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굿즈테크, 2030 샤테크 롤테크…밤샘노숙부터 지방원정까지, 탈세·매점매석 논란도
‘리셀’은 새롭게 혹은 한정판으로 출시된 상품을 발 빠르게 구매한 뒤, 발매가보다 비싼 가격에 되파는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시간을 투자해 희소성이 강한 제품을 선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일부 얌체 업자들의 행위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MZ세대들의 새로운 재테크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리셀 시장은 매년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중고의류 거래 업체 스레드업은 시장조사를 통해 전 세계 리셀 시장이 연평균 39%씩 성장해 2024년에는 약 72조 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2020년 전 세계 리셀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31조 7000억 원에서 약 47조 원으로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MZ세대인 2030 청년들에게 가장 수익성 높은 리셀 상품은 명품이다. 특히 샤넬과 롤렉스의 경우 ‘샤테크’ ‘롤테크(롤렉스+재테크)’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억눌렸던 소비가 분출하는 보복소비 심리가 확산하면서 명품 수요가 크게 늘어난 까닭이다.
실제로 샤넬은 치솟는 인기에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 가격을 올렸다. 7월 1일부터 ‘클래식 미디움 플립백’과 ‘보이백’ 등 일부 베스트셀러 상품의 가격이 인상됐다. 매년 가격을 올려온 샤넬이지만 10%대 인상은 처음으로, 이번에는 그 폭이 최대 14%에 달해 하루 사이 100만 원 넘게 가격이 오른 제품도 있다.
클래식 스몰은 785만 원에서 893만 원이 됐고 국내 베스트셀러인 클래식 미디움 사이즈는 864만 원에서 971만 원으로 각각 13.8%, 12.4% 인상됐다. 특히 클래식 라지 사이즈는 942만 원에서 1049만 원으로 11.4%가량 오르면서 가방 하나에 1000만 원을 넘게 됐다.
리셀러들이 백화점 앞에 몰리는 시기도 가격 인상 시점과 맞물린다. 가격이 오르기 전 최대한 많이 물건을 확보하면 추후 인상된 가격에 10%의 프리미엄을 붙여 되팔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7월 인상 전 샤넬 클래식 미디움 플립백을 864만 원에 구매했다면, 차액 107만 원에 프리미엄 97만 원을 붙여 204만 원의 이득을 볼 수 있다. 한 달에 리셀 상품을 두 개만 팔아도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 이상을 벌어가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매년 명품 매장의 인상 소식이 들려오면, 인상 전 가격에 인기 상품을 선점하기 위해 백화점 앞에서 밤샘 노숙을 불사르는 2030이 적지 않다. 30대 남성 A 씨는 “롤렉스 인기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백화점을 방문했다. 특히 리셀러들이 붐빌 땐 직원들이 나서서 ‘물건이 없다’고 돌려보내곤 하는데 이 말은 진짜로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은 보여줄 수는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물건을 얻으려면 한가로운 시간에 자주 방문해 직원들과 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A 씨는 1000만 원 중후반대에 구입한 시계를 2000만 원대에 판매하고 싶다고 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1020세대들은 명품 대신 아이돌 굿즈를 되팔아 위 세대 못지않은 수익을 챙기고 있다. 특히 희소성이 있는 제품일수록 프리미엄이 상당해 수익률로만 따지면 명품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굿즈는 앨범의 구성품 가운데 하나인 ‘포토카드’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앨범 한 개당 명함 크기의 포토카드가 한 장씩 들어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무작위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가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본품인 앨범의 가격은 1만 원대인데 구성품의 가격이 이와 동일하거나 비싸게는 10만 원대에 되팔리는 등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기가 높은 멤버나 멤버수가 많은 그룹일수록 심해진다.
보이그룹 NCT 127의 팬이라는 대학생 B 씨는 “사고 싶은 포토카드 가격이 3만 원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한 장 가격으로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인기가 올라가면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을 것 같아 미리 사두려고 한다. 실제로 데뷔 초 발매된 앨범에 포함된 포토카드 가운데에는 현재 6만~10만 원대에 거래되는 것들도 있다. 해외에서 발매된 앨범의 구성품일수록 가격이 더 올라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재발매가 어려운 음반의 경우 가격이 급등한다. 보이그룹 샤이니의 종현이 생전 발매한 ‘소품집 이야기’ LP는 온라인에서 50만~15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2015년 발매 당시 가격은 3만 5000원이었다. 약 43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셈이다. 가수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LP는 리셀 가격이 정가 4만 4000원의 50배인 최대 200만 원에 형성되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희귀한 앨범이나 굿즈를 구하기 위해 지방으로 원정을 가는 1020세대도 있다. 주말마다 각 지방의 오래된 음반 매장을 찾아다닌다는 20대 직장인 C 씨는 “얼마 전, 우연히 집에 있던 한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10만 원에 판매한 뒤 절판된 앨범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있다. 지방에 위치한 오래된 음반 매장이나 동묘 등 중고 음반 매장에 가면 종종 절판된 아이돌 앨범을 합리적인 가격에 얻을 수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아이돌은 없다. 리셀을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MZ세대에게 리셀 문화는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암표상과 비교해 문제를 삼기도 한다. 정가에 물건을 구매해 가격이 오르면 웃돈을 붙여 파는 행위가 암표거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표거래의 경우, 공연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근절 대상으로 꼽히는 반면 리셀은 재테크 문화로 소비되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인식도 있다. 실제로 온라인 암표 거래와 관련해서는 공연법 개정이 이뤄졌으며 현장에서 암표 거래를 하다 적발되면 경범죄 처벌법 위반으로 과태료가 부과된다.
전문가들은 리셀 시장이 비대해진 만큼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병진 세무사는 “리셀을 통해 취득한 수익 즉, 위탁 수수료는 세법상 기타소득에 해당하는데 일회성 판매인 경우 굳이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아도 무관하다. 그러나 리셀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득을 얻는 경우에는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자진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신고 여부를 알 수 없어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샤넬 등 일부 명품 브랜드는 전문 리셀러를 방지하기 위해 판매 규정을 부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샤넬코리아는 7월 1일부터 ‘판매유보고객’으로 분류된 고객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구매 내역을 확인해 실 사용자에게만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또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필수로 제시해야 한다는 규정도 추가됐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