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 회장 | ||
요즘 대기업들의 최대 관심은 올해 순이익 1조원대를 달성하는 것이다. 불황기에 순익 1조원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실적 이전에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기업이라면 일단 매출은 10조원대에 이르러야 한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순익 1조원은 기업들의 꿈이었다. 한국 기업사에서 순익 1조원시대를 가장 먼저 연 곳은 포스코와 한국전력이었다. 두 회사는 지난 98회계연도에 각각 1조1천억원과 1조2천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현재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순익을 남기고 있는 삼성전자는 이들 두 기업보다 1년이 늦은 99년에 순익 3조원대를 돌파하면서 본격적으로 1조원클럽에 가입했다. 삼성전자의 99년 순익 3조1천여억원은 그 전해인 98년 3천1백억원의 10배였다.
삼성전자의 신화는 그때부터 시작해, 올해는 순이익 10조원 돌파라는 대기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동원증권은 지난 3분기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순이익 1조원 돌파가 예상되는 블루칩 클럽 멤버로 삼성전자, 한국전력, 포스코, SK텔레콤, 현대자동차, LG필립스LCD, KT, LG전자, SK, 하이닉스 등을 꼽았다.
다른 1조원 클럽 멤버들의 10배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고 있는 삼성전자의 비중을 감안하면 삼성그룹이 가장 비중이 크고, 이어 LG그룹 계열사 두 곳, SK그룹 계열사 두 곳, 현대차그룹 한 곳 등 국내 대기업 계열사가 골고루 포진돼 있다.
이들 멤버들의 성적을 살펴보면 순익 1조원 클럽의 원년 멤버인 한국전력과 포스코는 올해도 탄탄한 성적을 보였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2조3천1백억원대에서 큰 변화 없는 2조3천4백억원 정도의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포스코는 올해 순익 규모가 늘어났다. 지난해 1조9천8백억원에서 올해 3조5천6백억원대로 뛴 것. 지난 3분기에는 분기 순이익이 1조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런 규모는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다.
삼성전자의 올해 순익 추정치는 11조5천억원대. 이는 지금까지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던 해인 2002년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2년에 순익 7조원 시대를 열었고 지난해 6조원에 조금 못미치는 실적을 거뒀다. 그러다 올해 점프하면서 순익 10조원 시대를 연 것. 70년대 말 우리나라는 국가 전체 수출 1백억달러 돌파를 기념했는데 이제 한 기업의 순익이 1백억달러 규모를 이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내 제조업의 간판 중 하나인 현대자동차도 내수 불황을 딛고 올해도 순익이 꾸준히 늘어났다. 현대차는 다른 순익 1조원 클럽 멤버에 비해 1조원 클럽 가입시점이 좀 늦었다. 지난 2001년에야 1조1천억원대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후 꾸준히 순이익이 증가하고 있는 현대차는 올해 1조9천7백억원의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내년 북미 시장과 중국 시장에 투입될 예정인 NF소나타의 매출과 XG후속인 TG와 산타페 후속 모델이 내수시장과 수출 시장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에 따라 내년에 3조원대를 넘어서는 점프냐 침체냐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장된 LG필립스LCD도 최근에 LCD경기가 예전같지 못하지만 올해 순익은 지난해보다 8천억원 정도 늘어난 1조8천1백억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최태원 SK 회장 | ||
KT는 새롭게 떠오른 수익원은 없지만 그간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을 줄이고 기존사업에서 안정적인 이익을 올려 올해 순이익이 지난해 8천3백억원에서 1조1천억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LCD를 양날개로 달고 순익 10조원대로 훨훨 날아갈 동안 이문이 박한 가전사업군에서 고군분투하던 LG전자가 드디어 순익 1조원대에 가입하게 된다. 1등 공신은 몇 해 전 합병했던 정보통신 분야. LG전자는 최근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5위권으로 꼽히는 실적이 그대로 장부에 반영됐다. 지난해 6천6백억원대의 순익이 올해는 1조6천1백억원으로 껑충 뛴 것. 게다가 가전 분야에서도 내수나 수출 모두 탄탄한 실적을 보이고 있어서 당분간 LG전자는 상종가를 달릴 것으로 보인다.
SK(주)와 하이닉스의 순이익 1조원 클럽 가입은 올해의 깜짝상이라고 부를만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증시의 두통거리였던 하이닉스는 비메모리사업부와 LCD 사업부 매각 등 구조조정이 결실을 보고, 세계 D램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해 2조3천1백억원의 적자에서 올해는 2조2백억원의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돼 1년 만에 천덕꾸러기에서 신데렐라로 변신했다.
올 국내 증시에서 또 하나의 깜짝 스타는 정유업을 하는 SK. SK는 지난 10월 말 발표한 올 3분기 매출과 순이익이 각각 4조4천7백28억원과 3천1백6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은 49%, 순이익은 무려 1천4백45%가 늘어났다.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정유사들의 경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상식과는 달리 올해 SK는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언론에서 나오는 고유가 소식은 대부분 미국산 기름이나 북해산 기름의 현물시장 가격인데 비해 정유사들이 들여오는 기름은 장기계약으로 들여오는 물량인데다 대부분 중동 지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당장 장부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이다. 이런 사정은 에쓰오일 등 외국계 정유사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SK의 올해 순이익은 사상 최고인 1조4천8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증권가 일각에선 이런 SK의 사상 최대 실적 ‘시현’이 SK의 경영권 분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 SK의 오너 경영인인 최태원 회장이 ‘실적’을 통해 주주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는 봄 정기 주총에서 SK가 주주들에게 얼마를 배당할 것이냐를 놓고 벌써부터 설왕설래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많아야 5백~8백원일텐데, 증권가에서 주당 3천원이다, 5천원이다 하는 등 호가가 한창이다.
SK 최 회장 오너십 경영의 손을 들어줬다는 외국계 기관 투자자가 주주배당 현실화를 요구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서 내년 주총에서 SK가 기록적인 현금배당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SK에서 시작된 외국인 대주주들의 공세와 경영권 방어 재료가 겹치면서 삼성전자 등 다른 1조원 클럽 회사에도 현금 배당을 중요시하는 외국인 주주의 입맛에 맞춰 내년 봄 정기주총에서 사상 최대의 돈잔치가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