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비룡군단의 ‘구멍’을 보았다
▲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SK 와이번스. 야구 전문가들은 이번 시즌도 SK의 독주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SK는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야구전문가들은 올 시즌도 SK의 독주가 계속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이 여전하고, 투수진과 타선의 안정된 조화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중심은 역시 23세의 왼손투수 김광현이다. 지난 시즌 시속 150㎞의 강속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워 17승 7패 평균자책 2.37을 기록한 김광현은 올 시즌엔 20승에 도전할 계획이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SK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이 2007년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고 평가했다. ‘꿈의 20승’ 달성도 무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김광현의 20승 달성이 성공한다면 SK의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도 이뤄질 것이다.
다만, SK의 내부 갈등이 변수다. 프로야구는 압력밥솥과 같아서 수증기를 내보낼 만한 구멍이 없으면 폭발하게 마련이다. 스프링캠프에서 SK의 내부 갈등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한창 시즌 중 내부 갈등이 폭발한다면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에 버금가는 대재앙이 될 것이다.
SK의 독주만큼이나 한화의 독주도 관심사다. 물론 밑에서다. 한화는 2009년 꼴찌를 차지한 이후 감독과 단장, 사장을 차례로 교체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에도 결과는 꼴찌였다. 한화 한대화 감독은 “3년 연속 최하위는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를 믿는 야구팬은 조만간 전세금이 떨어질 것이라 믿는 서민만큼이나 극소수다.
한화는 올 시즌에도 류현진의 어깨에 운명을 맡겨야 한다. 그러나 그의 어깨는 우레탄이 아니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한 류현진은 지난해까지 5시즌 동안 총 960⅓이닝을 던졌다. 시즌당 192이닝을 던진 셈이다. 역대 고졸 투수 가운데 데뷔 이후 5년 동안 900이닝 이상을 던지고도 30세 때까지 멀쩡했던 투수는 없었다.
지난 시즌 말미 류현진은 어깨 이상으로 줄곧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휴식보다 중요한 건 류현진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한화가 계약금 7억 원의 신인 투수 유창식에 큰 기대를 거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화는 고졸 신인답지 않게 침착한 경기운영을 펼치는 유창식이 10승 정도만 거둬도 류현진의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12월 30일 선동열 감독의 해임과 동시에 삼성의 ‘지키는 야구’도 종말을 고했다. 선 전 감독은 5회 이후 1점이라도 앞서면 선발투수를 강판시키고 불펜투수들을 살충제를 뿌리듯 대거 투입시켜 상대팀의 추격 의지를 고사시켰다. 선 전 감독은 지키는 야구와 스몰볼로 2005, 2006년 한국시리즈 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승리는 지켰을지 몰라도 야구장을 떠나는 관중마저 지킬 순 없었다.
그러나 신임 류중일 감독의 등장 이후 삼성은 몰라보게 변화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류 감독은 “작전과 번트보단 삼성 특유의 화끈한 야구와 팬들을 즐겁게 하는 재미난 야구를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캠프 기간 내내 류 감독은 ‘프로야구는 결국 선수가 하는 것’이란 믿음을 바탕으로 자율야구를 강조했다. 자율야구가 통한 것일까.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삼성 선수들은 지난 5년간 감췄던 웃음을 맘껏 터트리면서도 개인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삼성이 빅볼을 화두로 삼자 “빅볼은 우리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팀이 나타났다. 바로 롯데다. 조성환, 홍성흔, 이대호, 강민호, 전준우 등 위력적인 타자가 포진한 롯데는 그야말로 ‘거인 타선’이다. 가고시마 캠프에서 만난 롯데 투수들은 “5점을 줘도 6점을 뽑아내는 타선 덕분에 투구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타격 7관왕 및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을 세운 이대호가 중심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획득하는 이대호는 “팀을 우승으로 이끈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로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프로야구단들은 벌써 이대호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 최소 2개 구단이 이대호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대호를 가장 탐내는 팀은 지바롯데다.
9년 전, LG가 한국시리즈에 올랐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2002년 이후 LG는 한국시리즈는 고사하고 8개 팀 가운데 4개 팀이나 오르는 포스트 시즌에도 오르지 못했다. 8년 동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은 LG가 유일하다.
LG 박종훈 감독은 “올 시즌 화두는 무조건 ‘좋은 성적’”이라며 ‘8’에서 불명예스런 기록을 멈추겠다고 다짐했다. LG는 역대 외국인 선수 최고몸값을 자랑하는 레다메스 리즈와 벤자민 주키치, 두 외국인 투수에게 많은 걸 기대한다. 특히나 리즈는 메이저리그에서 속구 구속 162㎞를 자랑했던 강속구 투수다. 하지만, 다른 팀의 생각은 다르다. 리즈 영입을 고려한 바 있는 SK 김성근 감독은 “속구 구속만 빠를 뿐 변화구 제구는 문제가 많았다”며 성공 가능성을 반신반의했다.
두산도 ‘결정적 성적’을 내야할 때다. 2004년 김경문 감독 부임 이후 두산은 지난해까지 4번이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2007, 2008년엔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작 우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한 팀에서 7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서도 사령탑에 앉아있는 건 프로야구 사상 김경문 감독이 유일하다.
그래서일까. 올 시즌 두산은 그 어느 때보다 우승을 열망하고 있다. 스프링캠프 성과만 본다면 열망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크다. 8개 구단 가운데 투·타의 안정성이 가장 뛰어나고 백업요원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야구해설가들은 예외없이 두산을 우승후보 1순위로 꼽고 있다.
KIA와 넥센이 운명공동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물론 야구장 밖에서다. 지난해 KIA 자동차는 엄청난 판매량을 올렸다. KIA 자동차에 타이어를 납품하는 넥센도 덩달아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올해도 두 기업은 서로를 파트너 삼아 대박 행진을 이어갈 참이다. 하지만 야구단의 운명은 정반대다. 지난 1월 말 KIA는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던 이범호를 영입했다. 3000CC 중형차처럼 든든한 투수진에 비해 LPG 경차처럼 힘없던 타선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KIA는 전력강화만 된다면 트레이드 시장에 항상 뛰어들 뜻임을 밝히고 있다.
양현종, 윤석민, 서재응 등 국내파 선발투수들의 컨디션이 최상인 것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선수단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캠프 도중 최희섭이 허리 통증으로 조기 귀국했고, 전반적으로 선수들이 매우 지쳐있다. 이유는 간명하다. 강도 높은 훈련 때문이다. KIA 캠프를 살펴본 야구해설가들이 “조범현 감독의 지옥훈련이 역효과를 내는 게 아니냐”고 우려할 정도로 KIA는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다.
넥센은 외부 영입은 고사하고, 기존 선수를 빼앗기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2009년부터 넥센은 해마다 주전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넘기며 그 대가로 현금을 받았다. 하지만, 넥센은 “더이상의 트레이드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되레 “올 시즌은 4강 진입이 목표”라며 칼을 간다. 물론 단서는 있다. “전력강화에 도움이 되는 트레이드는 계속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부자 구단이 항상 성공하는 것도, 가난한 구단이 늘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 옛말임을 상기할 때 투자에 적극적인 구단이 더 좋은 성적을 낼 확률은 높다. 과연 ‘극과 극’의 KIA와 넥센의 올 시즌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