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파견, 직접수사 아닌 사법통제 역할…암호화폐 관련 조작·횡령·배임 수사 가능성
이번에 다시 신설되면서 암호화폐(가상화폐, 가상자산) 관련 수사에 투입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소 등에 대한 일괄 현장 점검 등 암호화폐 관련 단속에 집중하고 있다. 아직 암호화폐를 화폐나 자산 중 무엇으로 봐야 할지 기준이 애매하지만, 암호화폐 거래소 상장 및 거래 과정에서 횡령이나 배임, 사기 등이 워낙 많았던 터라 협력단이 첫 수사 사건으로 낙점하기에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도 나온다.
#장관이 운 띄우고, 총장도 지지한 합수단
법무부는 6월 24일 증권·금융 범죄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최근 입법 예고한 직제 개편안엔 포함되지 않아 ‘설치 여부’를 놓고 여러 추측이 나왔지만 23일 이뤄진 인사위원회에서 이번 인사에 맞춰 비직제로 신설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24일 차관회의에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원안’이 그대로 통과된 뒤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서울남부지검에 신설하는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은 경찰·국세청·금융감독원 등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춘 조직”이라고 밝혔다. 협력단에 파견된 검사는 직접 수사를 하지 않고 범죄사실 구성이나 법리, 영장 관계, 인권침해 등을 관리하는 사법통제 역할을 맡는다.
법무부에서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을 다시 서울남부지검 등에 만드는 방안이 검토되기 시작된 것은 올해 4월이다. 지난해 1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 명분 하에 전격 폐지했던 증권범죄합수단을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이 ‘다시 설치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부터다.
서울남부지검장을 역임했던 한 변호사는 “금융범죄는 빠르게 진화하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박근혜 정권 때 만들었던 게 금융범죄합수단이고 속도전에 대응할 수 있게 패스트트랙까지 도입했었는데 이를 없애면서 금융범죄를 전담으로 빠르게 수사하는 곳이 사라지게 됐었다”며 “서울남부지검에 금융범죄 전담 부서를 남겨뒀다고 하지만 유관기관들끼리의 빠른 대응이 없어져 문제가 많았는데 이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직제개편안 중 가장 훌륭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암호화폐부터 수사할 가능성
조심스레 다시 만들어지게 될 협력단에서 암호화폐 관련 수사를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아직 암호화폐를 화폐로 볼 것인지, 자산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의 단속 기조가 워낙 확실해,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첫 수사 대상으로 선정해도 무방하다는 게 법조계의 평이다.
최근 정부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60여 곳 전체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현장 점검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거래소의 컨설팅 및 법인계좌 전수 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거래소를 직접 방문해 코인 관리나 투자자 보호 등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관련 정보를 신고해야 하는 기한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거래소들의 폐업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거래소들은 9월 24일까지 은행에서 실명 확인이 가능한 계좌를 발급받는 등 일정 요건을 갖춰 당국에 신고해야만 영업을 할 수 있다. 은행 실명계좌 외에도 고객 예치금 분리 관리,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자금세탁 방지 체계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현재 4대 대형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를 제외한 나머지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연결해주려고 하는 은행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거래소들을 대상으로 특금법 신고 요건과 보완 사항 등을 알려주는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앞서 부실하게 관리됐던 곳들은 정부 당국의 기준을 맞추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암호화폐 상장 관련 자문을 경험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중소형 거래소들은 암호화폐를 상장할 때, 암호화폐의 상품성이나 기술력 등을 보기보다 ‘상장 물량의 몇 퍼센티지(%)’를 떼어줄 것인지를 먼저 묻고, 이를 확보해 거래소의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며 “상장으로 돈을 버는데 집중했던 코인 개발 세력들은 이에 적극 응하는데, 일부 거래소들은 아예 직접 코인을 만들기도 하지 않았냐. 다 거래소가 상장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코인도 ‘있는 것’처럼 속여 거래가 이뤄지거나, 거래량 및 거래금액을 일부러 거래소가 조작한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곳들은 9월 24일 전에 폐업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앞선 변호사는 “자문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암호화폐 거래소 업계 전반에는 사기꾼과 사업가가 뒤섞여 있다”며 “일각에서는 암호화폐를 놓고 화폐로 볼 수도 없고 자산으로 보기도 기준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들이 암호화폐를 통해 사기나 횡령, 배임을 저지른 것은 입증하기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아마 거래소나 코인 운영 업체들 중 상장폐지 및 폐업을 하게 되면 관련 돈을 횡령하고 해외 등으로 잠적하려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역시 이번 기회에 부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뿌리 뽑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코스콤, 한국예탁결제원 등의 현장 전문가들을 대거 파견해 문제가 되는 거래소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새로 신설될 협력단의 역할을 주목하는 이유다.
금융 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금융범죄합수단이 암호화폐 관련 수사를 했던 적은 없지만, 암호화폐 거래소의 불법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사할 수 있다고 본다”며 “협력단 첫 수사로 거래소들의 투자금 횡령 및 사기 등에 대해 수사를 하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법리적인 기준을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면, 금융범죄 관련 전문성을 갖춘 협력단의 존재 필요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