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철부지’들 내일이면 할아버지
▲ 영화 <도쿄!>의 한 장면 |
2010년 11월 78세의 아버지가 50세 장남을 금속 배트로 때려죽인 사건이 일본 아키타시에서 일어났다.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연금으로 생활하던 아버지에 의지해 30년간 집에서만 지냈다. 아버지는 이러한 아들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그만 살해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웃들은 “그 집에 아들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또 2010년 8월에는 66세 어머니가 직업이 없는 38세 아들을 죽이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28세부터 우울증을 앓으며 히키코모리가 된 아들을 보살펴 왔다. 모자가 죽은 후 집에서 ‘아들을 남겨놓고 못 죽겠다’는 메모가 발견됐다.
그런가 하면 올 1월 이바라기현에서는 37세 히키코모리 딸이 집에서 66세 어머니의 목과 얼굴 등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어머니를 찌른 후 딸은 집 근처 육교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해 중상을 입었다. 딸은 자신의 생활 습관을 못마땅해 한 어머니와 매일같이 다퉜다고 한다.
가족 간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0년 4월에는 15세부터 15년간 히키코모리로 지내던 30세 무직 남성이 함께 사는 아버지(59), 어머니(58), 남동생(22), 제수(27), 한 살 된 조카를 칼로 찌르고 집에 불을 질렀다. 아버지와 조카는 사망했고 나머지 가족들은 중경상을 입었다. 아들은 평소 부모의 신용카드로 인터넷에서 게임기를 마구 구입했다고 한다. 이를 견디다 못한 가족이 인터넷을 해약했다. 그러자 아들은 “누가 인터넷을 끊었느냐”며 격분해 부엌에서 칼을 꺼내 휘두른 것이라 한다.
이렇듯 히키코모리 문제가 발단이 된 엽기적 가족 살해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30~50대 중장년 히키코모리를 둘러싼 사건이란 점에서 ‘고령자 히키코모리’가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히키코모리는 이제 단순히 학교 등교를 거부하는 10대나 학교 졸업 후 사회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20대 젊은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40대가 넘으면 진학이나 취업, 모임 등 사회에 참여할 만한 동기부여 자체가 아예 사라지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렇다면 왜 중장년 히키코모리가 늘었을까. 전문가들은 196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히키코모리 1세대’가 현재 약 40~45세에 이르렀다는 점을 우선 꼽는다. 일본 경기의 호황이 끝난 1980년 후반이나 1990년 초반에 중고교를 관두고 부모 집에 얹혀 생활하기 시작한 이들이 히키코모리 첫 세대라는 것. 진학과 취업 등 사회로 나가는 동년배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껴 아예 두문불출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이제 히키코모리 경력만 대체로 20~30년에 이르렀다.
또 최근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를 당한 유형의 40대 히키코모리도 크게 늘었다. 일하고 싶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긴 휴가’상태에 있는 40대 층이 결국 히키코모리가 된다고 한다.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와 인터뷰한 전직 측량기사 다나카 이치로 씨(40)는 “갑자기 구조조정된 후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일감이 끊기면서 결국 히키코모리가 됐다”며 “아직까지 외출을 못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나를 응석받이나 게으름뱅이로 여기고 있을까봐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도 피한다”고 말했다.
꼭 해고가 계기가 아니라 과로로 인해 일을 관둔 이가 결국 히키코모리가 된 케이스도 있다. 대학 졸업 후 사무직으로 회사에서 근무하게 된 한 남성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정신과에서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으나 역시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졸음이 와 일을 제대로 못해 회사를 그만뒀다. 재취업을 해도 계속 일하지 못하고, 결국 연금을 받는 부모 집으로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 부모 집에서 나오고 싶어도 ‘40대 무직’이란 점 때문에 집도 구할 수 없는 처지. 어떻게든 자립해보고자 우선 생활보호를 신청했으나 동사무소에서 건강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제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구나’고 생각한 남성은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히키코모리가 됐다.
전문가들은 현재 30~34세층이 전체 히키코모리 중 44%로 가장 많다며, 이들이 앞으로 나이가 들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중장년층 히키코모리는 연금을 타는 부모에게 의지해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부모 사후에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당면한 과제라는 것이다.
2010년 7월에는 도쿄 아다치구의 한 주택에서 거의 해골 상태에 가까운 남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살아있었더라면 111세로 추정됐는데, 실은 가족이 30년간 이 남성의 죽음을 감춘 것으로 밝혀졌다. 81세 장녀와 53세 손녀가 연금을 타고자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놓았다가 발각된 것이다. 81세 장녀와 53세 손녀가 거의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무려 30년간 죽음을 비밀로 할 수 있었다. 30년간 모녀가 그의 몫으로 받은 연금은 900만 엔(약 1억 2000만 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2010년 9월 오사카시에서도 발각됐다. 살아있었더라면 91세인 남성의 시체가 5년이 지나 자택 옷장에서 발견된 것. 히키코모리인 58세 장녀가 아버지 연금을 타려고 시체를 숨겨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웃들은 장녀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대인공포증에 걸린 것 아니냐’며 수군댔었다고 한다.
사회학자 이데 소헤 씨에 따르면, 중장년층 히키코모리는 연금을 받는 노부모가 죽어 생활이 어려워질 경우 자살하거나 굶어 죽겠다는 대답이 다수였으며 취업을 하겠다는 대답은 소수에 그쳤다고 한다. 이데 씨는 “실제로 장기간 집에 있으면서 손목을 긋는 등 자살을 시도하거나 우울증과 심신장애를 가진 히키코모리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연일 ‘이제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며 중장년층 히키코모리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일본 후생성에서도 6개월 이상 집에서만 생활하고 타인과 교류할 수 없는 상태를 히키코모리로 정의하고 히키코모리 추정 가족 26만 세대에 심리지원 등 의료 상담을 지원하겠다며 ‘2010년 히키코모리 가이드라인’를 내놓았다. 도쿄 지역의 30대 이상 히키코모리 당사자 모임이나 가족 지원 NGO 등도 늘고 있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드러난 중장년층 히키코모리 문제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아 지적하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