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과열로 수익성 악화, 완성차 기업 배터리 내재화, 점유율 하락 등 리스크 산적
#SK·LG그룹을 관통하는 ‘배터리 IPO’
7월 1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기업설명회(IR) 겸 기자간담회인 ‘스토리데이’에서 “배터리 사업 성장을 위해 상당히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데, 재원 조달 방안의 하나로 분할을 검토하고 있다”며 “사업 분할은 IPO 시점과 연계해 탄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배터리 사업이 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때 국내 증시뿐 아니라 미국 나스닥, 혹은 한국과 미국 동시 상장도 선택지로 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IP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을 기반으로 시장 공략에 고삐를 죄겠다는 전략이다. SK이노는 이날 “지난 5년간 투자의 2배가 넘는 총 30조 원을 2025년까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배터리에 가장 많은 18조 원을 투자한다.
LG화학의 LG엔솔 전례와 자금 여력 등을 고려했을 때 SK이노는 물적분할을 선택할 것으로 관측된다. 물적분할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100%를 소유하는 형태로 분사하는 형태다. SK이노와 LG화학 모두 배터리 사업 분할 뒤 모회사 지분 일부를 일반 투자자에게 공개적으로 매각하는 구주매출을 통해 배터리 투자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례로 지난 5월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IPO로 8984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고, 모회사 SK이노는 1조 3476억 원에 이르는 구주매출을 얻었다.
LG엔솔은 하반기 IPO 대어로 꼽힌다. 지난 6월 8일 한국거래소에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예비심사신청서를 접수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가 공식적으로 LG엔솔로 분사한 이후부터 IPO를 빠르게 준비해왔다. 올해 초 KB증권과 모건스탠리를 상장 주관사로 선정했다. 증권업계에서 예상하는 시가총액은 최대 100조 원에 달한다. 지분 20%만 공모주로 내놓아도 20조 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셈이다. 7월 8일 기준 국내 코스피 상장 종목 중 시가총액이 100조 원을 넘는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배터리 사업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아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올해 1분기 LG엔솔은 매출 4조 2541억 원, 영업이익 3412억 원을 기록했다. LG화학이 1995년 리튬이온전지 개발에 착수한 지 25년 만에 이익을 낸 셈이다. 하지만 올해 2분기는 ESS(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 리콜 충당금으로 실적에 먹구름이 낄 전망이다. LG엔솔은 ESS 배터리 교체와 추가 조치에 필요한 비용을 약 4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앞서 지난해 2~4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냈지만, 현대차와 코나 전기차(EV) 리콜 비용 분담에 합의하면서 연간 적자로 돌아선 경험이 있다. 리콜 비용은 1조 원대 초반이었고, 이 중 약 70%를 LG엔솔에서 부담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 4611억 원, 영업손실 4752억 원, 당기순손실 4518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SK이노의 배터리 사업 매출은 5263억 원, 영업손실은 1767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7월 1일 장래사업경영계획 공시를 통해 2022년 영업이익 흑자 전환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 4월 SK이노가 LG엔솔과 합의한 현금 1조 원, 로열티 1조 원 등 2조 원의 배상금 지급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흑자 달성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SK이노의 잇따른 차입과 투자에 대한 리스크도 대두되고 있다. 올 초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SK이노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2’에서 ‘Baa3’로 낮췄다. 한국기업평가는 SK이노의 장기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또 지난해 12월 한국신용평가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 SK에너지 등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배터리 사업 실적은 부진한데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서면서 재무구조가 취약해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모건스탠리는 “전기차 시장은 10년간 연평균 20% 성장하겠지만, 배터리 제조사들의 수익성은 경쟁 심화로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LG엔솔의 IPO로 모회사인 LG화학에는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적용해야 한다. ‘매도’ 의견과 함께 목표 주가도 130만 원에서 68만 원으로 낮춘다”며 “LG화학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중국 경쟁사 CATL의 절반 수준인 22배로 책정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밝힌 것도 위협 요인이다. 특히 폴크스바겐이 2023년부터 각형 배터리를 적용해 2030년 생산 전기차 80%에 사용하겠다고 계획을 밝히면서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는 LG엔솔과 SK이노는 직격탄을 맞았다. 반면 각형 배터리가 주력품인 중국 CATL은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전기차 매출 40%를 중국에서 올리는 폴크스바겐이 CATL과 손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SK이노의 주요 매출처 2곳 중 하나인 현대차그룹까지 배터리 내재화에 나서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실제 경쟁자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배터리사들의 점유율도 낮아지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판매된 글로벌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LG엔솔은 중국 CATL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 삼성SDI와 SK이노는 각각 5,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기차의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88.4GWh로 전년 동기(33.6GWh) 대비 2.6배 이상 늘었지만, 한국 배터리사들은 점유율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중소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기술력을 가지고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배터리사들로 조만간 시장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완성차 기업들이 내재화를 선언하고 있지만, 배터리사들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있는데 이는 단기간 내에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LG엔솔 배상금 중 1조 원을 올해 1분기 선반영했고, 나머지 1조 원은 향후 5년간 분할 지급한다. 크게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면서 “SK이노는 선 수주 후 공장 증설을 해왔고 수익성이 악화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