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도망 매뉴얼 아니므니까!
▲ 이치하시 다쓰야의 체포 당시 모습(왼쪽). 이치하시의 성형 전(중앙)과 성형 후 모습. |
일본의 언론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치하시 다쓰야의 수기 <체포까지>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치하시가 도피생활을 한 곳으로 드러난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의 무인도 ‘오하도’에 기자가 텐트를 갖고 들어가 직접 1박 체험을 할 정도다. 오하도는 관광지로 급부상했으며, <체포까지>는 드라마나 영화 제작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수기에는 이치하시가 수사 당시에 굳게 입을 다물었던 도주 루트와 도망자 생활의 전모가 면밀히 기록되어 있다. 이치하시의 도주 생활은 그야말로 엽기적이었다.
도주할 때 수만 엔 정도의 현금만 갖고 맨발로 달아난 이치하시는 그 길로 편의점에서 바느질세트 용구를 구입한 뒤 근처 병원 장애인화장실로 들어가서 자신의 코를 꿰맸다. 코가 커서 눈에 띌까 염려됐기 때문에 코 평수를 줄인 것이었다고 한다. 화장품 점에 들러서는 여성용 쌍꺼풀 테이프를 사서 붙이고 무작정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남쪽은 더 잡히기 쉽다고 판단해 루트를 바꿔 북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동북쪽 지방으로 간 이치하시는 자기가 죽인 린제이 씨가 “입술이 일본인에 비해 두껍다”고 한 말이 생각나 가위로 아랫입술을 잘랐다. 실제로 검거된 후 그의 입술에는 큰 흉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돈이 떨어져 선로를 따라 걸으며 홈리스 생활을 하던 이치하시는 자신의 수배전단을 본 후 사람이 없는 곳에 가야한다는 일념으로 도서관에 들러 지도를 찾아보고 자신이 살 무인도를 정했다. 드디어 이치하시는 면적이 0.37㎞에 불과한 일본 최남단의 무인도 오하도를 골라 1주간 분량의 쌀과 낚싯대를 짊어지고 들어갔다. 도망간 뒤 3개월째 되던 시기였다.
일본 언론은 “오하도에서의 생활이 그야말로 로빈슨 크루소와 다름없을 정도였다”라고 보도했다. 주일미군이 쓰다버린 감시초소에 자리를 잡은 이치하시는 파도가 높아 낚시가 여의치 않자 달팽이와 뱀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뱀 수프를 끓여 섬에 살고 있던 검은 고양이와 나눠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치하시의 엽기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인도에 살면서도 행여나 잡힐까 전전긍긍하던 이치하시는 얼굴 왼쪽 볼에 난 점 2개를 칼로 파냈다. 수배 사진에 점이 드러나 있기 때문. 다시 육지로 나간 그는 계속해서 성형수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치하시는 가명으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거나 솔개를 잡는 사냥꾼으로 일하며 60만 엔을 모아 병원에서 콧대를 낮추는 수술을 했다. 또한 두세 차례 섬과 육지를 오가는 생활을 하며 돈을 모아 눈썹을 높이는 성형 수술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치하시는 수상쩍게 여긴 병원의 신고로 결국 수배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처럼 상세하게 드러난 엽기 도주생활 때문인지 이치하시의 수기 <체포까지>는 불과 출간 1개월여 만에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는 여타 흉악범죄자와는 달리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부모가 모두 의사인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수기 내용 중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다가 피해자 린제이 씨가 죽기 전 “My life is for me(내 인생은 내 것)”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펑펑 울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경찰에서는 대답을 잘하지 않는 등 불성실하게 조사에 응한 것으로 드러나 ‘정말 반성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치하시는 인세를 모두 피해자 린제이 씨 유족에게 주겠다는 입장이나 유족은 단호히 거절했다.
수기 출간에 대한 비판여론도 만만치 않다. “장기간 뻔뻔스런 도주생활을 한 범죄자가 과연 당당히 수기를 써도 되느냐”, “앞으로 이 수기가 혹여 범죄자 도주 매뉴얼로 쓰이지 않겠느냐”는 비난과 우려가 들끓었다.
일본에서 범죄자가 직접 수기나 자서전, 소설을 출간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체포까지>처럼 베스트셀러로 크게 성공한 예는 없었다.
1988년부터 1년간 4명의 여아를 유괴해 성폭행 후 살해한 희대의 엽기적 연쇄살인범 미야자키 쓰도무(당시 26세)도 구치소에서 1998년 <꿈속에서-연속유아살해사건 고백>을 출간한 데 이어, 사형이 확정된 2006년에 <지금도 꿈속에서>란 수기를 출간한 바 있다. 미야자키는 2008년 사형이 집행됐다.
1981년 유학 중이던 프랑스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던 25세 네덜란드인 여자 동급생을 살해·시간 후 토막 내 먹은 사가와 잇세(당시 32세)가 범죄 후 20여 년이 흐른 2002년 출간한 자전적 소설 <안갯속의 진실>도 부정적 반응이 만만치 않았다. 사가와는 프랑스에서 붙잡힌 후 현지 재판에서 “요리해 보니 허벅지가 옥수수처럼 노릇노릇하고, 참치회처럼 부드러웠다”고 말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정신분열증세를 인정받아 풀려난 뒤 일본으로 들어와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을 다룬 <안갯속의 진실>에 대해 독자들은 “어디까지가 자기가 체험한 사실인지 모르겠다”,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는 반응이 쇄도했다. “이런 책이 출판 가능한 것은 일본사회 병리가 심각하다는 증거”라는 인식도 퍼졌다.
1997년 14세 소년(당시)이 고베에서 초등학생을 살해한 뒤 머리를 잘라 자기가 다니는 중학교 교문에 걸어둬 일본 전역이 경악을 금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살인범은 미성년자라 실명이 아닌 ‘소년 A’로 불렸다. 이 살인범의 부모가 ‘소년 A의 부모’란 필명으로 2001년 발표한 책 <소년 A를 낳고-부모의 통한의 수기>도 비난을 받았다. 소년 A가 초등학생 살해 전 야생 고양이를 죽이고, 칼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등 이상행태를 보였음에도 이를 놔둔 부모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처럼 범죄자 수기 출간에 대한 비판 여론과 더불어 범죄자의 자서전이 범죄의 원인을 규명해 내거나 법의학·범죄심리학 등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도 대두돼 당분간 범죄자 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