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마음 돌릴 ‘구원투수’ 되나
▲ 전경련 회장에 추대된 허창수 회장. |
지난해 7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전경련 회장 사임 이후 새 회장을 찾기까지 전경련은 7개월간 진통을 겪어야 했다. 당초 전경련 내에선 “이번만큼은 재계를 대표하는 10대 재벌 안에서 회장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5대 재벌 총수들이 우선적으로 거론됐으나 이들 총수들은 하나같이 전경련 회장직을 멀리했다.
지난 1월 전경련 회장단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69)에게 전경련 회장직을 부탁했으나 이 회장이 정중히 거절했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73) 역시 오래 전부터 고사해왔다. 구본무 LG그룹 회장(66)은 지난 1999년 대기업 빅딜에서 전경련이 LG반도체를 당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에 넘기는 중재안을 내놓은 것에 반발해 지금까지 전경련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으며 최태원 SK그룹 회장(51)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56)은 회장직을 맡기엔 이르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재계 6위 포스코의 정준양 회장은 총수가 아닌 임기제 CEO(최고경영자)란 점에서 후보군에서 제외된 상태. 결국 재계 7위 GS그룹의 허창수 회장에게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당초 허 회장은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장직을 고사했다고 한다.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에 합류한 것은 2009년 초의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회장직을 수락한 직후 허 회장은 “원로들과 회장단이 너무 강하게 요청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실패 이후로 허 회장은 언론 노출을 삼갔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기까지 한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한 배경엔 전경련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겠지만 다른 내부 사정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GS그룹은 다른 재벌과 달리 ‘집단지도체제’ 성격을 갖고 있다. 허창수 회장이 총수직을 맡고 있지만 허 회장의 사촌형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을 비롯해 허 회장 동생들과 사촌들이 계열사 CEO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서 만만치 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008년 나섰다가 실패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선 허 회장 대신 사촌동생 허용수 GS홀딩스 전무가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허 전무는 지주사 GS홀딩스 지분 4.10%를 보유해 허 회장(4.75%)에 이은 2대주주에 올라 있기도 하다. 주요 재벌 총수들이 한사코 사양해온 전경련 회장직을 수용한 허 회장의 머릿속에 대외적 위상 제고를 통한 내부 장악력 강화 구상이 그려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 재계 서열 7위 총수가 회장직을 맡은 만큼 허창수 회장에 대한 전경련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커 보인다. 그동안 실추된 전경련의 위상 강화가 첫 번째 과제일 듯하다. 이를 위해 사실상 전경련에서 탈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는 요구가 들려오고 있다. 구 회장과 돈독한 관계의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으면서 구 회장이 전경련에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조되는 것이다.
지난 2004년 GS가 LG에서 분리되기까지 GS 허씨 집안은 LG 구씨 집안과 성공적인 동업관계를 이어왔다. 분리 이후에도 양측은 서로의 주력 업종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암묵적으로 지켜왔다.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하면서 LG와의 사전 교감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허 회장은 “LG그룹과 상의한 적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허 회장이 구 회장을 다시 전경련에 불러낼 수 있다는 기대가 큰 만큼 “구 회장이 꿈쩍도 하지 않을 경우 허 회장의 전경련 회장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대두된다. 오히려 무리하게 구 회장을 끌어들이려다 LG와 GS의 우호관계에 금이 갈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전경련의 새 수장이 된 허 회장이 옛 사업 동지의 마음을 얼마만큼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재계의 관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