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는커녕 잡음만 키웠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한 달 후인 지난 2008년 3월 25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2012년까지 통신료를 20% 이상 인하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통위 주요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통신료 인하 정책은 이 대통령 선거 공약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방통위는 제4의 이동통신사 진입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통신료를 인하하기로 하고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했다.
이 법은 2년여의 논란 끝에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방통위는 제4 이동통신업자가 새로운 망을 설치하는 것이 아닌, 기존 통신사의 망 설비만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가상 이동통신사업자’(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s)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방통위가 내놓은 청사진만 보면 당장이라도 제4 이동통신사가 등장해 SK텔레콤, KT, LG텔레콤으로 이뤄진 통신시장의 3강 구도를 단숨에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장의 판단은 달랐다. 제4 이동통신사업자가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현 구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며 실제로 대다수의 대기업들이 이 사업을 외면했다.
결국 유통업체 금융회사 정보기술업체 등으로 구성된 한국모바일인터넷(KMI) 컨소시엄이 유일하게 지난 6월 사업권을 신청했다. KMI는 기존 이동통신사업자보다 30%가량 저렴한 요금을 제시하면서 사업 신청을 했다. 스마트폰 음성 기본료 월 8000원, 무제한 데이터 정액 요금 월 2만 8000원, 음성통화·데이터·초고속인터넷 등 3가지 서비스를 합쳐 월 3만 5000원 등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았다.
이후 사업성보다는 KMI에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전 아무개 씨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컨소시엄 참여 업체의 주가가 폭등했다(<일요신문> 952호 보도). 당시 전 씨는 <일요신문>에 전화를 걸어와 “제4 이동통신사업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주가가 올라 폭리를 취했다는 말도 모두 거짓말”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주식시장이 거세게 요동쳤던 것과는 달리 시장에서는 KMI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나타냈다. 주식 시장 관계자들은 “방통위가 사업권 허가를 내주면 사실상의 특혜나 다름없고, 그렇다고 내주지 않으면 공약은 물거품이 된 채 일부 투기세력의 배만 불린 꼴”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KMI는 두 차례에 걸친 방통위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KMI는 지난해 11월 심사에서 재향군인회를 재무적 투자자로 영입해 재정 능력을 높였으나, 사업 및 자금조달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지난 2월 24일 방통위가 발표한 2차 심사 결과를 보면 KMI는 기간통신사업 허가심사에서 66.545점, 주파수 할당 심사에서는 66.637을 받았다. 두 항목 모두 100점 만점 기준으로 항목별 60점 이상, 평균 70점 이상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특별한 사업 전략 없이 요금 경쟁만으로 10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면서 탈락 이유를 밝혔다.
KMI는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다시 한 번 신청을 한다는 계획이지만 업계에서는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제4 이동통신사업은 통신비 인하는 고사하고 대통령 친인척 관련 구설수만 남겨 ‘긁어 부스럼 만들기’만 됐다”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