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김정일’ 깜짝카드 준비
▲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합성한 것. |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관계는 ‘신냉전시대’로 불릴 만큼 얼어붙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진보정권과 달리 엄격한 상호주의를 대북정책의 원칙으로 삼고 핵 폐기와 개방을 요구해 왔다. 임기 초반 이 대통령이 표방했던 ‘비핵·개방 3000’ 역시 이를 근간으로 했다. 북한 경제를 1인당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하는 대신, 그 전제조건으로 비핵과 개방을 내건 것이다. 북한은 이를 ‘관계파탄’의 신호로 받아들였고 결국 남북 간 긴장도 고조됐다.
야권은 ‘남북관계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전으로 퇴보했다’는 평가를 내놓으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대북관계를 주도했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월 2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남북 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강조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삐끗’했던 남북관계는 잇달아 불미스런 일들이 발생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 씨의 피격 사망과 이에 따른 금강산 관광 중단,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지난해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로 꼽힌다. 이에 이명박 정부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한미 합동군사훈련 등으로 맞대응해 긴장 국면이 계속됐던 것이다. 현재 외교안보 라인을 이끌고 있는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등도 ‘대북 강경파’로 분류된다.
남북관계 현주소를 놓고 여야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동교동계의 한 전직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억누르다보면 언젠가 손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외에 대북 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 같다. 지난 3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잘못됐던 남북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반박하면서 “원칙 없이 퍼주기만 했던 게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아니었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과 여권 내에선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소할 방안으로 ‘정상회담’이 꾸준히 거론돼왔다. 실제로 지난 2009년 10월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던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은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나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부에선 이를 줄곧 부인해왔지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시인한 바 있다. 그 이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남북 ‘핫라인’이 사실상 끊기면서 정상회담과 관련된 ‘제스처’는 더 이상 오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선캠프 출신의 한 여권 고위 관료는 “임태희 실장은 대북 문제에 있어서 비교적 ‘온건파’다. 또 정상회담 추진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임 실장을 포함한 대북 협상파들 입지는 위축됐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대북 기류는 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권 내에서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확산됐고,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관계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각계의 요청도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1월에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남북대화 재개의 필요성이 언급됐던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여권 내부에선 정상회담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임 실장의 ‘역할론’을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임 실장이 명실상부한 ‘최고 실세’로 자리매김하면서 대북 정책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명박 대통령은 2월 1일 신년 좌담회에서 “필요하면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얼마 전 있었던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이 대통령은 “우리는 항상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주고 싶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이뤄지면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역시 2월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북한이 진정성을 보인다는 전제가 충족되면 남북 정상이 만나 충분히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황식 총리도 다음날인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루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를 이룰 수 있는 게 정상회담인 만큼 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여의도 주변에서는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이 ‘대북 특사’를 맡아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직접 북측과 접촉하고 있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최근 이 의원이 중국을 방문해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는 구체적인 얘기들도 들렸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 의원은 실제로 설 연휴가 끝난 직후 중국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월에 중국을 갔던 것은 맞다”면서 “개인적 용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정기관의 한 고위급 인사는 “이 의원이 북한 최고위급 인사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외교가에서도 이미 조금씩 소문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남과 북이 아닌 러시아 혹은 중국과 같은 제3국에서 정상들이 조우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얼마 전 원세훈 국정원장이 비공개로 미국을 방문했던 사실이 알려진 바 있는데, 정가 일각에선 이 의원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에 대한 ‘설명’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을 포함한 여권 핵심부가 올해를 남북정상회담의 ‘적기’로 판단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다. 여권 역시 정상회담 추진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내 정치 일정과 한반도를 둘러싼 여건 등을 고려했을 때 올해 하반기가 가장 유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야 의원들 역시 2011년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2월 24일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박상은 의원이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바뀌고, 이명박 대통령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시기를 정해놓고 일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해 ‘만사형통’ 이 의원이 움직이는 것을 놓고 여야는 미묘하게 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한 친이계 의원은 “정상회담에 대한 이 대통령 의지를 북측에 보이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 이 대통령과 ‘동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의원이 나선 이상 북에서도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그는 “이제 이 대통령은 새롭게 일을 벌이기보다는 마무리를 해야 할 때다. 개헌은 동력을 잃었고, 4대강사업 역시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이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것에 대해선 무조건 찬성”이라면서도 “그동안 강한 기조를 유지했던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왜 입장을 바꾸려 하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형님’이 의원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또 나오고 있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악용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에 선거 때면 어김없이 불었던 ‘북풍’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