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완화 연기에 “방금 또 수백 날렸다”…임대료 체납 수십억 보증금 다 잃고 속속 거리로
앞서의 관계자는 “내일부터 영업이라 야채와 과일 등을 사입했는데 다 버리게 생겼다”고 했다. 일주일만 더 잘 견디면 되지만 유흥업계 관계자들은 “그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말한다. 그들의 정부와 방역당국, 그리고 지자체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여과 없이 전달됐다.
#세금 항목만 16개
서울 강남 지역에서 여러 개의 대형 룸살롱을 운영했던 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유흥업소가 대략 30만 개 정도 되고 거기 얽히고설킨 사람이 200만 명이 넘는다”라며 “유흥업소 종사자들과 가족, 납품 업자 등을 다 합치면 그렇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그들 모두 수입이 전혀 없는 매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유흥업계 관계자는 “1종 허가를 갖고 영업하는 정상적인 유흥업소는 엄청나게 세금을 많이 낸다. 세금 항목이 16개나 된다”라며 “열심히 세금 내며 사업을 해왔는데 이런 위기 상황에서 국가는 우리를 전혀 보호해주지 않는다. 자영업자를 돕는 다양한 정책과 지원책이 나오지만 늘 우리는 배제된다. 세금은 많이 내는데 보호는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룸살롱이 불법 영업을 하고 거듭해서 경찰에 적발되고 있는 상황은 유흥업계가 세금을 잘 내며 합법적으로 영업하고 있다는 주장과 대치되는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은 유흥업계 관계자들도 안타까워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업주들이 불법 영업이라도 하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방역이 더 어려워진다. 무조건 문을 닫고 하염없이 기다리라는 현재의 정부 정책이 불법 영업을 조장해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유흥업소가 다양한 항목으로 많은 세금을 내는 까닭은 그만큼 많은 돈을 벌기 때문이다. 유흥업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상황에서 유흥업계는 늘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룸살롱 등 유흥업소는 밀폐된 공간에서 접촉도가 빈번하고, 노래와 춤까지 어우러지는 등 집단감염 위험요소도 많다. 그럼에도 불법 영업을 하고 거듭 적발되면서 유흥업계에 대한 여론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거듭되는 명도소송
한 유흥업계 관계자는 “유흥업소가 있는 건물에는 좀처럼 착한 임대인이 없다”고 푸념했다. 강남에서 나름 규모가 큰 유흥업소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모두 날리게 됐다는 한 유흥업계 관계자는 “유흥업소들은 임대료가 비싸다. 수천만 원은 기본이고 억대 임대료도 많은데 문 닫은 지 1년이 넘었다. 임대료를 낼 수 없어 보증금을 조금씩 까먹기 시작해 보증금 다 날리고도 임대료가 밀린 곳이 많다. 그러면 어김없이 건물주의 명도소송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요즘 서울 강남 유흥업소들 가운데 이처럼 명도소송을 당한 경우가 상당수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남의 한 관광호텔에 있던 A 룸살롱이다. 600평이 넘는 규모를 자랑하던 이곳의 보증금은 20억 원, 매월 임대료가 9000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영업을 못하니 임대료도 내지 못해 보증금 다 까먹고 결국 명도소송을 당해 패소했다.
A 룸살롱 관계자는 “보증금 20억 원이 투자금의 일부다. 50억 원가량을 투자해 대대적인 내부 인테리어를 했는데 바로 코로나19가 터졌다”라며 “명도소송에서 패소해 쫓겨난 터라 권리금도 못 받아 인테리어 비용을 모두 날렸다. 여기에 접대여성들 마이킹(선수금)도 수십억 원이다. 우리 가게를 인수하는 사람은 권리금 없이 우리가 투자한 인테리어를 고스란히 사용하게 된다. 이를 아는 건물주는 보증금과 임대료를 엄청 올릴 거다. 그래도 새로 들어오는 쪽은 권리금이 없어 이익이라 유흥업계에 명도소송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A 룸살롱은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호텔 측에 밀린 임대료와 보증금 20억 원을 다시 낼 테니 명도소송을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을 호텔 앞에 붙여 놓고 1인 시위 등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 명도소송에서 패했다.
또 다른 호텔의 룸살롱은 명도소송에서 이겨 영업을 이어가게 됐다는데 A 룸살롱처럼 명도소송에서 패한 가게들도 많다. 흔치 않지만 건물주가 임대료를 깎아주는 등 배려해준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착한 임대주인데 정말 흔치 않다고 한다.
앞서의 관계자는 “임대료가 밀린 유흥업소 자리를 권리금 없이 들어오려는 이들이 건물주에게 높은 임대료와 보증금을 제시하면서 명도소송을 권유하기도 한다”면서 “힘겹게 참고 견디는 입장에선 불법 영업 업소들이 얄밉기도 하지만, 권리금도 못 챙기고 쫓겨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걸 알기 때문에 뭐라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A 룸살롱은 가게가 워낙 큰 데다 유난히 많은 인테리어 비용을 들인 경우에 속한다. 평균적으로는 룸살롱들이 인테리어 비용으로 투자하는 비용이 15억~20억 원가량이라고 한다. 이 비용은 나중에 가게를 넘기게 되면 권리금이 된다. 그런데 명도소송에서 패소하면 이런 투자금은 모두 증발하고 만다.
7월 1일부터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에 따르면 현 상황에서 서울과 수도권은 2단계(전국 500명 이상, 수도권 250명 이상)다. 유흥업소의 경우 밤 12시까지 영업이 가능하다. 3단계(전국 1000명 이상, 수도권 500명 이상)가 되더라도 밤 10시까지는 가능하다. 유흥업계 입장에선 사실상 더 이상의 집합금지 명령은 없고 영업시간 제한만 따르는 조치인 터라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6월 말부터 감염자가 급증하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공포감까지 커져가고 있다. 방역 당국이 너무 일찍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시도해 괜한 기대감만 키운 것일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유흥업계 관계자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