당 내에서는 “영수회담 개최 여부와 상관없이 손 대표가 이번 갈등으로 잃은 것이 크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영수회담에 나가는 당사자는 손 대표이지만, 영수회담이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이미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뺏긴 꼴”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둘러싼 정세균·정동영 두 최고위원의 입장 변화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내 현안에 대해서 손 대표와 정세균 최고위원이 ‘한 편’에 서는 듯한 양상인 반면, 정동영 최고위원은 손 대표에 대한 ‘날 세우기’를 계속하고 있는 분위기다. 또한 무산되긴 했으나 손 대표는 당내 복지특위위원장을 정세균 최고위원에게 맡기려고 하는 등 정 최고위원과의 ‘손잡기’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사실상 당을 ‘장악’하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누구에게 힘을 실어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는 상황.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입지가 확고하지 못한 손 대표로서는 2, 3위권 주자와 힘을 합쳐 몸집을 키우려고 하지 않겠느냐.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는 정동영 최고위원에 비해 정세균 최고위원과 합세할 가능성이 높다. 양측 인사들의 성향도 오버랩 되는 측면이 많아 파장도 적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과 긴밀히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손학규 대표, 정세균 최고위원, 정동영 최고위원. 이른바 민주당 ‘빅3’가 몸집 키우기를 시도하며 대선행보에 나서고 있으나 이들 모두 현재 지지율은 10%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대선주자로서 박근혜 전 대표에 견줄 만한 대항마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상 당을 장악하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어느 주자에게 힘을 실어줄지의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 한 정치컨설턴트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오버한다는 비판에도 손 대표와 각을 세우는 이유는 자신이 차기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기 위함이다. 박 원내대표는 무리하게 자기 사람을 키우는 대신 가능성 있는 주자가 보이면 그때 나설 것이다. 그때까지는 손-정(동영)-정(세균) 세 명의 주자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당내 일각에서는 “‘손학규-정세균 vs 박지원-정동영’의 양대 세력분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인사는 “손학규 대표가 정세균 최고위원과 힘을 모은다면 정동영 최고위원은 자연스레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지원 원내대표가 쉽게 속내를 드러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그동안 민주당 의원총회 자리에서 종종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 ‘사이’에 앉아 양측의 중재적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당분간 박 원내대표는 당 장악력을 유지하며 ‘킹메이커’로서의 입지를 다질 것이라는 분석. 한 민주당 관계자는 “만약 손학규 대표의 입지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박지원 원내대표의 득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손 대표에게도 ‘남은’ 기회의 시간이 있다. 이 관계자는 “오는 5월 박지원 원내대표의 임기가 끝나면 이후 (당대표 임기만료 시점인) 12월까지 손 대표의 ‘친정체제’가 올 수 있다. 이 시기에 손 대표가 당내 장악력을 높이지 못한다면 결국 손 대표도 민주당 ‘빅3 주자’ 중 한 명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 시기가 손 대표에게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